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가 좋다 -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충무로 영화인들의 진솔한 이야기
이창세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네영카 카페에서 제공 받은 책으로 리뷰 올립니다.

그간 몇몇의 영화관련 책을 본적이 있는데 너무 영화의 전문서적 같은 느낌을 풍기거나 아니면 그냥 비하인드의 잡담 같은 이야기로 끝나 있어서, 아쉬워하던 차에 받은 책이라 재밌고 진솔한 얘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더구나 저자인 이창세씨는 신문사 기자로 시작해 제작에 까지 뛰어들 만큼 현장에도 밝은 영화인이라 우리가 모르는 다양한 영화얘기를 풀어내리라 기대 할 수 있었다.

그런만큼 그가 선정하고 올린 글은 마치 속 깊은 인터뷰 내용을 진솔하게 담은듯 해서 공감하고 또 공감할 수 있었다.

거기에 영화에서 항상 조명이되는 영화배우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감독 그리고 더 중요할 수 있는 스탭 인 조명,편집,미술,촬영 담당 기사와 감독들의 우리가 알지 못했던 혹은 우리가 관심밖에 있었던 그들의 영화의 열정과 애환을 읽을 수 있어서 마음깊이 공감하는 내용과 함께 인물로 소개한 한사람 한사람의 이야기가 마음을 감동시켰다.

역사가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고 한다면 승리자의 서술로만 쓰여져 그들의 얘기가 결과론 적으로 대단히 좋게 남아있을 수 밖에 없다. 실패한 기록이나 그들이 겪은 실패담은 흔히 축소 되거나 가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후일담처럼 이렇게 성공 할 수 있는 요건이 이렇다 말을 한다. 성공한 모습을 더욱 부각 시키위해 고난의 과정이 어떻다 이렇다 넣은 후에 이런과정을 거쳐야 성공할 수있다고 강변하는 모습은 이제 자화자찬의 영웅만들기 같아서 좀 식상해졌다.

물론 역사의 이야기가 이럴진데 한 인간의 인생사에 어찌 성공한 모습만 후광처럼 보여지겠는가 생각도 되었지만, 이창세씨는 이런 인간의 면면속에 이어지는 성공한 자의 모습을 후일담처럼 그리기 보다는 그들의 한길을 향한 열정과 사랑이 없다면 그 자리를 지켜 내지 못했을거라는 말을 전하고 있었다.

박찬욱 영화감독,안성기 영화배우,임재영 조명감독,김상범 편집기사,이준익 영화감독,김미희 프로듀서,배창호 영화감독,김기철 미술감독,조선묵 영화배우,이정향 영화감독,김유진 영화감독,서영희 영화배우,최성원.남지나 조명감독,박희주 촬영감독,김용태 영화감독,오동진 영화평론가,강우석 영화감독,신철 프로듀서,김윤진 영화배우, 윤제균 영화감독,정태원 프로듀서겸 영화감독,정두홍 무술감독겸 영화배우, 채윤희 마케터,최진실 영화배우,이은주 영화배우,정승혜 프로듀서 등의 이야기가 실타래처럼 풀려나오면서 어느때는 감탄을 어느때는 안타까움에 그들의 영화만들기를 알 수있었다.

우리가 짧은 시간 한 영화를 접하지만 그 속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것은 영화 내용뿐만 아니라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바쳐진 그들의 인생이 녹아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책을 그간 가지고 다니면서 읽다가 마침 퍼펙트게임의 박희곤 감독의 싸인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도 초심을 잃지 않고 이책 나는 영화가 좋다2.에 자신의 영화인생을 풀어놓을 때를 기다려 보며 깊이 있는 인생을 살리라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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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
김현 지음, 산제이 릴라 반살리 외 각본 / 북스퀘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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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먼저 보았기에 책으로 보는 느낌은 또 다른 생각의 깊이를 가지고 올 수 있었다.그래서 소설'청원'은 나에게 영화에서는 놓칠 수 있었던 이튼의 아픔을 좀 더 가슴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소피아와의 교감도 좀 더 세밀하게 느낄 수있는 시간이 되었다.

삶의 애착이란 때론 가진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잃지 않기위한 몸부림 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진 것이 많았던 사람은 그 상실감이 그에 비례하여 더 큰 법인가 보다.

세계최고 마술사란 호칭을 받던 그의 시절은 이미 14년전에 없어졌고 사고로 인해 지금은 전신마비 상태이다. 그는 다양한 활동으로 그간 그런 고통과 마비를 이겨내고 살아가는 모든이에 귀감처럼 살아왔다. 그리고 헌신적으로 그를 지켜주는 간호사 소피아와 많은 친구들이 그에 곁에 있다. 하지만 점점 나빠지는 몸과 고통에 돌연 안락사를 시켜달라는 '청원서'를 나라에 제출하는데,당연히 인도에서 안락사는 불법이기에 모든 논란 앞에 서게 된다.

