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대공황 - 80년 전에도 이렇게 시작됐다
진 스마일리 지음, 유왕진 옮김 / 지상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1920년대 미국은 과거 영국이 누렸던 경제 성장을 능가하는 경제적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20년대의 경제 성장의 특징은 전기와 관련된 소비 상품, 자동차 등의 산업은 성장하는 반면, 농업, 석탄 관련 산업은 자연스럽게 쇠퇴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주식시장의 엄청난 폭등을 이룬 이후 검은 목요일로 대변되는 엄청난 폭락을 겪었다. 이에 대해 후버 대통령은 계획 경제로서 극복하려 했지만, 1년 남짓 반짝 경기 후에 경제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이러한 경제 불황에 대하여 후버 대통령은 많은 경제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높은 관세를 이용하여 불황을 이기려 하였지만, 이는 무역의 축소를 가져왔고 가뭄과 대량 해고가 겹쳐 농업 부문의 쇠퇴와 은행 파산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경제 대공황의 원인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에서 기인한다. 제1차 세계대전은 이전의 금본위제와 고정환율제가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금의 부족으로 인한 금환본위제가 시작되었으나, 이러한 경제체제는 각국 중앙은행의 협조와 미국의 지속적인 달러 유출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1920년대 말에 시작된 세계경제 대공황은 사실상 수많은 국가가 실시한 통화긴축정책으로 인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이 더욱 큰 피해를 받았던 이유는 고임금 정책과 금본위제도의 수호를 위한 연방준비제도의 강력한 긴축통화정책 때문이었다. 연방준비은행의 공개시장조작으로 경제회복의 기미가 보였으나 새로 선출된 루즈벨트의 초반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그러한 기회조차 날려버렸다. 

초반에 실시한 루즈벨트의 국가 주도적 은행의 휴업은 은행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회복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후버 대통령의 공약인 금본위제의 포기와 때마침 독일의 나치당의 득세로 인하여 미국으로 금의 유입이 지속되었다. 이는 1930년대 말의 경제활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초기 뉴딜정책의 주된 성과는 농업조정법과 국가산업부흥법이었다. 농업조정법의 패리티 가격은 농민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는 것으로 초기에는 약간의 도움이 되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했다. 국가산업부흥법은 공공고용을 통해 구제사업과 필수 사회기반 시설을 확충하는 제도였다. 이로 인해 일자리가 늘어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으나, 조급하게 시행된 법안은 내부적 모순과 더불어 다른 뉴딜정책과의 불일치로 논란이 제기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고 1940년대 중반 경제가 제자리를 잡아가면서, 미 연방정부는 과거 대공황과 케인즈 경제이론을 바탕으로 평시에도 적자 예산을 감수하는 정책을 지속했다. 이를 바탕으로 사회보장법으로 대표되는 연방정부의 재분배 역할을 계속하였고, 농업을 비롯한 산업에 대하여 국가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세계적인 불황은 이전과는 다르게 오고 있다. 검은 백조의 출현 등과 비슷하게 전에는 전혀 발견할 수 없었던 사례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한가지 확실한 것은 경제 정책 입안자의 지혜롭고 현명한 결정이다. 시대에 맞는 정책으로 경제 불황을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지혜로움이 필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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