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야간비행 - 정혜윤 여행산문집
정혜윤 지음 / 북노마드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여행자의 통속성"

그렇다. 나는 여행에 대해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저 단어를 만났을 때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여행은 항상 거창한 어떤 것으로 생각되었고, 여행자는 진지한 자세로 공부하듯이 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여행자들은 저 단어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어떤 여행자들은 셀카봉을 들고 다니며 그 장소가 목적이 아니라 그 곳에 온 자신만을 포커스에 담으려 한다. 그렇다면 집에 있으나 여행을 떠나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또한 피렌체하면 르네상스, 메디치가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만이 보고 느끼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여행자의 통속성이라는 낱말에서 느끼고 각성할 것은 각자가 정해야 할 일이다.


또한 이 책은 여행 에세이는 이러저러하다는 상식의 틀을 와장창 깨뜨려주는 여행산문집이기도 하다. 좌충우돌의 경험들을 풀어나가는 에피소드들, 실용적인 조언들, 그 곳에서 꼭 가봐야할 핫 스페이스들에 대한 소개 및 비평들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여행 에세이가 아니다. 유명 장소에서의 경험들로 이루어진 것들이 아니, 어쩌면 여행이라는 것을 떠나지 않고도 일상의 순간들에서 잡아냈을수도 있을 법한 사색들이 독특한 문체와 시적인 감성으로 그려져있다.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생각의 폭을 넓혀주었고 어떤 한 방향으로만 고집하던 생각들을 저쪽으로도 전환시켜 준, 그리고 평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내밀한 고민들에 대해 약간의 대답들도 내어준 고마운 책이다. 스페인 야간비행이라는 치우쳐진 제목과 성의없는 책표지가 이 아름다운 책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는 점이 참으로 가슴 아프다.


작가가 여행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리스본, 그리고 필리핀의 보홀 등에서의 경험이 한 챕터씩 구획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선을 따라 여기저기 넘나들며 그려진다. 작가는 과연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고 생각했고 사랑하는 것인가. 각각의 장소에서 좋아하는 작가와 연관된 생각들을 하며 풀어가는 이야기들은 한 사람의 여행자 내면만을 향해 있는 것만은 아니었기에 보편적 감수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우리라는 공통된 인류로 생각의 방향이 뻗어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또한 그러고 싶었다.


미스 양서류, 미스 영장류는 작가의 또 다른 자아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스 양서류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어쩌면 그것은 작가가 자신에게 보내는 메세지가 아니었을까. 작가가 소개해준 포르투갈의 어떤 시인처럼 말이다. 그 시인, 페소아는 자신안에 있는 수많은 자아들을 거부하거나 무시하지 않았고 하나하나의 인격체로 만들어 수많은 이름을 가진 자아들이 각자의 생각을 피력한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나또한 내안의 무수한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눌러오고, 억압해 온 것이 사실이니 획기적인 아이디어이자 나를 받아들이는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많은 작가 및 책에 대한 내용들이 그 곳의 풍경들과 함께 녹아있다. 하나하나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 또한 정혜윤이라는 멋있는 작가를 발견하게 되어 너무나 기쁘다. 그녀의 다른 책들 또한 찾아서 읽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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