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중인들 - 정조의 르네상스를 만든 건 사대부가 아니라 중인이었다
허경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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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머물 때에는 낡은 거문고를 어루만지고 옛 책을 읽으면서 그 사이에 누웠다가 올려다보면 그만이고, 마음이 내키면 나가서 산기슭을 걸어 다니면 그만이다. 손님이 오면 술상을 차리게 하고 시를 읊으면 그만이고, 흥이 도도해지면 휘파람 불고 노래를 부르면 그만이다. 배가 고프면 내 밥을 먹으면 그만이고, 목이 마르면 내 우물의 물을 마시면 그만이다. 추위와 더위에 따라 내 옷을 입으면 그만이고, 해가 지면 내 집에서 쉬면 그만이다. 비 오는 아침과 눈 내리는 낮, 저녁의 석양과 새벽의 달빛, 이같이 그윽한 삶의 신선 같은 정취를 바깥세상 사람들에게 말해 주기 어렵고, 말해 주어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  79~80쪽


장혼이 지은 글이다. 지금 읽어도 참 멋진 삶을 꿈꿨다. 양반으로 태어나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에 나아가 출세하면 무엇하겠는가? 당쟁이나 사화에 휩쓸려 위태롭고 조마조마한 나날을 보내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중인들은 기술직으로서 봉급은 넉넉하게 받았으나 더 이상의 신분상승은 기대할 수 없었으므로 각자의 삶에 만족하며 시를 좋아하는 동인들끼리 어울려 모임을 만들고 풍류를 즐기며 살았다고 한다. 출세에 대한 욕심을 아예 갖지 않으므로 깨끗한 마음에 시심이 훨씬 깃들었을 것이라는 자부심도 갖고 있었다. 물론 처자식 거느리기에도 벅찰만큼 가난한 중인도 있었지만, 반면 박지원의 <허생전>에서 허생에게 돈을 빌려주는 한양 최고의 부자 박씨는 중인이었다고 한다.


중인은 "전방위 지식인"이었다. 결코 나라가 임금이나 소수의 양반 관리로만 돌아갈 수는 없는 법. 숫자가 많은 중인들이 실제 일꾼이었던 것이다. 요즘 선호하는 직업들인 의사, 약사, 변호사, 동시통역사 등은 조선으로 치자면 중인 계층이다. 그때는 신분에 따른 제약 때문에 울분을 품었을 중인 계층이 지금에 와서는 이렇게 떠받들어지는 사회지도층이 되다니 정말 사회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또 역사를 공부하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 현재까지 나에게 역사공부란 것이 주로 조선시대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문제점이긴 하겠지만, 과거를 공부해서 현재에 닿는다는 것이 항상 재미가 있다.


뛰어난 재능을 갖고 태어났음에도 신분의 벽앞에 좌절을 겪었을 중인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러면서도 세상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즐기고 노력해서 발전시키고 또한 동인들과 함께 하면서 새로운 세력으로 키워나간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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