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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키튼 1 - 사막의 카리만
우라사와 나오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8년 10월
평점 :
품절
따뜻한 가슴과 진실한 눈으로
학창시절 때야 놀거리가 한정되어 있다보니 만화책에 손이 간다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여지 것 만화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만화책을 즐겨보는 사람들 역시 만화책은 심심파적 삼아 그저 한 번 읽고 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지만 만화에 대한 이러한 고정관념을 살뜰히 깨줄 수 있는 만화책을 열거하자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 황미나의 불새의 늪, 박희정의 호텔 아프리카, 형민우의 프리스트, 타무라 유미의 바사라,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 모치즈키 미네타로의 드래곤 헤드, 아트 슈피겔만의 쥐 등등 끝없이 나열된다. 그리고 마스터 키튼, 몬스터, 20세기 소년의 작가 우라사와 나오키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중에서도 ‘마스터 키튼’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함은 내가 처음으로 읽은 나오키의 작품이자 서른 줄에 들어서도 여전히 만화책 소장(所藏)에 대한 집착과 만화를 열렬히 사랑하게 된 계기를 제공한 주범이기 때문이다.
만화 ‘마스터 키튼’의 주인공 키튼은 프리랜서 보험조사원이자 고고학 시간 강사이며 과거에는 영국 특수 부대 SAS의 서바이벌 교관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특별히 정해진 직업이 없다. 본인 스스로가 원해서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그의 천성과 주변 상황 때문에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한다. 이러한 키튼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 바로 ‘마스터 키튼’이라는 명칭이다. master라는 단어는 ‘석사’라는 뜻이다. 키튼은 professor 즉 박사, 정교수가 되지는 못했음을 의미한다. master는 무언가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주인공 키튼은 어는 한 분야에만 국한되고 한정되어 있는 인물이 아니라 어떤 분야든지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며, 아무리 복잡한 난제라도 해박한 지식과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풀어나간다. 자, 여기까지만 살펴보면 그는 상당히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으로, 아니면 흔히 천재적 캐릭터에서 발견되는 괴팍함이나 기이함을 상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라사와 나오키가 그려낸 키튼은 무척이나 평범한 인물이다. 아내에게 이혼 당하고, 조숙한 딸에게 핀잔을 듣고, 산에서 길을 잃고 흙투성이가 된 채 “지름길로 오려다 길을 잃었습니다.”라고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고, 대학에서 강사 자리를 얻지 못해 돈벌이로 보험조사원을 하는 어쩌면 ‘평범’에도 약간 미치지 못하는 캐릭터이다. 하지만 키튼은 따뜻한 가슴과 진실한 눈을 가진 사람이다. 단편적인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이 책의 큰 줄기인데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보여 지는 키튼의 모습을 통해서 가족애, 인간애, 인류애를 담아낸다. 바로 이러한 점이 여타의 추리 만화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이유가 될 것이다.
‘마스터 키튼’은 일본, 영국, 아일랜드, 독일, 러시아, 이라크, 체코, 이탈리아, 그리스, 아르헨티나 등 세계 각국, 숱한 도시들을 배경으로 130여개에 달하는 사건들을 통해서 가족에 대한 소중함과 사랑, 인종차별의 문제, 국가 간 이해의 문제, 전쟁에 관한 문제, 이념에 대한 문제, 추억의 소중함, 인간의 꿈과 사랑 등을 그리고 있다. 작가 우라사와 나오키는 키튼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자신의 관념과 메시지를 진지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키튼이 속해 있는 세상은 인간의 이기심, 욕망, 악(惡)함으로 얼룩져 있지만 키튼의 눈을 통해 바라 본 세상은 그래도 아직까지는 아름다움과 순수성, 휴머니즘을 발견할 수 있는 희망이 있는 세상이다. 우라사와 나오키와 카츠시카 호크세이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키튼과 같은 깊고 따뜻한 가슴으로, 진실하고 순수한 눈으로 세상과 이웃 그리고 자기 자신과 소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만화를 그려나갔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