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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저자 김정운은 교수직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독일에서의 10년 공부, 정교수가 되기 위한 힘겨운 기억들을 떨치고, 정년이 보장되는 꿀같은 직업을 스스로 발로 뻥 찼다는 것이다. 교토의 전문대학에서 그림을 공부하고 졸업했다고 하며 최종학력이 전문대졸이라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는 작가가 쓴 이 책은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심리그림에세이"이다.
이전에 김정운 학자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기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림들이 요소요소에서 글을 보좌하고, 글은 또 그림을 설명해주는 아주 좋은 형식의 책이었다. 책의 말미에 작가 스스로도 말한다. 글만 쓸때는 논리에 잘 맞는지, 욕을 먹지는 않을지 이쪽 저쪽 신경을 많이 쓰며 작업했는데, 그림이 함께 해주니 오해의 소지가 있다하더라도 불필요한 부분은 훌쩍 건더뛰는 비약이 생기고, 그 부분을 독자의 역할로 남기게 되었다고. 그 결과 독자와의 상호작용이 더 활발하게 되어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외로움은 그저 견디는 겁니다. 외로워야 성찰이 가능합니다. 고독에 익숙해져야 타인과의 진정한 상호작용이 가능합니다. '나 자신과의 대화인 성찰'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가지는 심리학적 구조가 같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에 익숙해야 외롭지 않게 되는 겁니다. 외로움의 역설입니다."
프롤로그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부터 나는 어려웠다. 나 자신과의 대화인 성찰과 타인과의상호작용이 가지는 심리학적 구조가 같다니...
처음의 느낌과 합당하게 읽는내내 책을 이해하기가 만만치는 않았다. 여러 심리학적, 철학적 개념들, 용어들이 생소하고 어려웠다. 저자가 내러티브를 이용해 쉽게 설명해주려고 노력했다해도, 교수를 그만두었다고 해도, 역시 학자임에는 분명하기에 심리학, 철학이라는 개념이 쉽게 이해되지 않고 어려워 몇번을 곱씹어 읽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나만 이랬을까?? 문득 걱정이 인다. 변명을 하자면 내가 평소 많이 접해보지 못한 분야이기 때문이라고 하고싶다. 그러나 내가 발딯고 있는 이 세계를 이해하는데 있어 더 넓고 깊은 시각을 그림과 함께 제공해주어 고마운 마음이 들고, 앞으로 그의 책들을 더 읽어보고 싶다. 일단 그 다음책으로는 <에디톨로지>로 정했다.
50대 중년 남성의 생각에 내가 감정이입할 수 없는 부분들 또한 눈에 띄었으나, 그것은 안정된 교수직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개척한 그의 용기만큼이나 솔직발랄하게 느껴져 책에 진정성을 더해주었다. 우리 아버지 세대까지는 아니어도, 아무튼 우리가 꼰대라고 치부하는 그 세대 남성들의 생각구조에 대해 아주 조금 맛보는 듯한 느낌도 들어 앞으로 그 사람들을 만날때 말이 안통해 답답하다는 생각보다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포용력을 가져볼까 한다. 그들만의 외로움, 고립감. 그러나 분명 그동안 쌓아온 공부가 있기에 배울 점이 많은 분들이다.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금을 긋기보다는 다름을 인정하고 그들만의 외로움과 삶의 방식을 이해해야 하겠다. 책은 읽을수록 확실히 시야를 넓혀준다.
변태같은 이야기를 하든, 무슨 그림을 그리든 그는 학자임에 분명하다. 일본에서 느린 행복을 느끼고 있는 이 작가가 존경스럽다. 그림을 그리고, 책을 쓰고 2016년에는 여수에 화실을 마련해 진돗개를 키우고 싶다는 작가는 분명 앞선 사람이다.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정년 이후의 생활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는 게 맞는 거다. 연금에 의지해 하루하루 하기 싫은 일을 하며 버티고 있는 사람보다 훨씬 멋있다. 능력자다. 외롭다고 관계에 의지하기 보다는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자기가 그리는 삶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이 분이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