인간다운 존엄이 먼저인가? 생명의 가치가먼저인가?

한때 최고 마술사 였던 그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까지 지켜져야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가치는 살아있다는 생명의 가치보다 인간다울 수 있는 삶이 더 지켜 질 수 있을때 필요가 있는가를 계속 묻지만 답을 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물음에 참여하여 어떤 선택이 최선인가에 답을 마음에 담아보게 된다.

우리는 이튼이 겪은 14년의 세월의 무게와 고통을 감히 재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삶속에 있는 다른사람들과 공유된 삶도 소중한데 그렇게 임의대로 끝낼 수 있는가에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 그의 고통을 짐작하며 공감을 할 수는 있었지만 그 반대로 이튼은 그와 공유했던 다른 감정보다 자신의 감정이 더 중요한 것으로 보여 이기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문득 '잠수종과 나비'란 영화가 생각이 난다. 엘르의 편집장이던 '장도'도 같은 처지(?) 아니 어쩌면 더 한 처지 였지만 그가 가는 길은 '이튼'이 가는 길과는 달랐 던 것이다. 물론 세월의 무게 차이는 있지만 결국은 인간 존엄에 대한 가치는 개인차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죽음의 결정권자는 자신인가 신인가?

개인적으로 안락사에대한 지지도 반대도 않지만 생명이란 살아있는 그 자체로 존귀하다고 생각을 한다. 이튼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죽음의식에 다른이들을 끌여 들였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선택을 다른이를 통해 완성한다는 생각은 너무 위험한 생각되었다. 자신의 그런 아픔때문에 다른이의 아픔은 전혀 고려치 않고 결국 내밷을 수 없는 증언을 한 어머니는 그 슬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먼저 운명을 달리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는가?

잠수종과 나비에 나온 것중 "비록 내몸은 자유롭지 못하게 갇혀있는 잠수종과 같을지라도 나의 영혼은 또다른 자아를 찾아 나비처럼 비상한다."라는 대사가 기억이 난다.

결국 영혼의 자유로움보다 육체의 속박이 더 괴로왔던 이튼의 선택은 모든 사랑하는 이 앞에서 더 이상의 고통으로 인한 자신의 추함을 보여주기 싫다는 자존감에, 아직은 스스로가 인간의 존엄을 지킬수 있다고 생각하는 최선일때 떠나는 선택을 하는 걸로 마무리를 짓는다.

아직도 그에 선택에 지지를 보내기 어려운 것은 태어남이 선택이 아니듯 죽음도 선택이 아니라는 개인적인 생각이 있어서 일 것이다. 하지만 이튼이 느끼는 아픔 그리고 좌절,고통을 가슴으로 받아 들이고, 소피아와의 사랑의 깊이가 그녀 앞에서 올바른 인간다운 모습으로 기억이 남을때 웃으면서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그의 '청원'이 바로 그 깊고 깊은 이튼의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것이 이튼이 선택한 사랑의 완성이라면 나 또한 그의 마지막을 지키는 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청원은 영화로나 소설로나 가슴을 울리는 얘기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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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락 - 즐기고(樂), 배우고(學), 통(通)하다
윤승일 지음 / 중앙위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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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전달되는 각종 정보의 공해속에서 생각의 깊이보다는 빠른 정보의 전달을 위주로 변한 세태를 다시금 생각의 바다속으로 인도하는 즐거움을 조금이나마 주는 것이 바로 고전을 읽고 그들이 생각했던 깊이를 음미하는 것이다. 사색의 공간을 마련하는 의미로도 좋고, 지금의 세태를 지난 역사와 비교해 보아도 좋다.

어린시절 적으나마 어려운 한자를 써가며 고사성어를 외웠고 그 의미가 어디에 쓰이는 지도 모르고 읽던 시절이 있었다. 삼국지를 읽고 가슴에 영웅담을 품은적도 있었고, 초한지를 읽으며 세상을 조금 안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고 고우영화백의 십팔사략,열국지를 탐독하며 그속에 담긴 역사이야기 속에서 나오는 고사성어의 배경을 알게된 후 비로소 사자성어의 의미를 깨달게 되었을때, 세상의 쓴맛을 같이 느끼며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문화와 시대가 다르지만 사람이 사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돌고 돈다는 교훈이었다.

우리는 단 네자에 담긴 교훈의 배경이 얼마나 함축적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을때 그속에 담긴 인간사가 우리에게 시공간을 지나 얼마나 아직도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게 되고 그 현명한 지혜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우리가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으면서도 의식적으로 중국의 역사를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는 그 역사적인 배경도 한몫 했으리라 짐작이 된다. 한때는 사대주의사상이니 하며 의식적인 배척을 하게 된적도 있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오랜 역사와 더많은 인간들이 얽히고 섥힌 그들의 인간사,그리고 깊이있는 철학마져 외면하는 우를 범하면 안되겠다는 것이다.

