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천명관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9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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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을 때도 가독성은 좋구나. 그런데 뭔가 불편한 부분이 있어 다시 읽고 싶지는 않다. 나의 베스트는 아니구나. 였는데…. 2023년에 다시 이렇게 떠오르시다니요. 고래가 바다 위로 올라왔어.;;; 제대로 물을 뿜으시는군요.

책의 서술 방식도 독특하고, 꾸준히 3인칭 시점이지만 종종 독자한테 말을 걸어온다.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가 갑작스런 질문들에 고민도 해야하고, 대충 읽지 말고 꼼꼼히 읽어요. 제법 인물들이 많다구요! 하며 이 사람 기억나지? 라며 잠시 정신줄 놓은 독자를 일깨우기도 한다.

소설은 춘희로 시작해서 춘희로 끝난다. 점보 사이즈로 태어나 점보 사이즈로 내내 살다가 마지막에 작아지는 인물 춘희. 유일하게 점보와 대화가 가능했던 아이. 세상과 가까워지기도 전에 혼자만의 세계로 고립되었고, 그 어떤 고통도 남이 아닌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산 인물이다.

그런 점보 사이즈의 춘희를 낳고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인 금복은 홀애비와 살다 생선장수의 도움으로 집을 나온다. 그녀에게선 페르몬이 가득 뿜어져 나와, 지나가던 남자들의 고개를 한 번 이상 돌릴 능력이 있다. 생각이 깊진 않았지만, 감정에 충실하고 자신의 직관을 어리석을만큼 믿었다. 그 직관을 따라 행동하고 기획하는 일들을 지금 시각으로 보면 부의 추월차선을 달리는 여인이다.
커피를 탐닉하고 스크린 속에 거침없이 빠져 들었고(칼자국), 사랑에 모든 것을 바쳤다(걱정). 그녀에게 ‘적당히’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남자와의 사이에서 끝이 다 좋지 않았지만, 늘 회복의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 자신의 노력이 아닌 하늘에서 쏟아진 돈으로 시작한 일은 운이였을까? 불행이였을까?
지독히도 못생긴 여자인 노파는 왜 그렇게 돈에 집작한 것이며, 미모에 미모에 의한 미모에 의해 생이 이어진 수련은 그가 갖은 미모는 행인가 불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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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삶에서 젊음은 모두 지나가버렸으며 가장 뜨거웠던 시간으로부터도 점차 멀이지고 있었다. 그것은 우울한 일이었으나 한편으론 무모한 열정과 슬픔에서 벗어나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리는 휴식의 시간이기도 했다.

- 그들이 평생 맛보지 못한 우하한 정취와 로맨틱한 감정, ‘바람을 맞다’라는 새로운 표현, 미스 김, 혹은 미스 박, 똔느 유 마담, 펄 시스터즈가 부른 <커피 한잔>의 전국적인 히트, 껌, 축구경기, 아메리칸 스타일, 혹은 블랙이란 이름의 만용과 쓰디쓴 후회, 죽돌이 또는 죽순이란 신조어, 쌍화차, 미팅, 담배 소비의 증가, 성냥을 쌓거나 부러뜨리는 나쁜 습관, 퀴즈의 발달, 참새 시리즈, 구석자리에서의 키스, 벽돌 깨기, 킹 크림슨의 <Epitaph>와 신청곡을 적을 수 있는 작은 메모지, 디제이라는 새로운 직업의 등장, 오늘은 왠쥐, 라는 느끼한 발음, 배달과 티켓, 그리고 ‘여기 리필 좀 더 주세요’라는 잘못된 영어의 남용 등등…

- 무모한 열정과 정념, 어리석은 미혹과 무지, 믿기지 않는 행운과 오해, 끔찍한 살인과 유랑, 비천한 욕망과 증오, 기이한 변신과 모순, 숨가쁘게 굴곡졌던 영욕과 성쇠는 스크린이 불에 타 없어지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과 아이러니로 가득찬, 그 혹은 그녀의 거대한 삶과 함께 비눗방울처럼 삽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긴 호흡의 문장이 자주 등장하지만, 따라가기 힘들다던가? 지친다는 느낌이 없이 읽힌다. 작가의 글엔 음표가 없지만 나도 모르게 리듬을 타며 읽는다. 나의 머리 속에서 지휘를 하고 있는 작가의 능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금복이 스스로 여자를 넘어서고자 하지 않고 여자로 계속 사는 인생을 택했다면, 금복과 함께 하는 남자의 운을 금복이 계속 끌어다 쓰는 인생으로 살 수 있었을까?

노파의 영혼을 받은 무당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금복에게 향한 불운이 멈췄을까?

춘희가 쭉 쌍둥이 자매와 점보와 유년시절을 함께 지냈다면, 그 인생이 달라졌을까?

점보는 칸트와 어떤 관계인가?

X-ray 사진과 유물론의 상관관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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