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기억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9
윤이형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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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은 많지 않지만, 순간 멈추며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책이다.

2000년대 후반에 20대가 된 부모 중 모의 장례식을 치룬 시점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11살무렵 속이 좋지 않았던 날, 하교 후 어머니가 끓여둔 죽을 보고 온갖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엄마가 이유식을 해주던 시절. 음식을 먹는 것보다 죽을 공중에 흩뿌리는 것이 더 즐거웠던 기억. 당시 엄마의 표정과 모습 감정까지 모두 기억하는 ‘과잉기억증후군‘을 앓는 지율.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 엄마와 아빠는 과도한 노력으로 아이에게 집중한다. 기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아이의 일상 생활이 힘들게 했기에, 다양한 체험과 즐거운 경험으로 힘든 기억을 떠올리지 않게 해줘야 했다.
부모의 과함을 보는 것이 힘들어던 지율이 찾은 방법은 공부에 몰두하는 것. 그의 어머니는 가정을 떠나는 것을 선택했다.
의대에 진학한 지율은 난관에 봉착했다. 그저 지식을 암기 대상으로 여겼던 지율에게 의사라는 직업은 넘지 못할 산이었고, 그 시점 난독증으로 학업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게스트 하우스에 취업하고, 독립도 했다. 그의 마음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여자 ’은유‘를 만난 것도 그 시점이다. 밤에는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 낮엔 철저하게 손님으로 돌아가는 그녀. 복잡한 사연이 있어보인다는 게스트 하우스 주인장의 충고. 하지만 지율은 그녀에게 자꾸 끌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 평범한 기억의 소유자가 된다면 그녀의 아픈 기억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면 이 사랑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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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말대로라면, 너는 …..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세상을 볼 수 있는 거잖아? 있는 그대로의 세상 말이야. 나는 글이라는 건 그런 사람이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없어. 특히 사람에 대해서라면, 공정한 평가를 내리기가 어려워. 감정 때문에. 감정이란 거, 기억을 왜곡하고 현실을 뒤틀어버리잖아. 있었던 일을 없던 걸로 해버리고, 없었던 일을 있었다고 우기고, 자기한테 유리한 것만 남게 만들고. 28p

- 그때부터 아버지는 접힌 사람, 미뤄진 삶만을 지닌 사람이 되었다. 그에 대해 젊은 시절 함께 품었고 사랑을 싹트게 해주었던 목표에 먼저 도달한 아내를 보조하며 아무에게도 내색할 수 없는 끓는 감정들, 한없이 유예되고 멀어지는 꿈에 대한 막막함을 속으로 삭혀야 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 너는 사람을 한 줄로 간단하게 요약할 수 없다고 했지. 하지만 정말로 한 줄로밖에 요약되지 않는 삶들도 있어. 우리 가족이 그래. 특별한 일들이 물론 있었겠지만, 기억날 만한 일들은 아니었던 것 같아. 아버지가 직장에서 무슨 일을 했고, 부모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고, 언니가 편애를 받았나 받지 않았나, 그런 것들이 중요할 거라 생각해?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어. 병원에는 안 가봤지만 나도 너처럼 무슨 선천적 이상이 있는지도 몰라. 그래서 가족에 대한 추억이 별로 없는 건지도 몰라, 하지만 반대로, 기억에 남길 만한 가치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기억하는 게 없는 건지도 몰라. 나 자신에 대해서도, 가족에 대해서도 그래. 뉴스 사회면 짜투리로 요약되는 삶이야. 팍팍하고, 가족의 생존 외에는 생각하는 게 별로 없는 삶 말이야. 105p

조금 괜찮은 기억을 갖고 싶은 소망이 있었는데 이런 과함은 삶을 부슬 수도 있구나 싶었다. 기억의 오류에 대한 인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때때로 나의 기억을 믿고 오류를 범한다. 우리에게 기억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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