비록 중국이 공산화 과정을 겪으면서 그런 유교적인 역사의 산물을 민중의 적으로 규정하고 분서갱유하듯 한적이 있으나, 시간이 지난후 그들도 비로소 자신이 가진것에 대한 가치를 깨달고 있다고 보고 있다.

우리도 오랜 역사속에서 그들의 철학과 역사의 교훈으로 우리의 역사를 써 나간적이 있고 그리고 많은 문화유산속에 그 문화가 스며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속에도 같은 인간사가 면면히 지금도 흐르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몇마디 글로 또는 사자성어로 촌철살인의 풍자와 역사 지혜를 담고있는 고전의 글귀를 음미하다보면 인간의 삶의 기본과 정의는 시공을 격하고 지금도 인간이 사는 본연의 모습은 별로 바뀐게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고전락을 다시금 받아보고 수천년의 시공을 지나 또 한번 그들과 대화하는 즐거움은 지금 누구와도 바꾸고 싶지 않은 나만의 또다른 락이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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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엄마는 널 믿어 - 꼴찌 문제아를 전교 1등으로, 코칭맘 김민경의 성공 교육
김민경.홍성호 지음 / 여성신문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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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춘기에 접어든 우리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이렇게 저에게 물음을 던집니다.

"아빠 왜 이렇게 힘들게 공부만 해야되요, 그냥 공부도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데 학교와 학원 다녀오면 바로 또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 힘이 드네요.그렇게 남은 몇년을 더 보낸다고 생각하면 우울해요."

평소 별 얘기 없이 학교 잘 다니고 군말 없이 공부 잘 하던 내 아이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니 갑자기 멍 해지고 할 말이 없어 졌었다. 틀린말이 아니기에 한편으로는 안쓰럽고 한편으로는 이 아이가 이러다 엇나가는것 아닌지에 대한 불안함도 마음을 아주 불편하게 만든 것중 하나였다. 그날은 그냥 보편적인 부모의 범주에서 벋어나지 않은 답을 해주고 끝난것 같은데, 그때 우리아이의 표정은 선생님이나, 부모나 다 똑 같은 말만한다는 실망스러움이 역력했었다.

그리고 그 이후 전 처럼 그다지 우리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것 같은 느낌이 들어 힘이 들었다.

나는 물론 우리아이가 이 힘든 사회에 자기자리를 찾아서 한사람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누리길 비는 보편적인 부모일 뿐이다. 하지만 과연 나는 그런 우리아이를 어디로 몰아 넣고 있는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괜찮아, 엄마는 널 믿어'의 성호처럼 우리아이는 그렇게 마구 한쪽에 빠지는 그런 모습은 없지만 그 또래 아이들 답게 부모가 모르는 자기만에 세계가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과정 속에 결국 한두차례의 부딪침이 있은 후 나의 깨달음은 나도 결국은 다른 부모와 같이 점점 성적으로 아이를 평가하는 부모가 되어가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이책이 손에 들어 왔을때 제일 먼저 느낀 것은 바로 '믿음' 이 뭔가 하는 것이었다. 내아이니까 무조건 믿는것이 아니라 이 아이를 이해하는 믿음이었다. 바로 아직은 미완성인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도 사회에서 요구하는 성공의 잣대를 들이대며 아이를 다구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코칭맘 김민경씨에 사례담에서 다시 한번 나를 돌아 보는 계기를 가질 수가 있었다. 실제로 경험이 바탕이 된 생생한 엄마의 마음이 느껴져서 그간 나와 우리아이의 관계도를 그려 볼 수 있었고 진정 아이에게 무엇을 해주는 부모가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믿음을 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는 것은 어느 부모의 공통사항 일 것이다.<괜찮아, 엄마는 널 믿어 중-1>

 

 

믿음을 주는 부모가 되고 싶지만 방치된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 그냥 방치 일뿐.....<괜찮아, 엄마는 널 믿어 중-2>

 

 

바로 꿈에 씨앗을 알게 하고 그것에 물을 주는 부모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믿음이고 소통이었다.

<괜찮아, 엄마는 널 믿어 중-3>

 

 

 

 

부모라는 말은 부와 모가 같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아이는 모두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한다.

