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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눈에만 보이는 것들 - 정여울과 함께 읽는 생텍쥐페리의 아포리즘
정여울 지음 / 홍익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생텍쥐페리하면 어린 왕자, 어린 왕자하면 생텍쥐페리. 요렇게 공식으로만 알고 있던 나에게 이 책은 생텍쥐페리에 대한 많은 것을 알려준다. <어린 왕자>가 쉽게 씌여진 책이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 아직 비행 기술이 지금처럼 발전하지 않아 고도로 위험했던 직업인 비행사로서 두려움을 뚫고 밤하늘을 비행하고, 지상의 작은 불빛 하나에도 마음을 의지했을 그 외로움이 절절히 느껴졌다.
밤하늘을 유심히 살펴보지 않는 나, 그럴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있지 않은 나는 그런 세계가 존재하는 지도 몰랐다. 그나마도 지상속의 나는 도시 속에 살고 있어 건물들에 의해 조각난 하늘 밖에는 누릴 수가 없다. 걸릴 것 없이 광할한 밤하늘을 혼자 날고 있는 나를 상상해본다. 지극한 외로움에 여러 별들에게라도 마음을 보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 중 소행성에 살고 있을 어떤 순수한 왕자님을 그려보지 않을까. 이러한 상황은 너무나 낭만적이고 환상적이어서 상상력이 퐁퐁 샘솟아 오를 것만 같다.
그러나 생텍쥐페리가 비행사로서의 특이한 경험들을 녹여내어 완성한 작품들에 대해 살펴보면 그 생활이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황홀한 구름밭에 도취되었다가도 그 밑이 바로 지옥이라는 사실을 가슴에 새겨야 하고, 사막이나 설산에 불시착해 인간으로서 겪을 최대한의 고비들을 이겨내면서 생존할 수도 또는 그대로 죽어버릴 수도 있는 삶이다. 내가 실종되면 남겨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게 될 고통까지도 마음속에 미리 품고 있었을 생텍쥐페리.
우편기를 몰며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오고 가는 수만통의 편지들을 내가 꼭 운반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참으로 아름답다. 살아서 돌아온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산에서 실종되고도 아내가 시신이라도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조종사의 이야기에는 숙연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어떤 극한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인간의 삶을 통찰하게 될 경험이나 기회가 많을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들은 영감을 얻기 위해 고생을 사서 하기도 한다지 않은가. 생텍쥐페리가 살았던 시대에는 비행기 조종사라는 직업이 극한이었다. 그 경험들을 토대로 완성했을 그의 소설들을 정여울 작가의 입을 빌려 만나게 해주는 이 책은 깊은 울림을 준다. <인간의 대지>, <남방우편기>, <야간 비행>과 같은 생텍쥐페리의 소설들을 더 만나보고 싶게 만들어준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만으로 대표되기엔 너무나 아까운, 아름다운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