<괜찮아, 엄마는 널 믿어 중-4>

 

 

아이가 자신을 결정하고 크길 바란다면 존중해주고 자기 결정권을 줘야한다. 나를 비롯하여 요즘 부모들이 가장 잘못하는것중 하나가 바로 이것.<괜찮아, 엄마는 널 믿어 중-5>

 

 

 

 

이것이 중요 할수있다.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말은 하지만 사회가 혹은 부모가 이런 질풍노도를 허용하질 않는다. 그저 속으로 삭이다 병이 될뿐. <괜찮아, 엄마는 널 믿어 중-6>

 

 

책의 한구절이다. 우리아이에게 이런 후일담을 듣는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모일 것이다.

<괜찮아, 엄마는 널 믿어 중-7>

이렇게 우리아이와 소통하고 믿는 부모가 되는 실제 사례가 마음에 와 닿은 책이었다. 내 아이가 이렇게 되었으니 당신아이도 이렇게 될 수있다.라는 성공기만으로 그쳤다면 자기 자식자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겠지만, 이 책은 부모가 아이와 소통을 하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고, 불완전한 시기에 아이들의 버팀목이 되는 부모의 진정한 역할을 인도하고 있어 마음에 와닿았다. 부모가 되기는 쉽지만 진정한 부모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을 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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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눈 프리키는 알고 있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54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부희령 옮김 / 비룡소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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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접하는 많은 기사들중에 유명연예인부부의 뒤늦은 이혼이라든가 화목한 가정으로 보였던 가족이 어느날 갑자기 이혼을 하면서 그 어두었던 뒷 얘기를 쏟아 내는 것을 본 이후에는 그 이후 아무리 좋아 보이고 화목해보이는 연예인이나 유명인가정의 모습이 옳게 보이지 않았다.



'초록눈의 프리키는 알고 있다'는 사춘가소녀 프랭키의 내면에서 자기보호 본능이 발동 하면서 튀어 나온 분열적 자아, 제2의 프랭키 곧 '초록눈의 프리키'였다.

시작부터 로맨틱하지 않은 음습함이 보여지는 장면들이 이어지고 프리키의 도움으로 그런 어려움을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프랭키는 애써 자신에게 벌어지려 했던 일들을 외면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합리화 시켜버린다. 이런 모습은 프랭키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과도 무관하지 않는데 유명풋볼 선수이자 은퇴후 스포츠 중계로 유명해진 아버지와 여동생 그리고 오빠들(이복오빠),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부러움이 없을 것 같은 화목한 외면을 보이는 집이지만 이것은 겉보기일뿐 집안에 흐르는 분위기는 아버지의 폭력에 길들여진 안락함이었을 뿐이었다.



그저 아버지에 의해서만 움직이면 모든것이 다 평화로운 일이 되는것이다. 그리고 그런 가정안에 엄마는 그저 나에게 필요한 한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엄마조차도 겉으로는 그런 평화로운 가정의 부유함을 잘 즐기고 사는 화목한 가정의 주부 역할을 해왔지만 진실은 다른곳에 있었으니....



어느 날 폭력의 흔적을 발견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역의 안락함을 외면하기 어려운 사춘기의 프랭키는 그것을 외면해버린다. 그런날이 이어지면서 결국 엄마가 떠나버리고 실종이 되면서 이 가정폭력의 끝이 어디에서 종결이되는 지를 보여준다.



사춘기 방황시절의 프랭키는 자신만큼 흔들리는 가정이 계속 평화롭기만 바라면서 애써 그 진실을 외면해버렸지만 결국 초록눈의 프리키라는 다른자아의 진실을 외면하지 말라는 외침에 결국 진실을 말한다. 엄마의 일기장이 그 일을 할 수 있게 해줬다고 믿지만 프랭키는 아빠에게 인질이 되어버린 스톡홀름증후군과 같은 상태를 프리키를 통해 벗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의 아버지의 무서운 진실은 끝나지 않은 진행형이 되지만 사춘기의 프랭키가 겪기에는 너무 버거워보였다.







보호본능과 책임감사이에 방황하지만 결국은 진실을 택할 수있었던 힘이 프랭키에게 남아있었던것은 비록 다른 자아 이지만 초록눈의 프리키라는 내면의 친구가 존재하였기 때문이었다. 가정안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은 도피처 조차 제공 되지 않기때문에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끝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래도 프랭키는 가족과 진실 사이에 어려운 선택을 해야 했지만 진실이란 도피처를 선택한 것에는 지지를 보내고 싶었다.

보는 동안 흔들리는 프랭키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읽어야 했고, 스릴러의 한 장면과도 같은 긴박감도 상상 했지만 이제는 프랭키가 그 상처를 어루 만지고 잘 살기만을 기원하고 싶다.

조이스 캐롤 오츠의 독자를 위한 심리 묘사와 한시도 손에서 그리고 눈에서 시선을 뗄 수없게 한 책 '초록눈에 프리키는 알고 있다'의 또다른 목격자로 여러분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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