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취해 놀다
김화성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저자는 ‘책’이라는 무기물(無機物)을 살아 움직이고 역동하는 유기체(有機體)로 환원하여 책을 통해서 이 세상과 대화하고 소통한다.  

 

이 책을 읽으면 두 번 놀라게 된다. 첫 번째 놀라움은 저자의 방대한 책 읽기이다. 저자의 무궁무진한 책 세계를 잠시 들여다보자면,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김병모의 고고학 여행,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 지승호의 7인 7색, 시바 료타로의 미야모토 무사시, 위쉐빈의 삼국지 인간을 말하다, 이영만의 김응용의 힘, 나카무라 도시오의 오프사이드는 왜 반칙인가, 조너선 닐의 셰르파 히말라야의 전설, 에드 더글라스의 텐징 노르가이, 김홍성의 히말라야 40일간의 낮과 밤, 김훈의 자건거 여행, 박찬욱의 몽타주,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정민의 미쳐야 미친다를 비롯한 수 십 여권의 소설, 인문 사회 과학서, 에세이, 실용서, 시와 고전 심지어 만화책에 이르기까지 책 좀 읽었다고 자부해 왔던 나도 생전 처음 듣는 책들이 숱하게 늘어서 있다. 대체 이 무시무시한 대식성과 잡식성은 무엇이란 말인가.  

 

두 번째 놀라움은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소통하는 그의 독특하고 깊이 있는 사유세계와 직관력이다. ‘전신 조훈현-나는 바둑을 상상한다’와 ‘나의 형, 이창호’같은 바둑천재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통해서 세상에 대해,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사유한다. 장기와 바둑은 패러다임부터 다르다. 장기는 각 말마다 맡은 바 역할과 직책이 있고 다른 말과의 생사와는 상관없이 왕이 죽으면 지고 왕이 살면 이기는 매우 수직적인 구조라면, 바둑은 모든 알들이 평등하고 그 바둑알 하나하나가 독립적으로 강해야 한다는 수평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개별적인 바둑알들이 서로 끊어지지 않도록 연대해야 이길 수 있다는 것이고, 싸움터가 어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둑알이 놓이는 그 곳이 싸움터라는 것이다. 장기가 철저하게 코드화 되어 있고 명확한 목적지가 있는 게임이라면 바둑은 출발점도 도착점도 명확하지 않으며 단지 매 순간 다른 공간, 다른 영토가 생성되는 것이고 도달해야 하는 목적지도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둑은 자유롭지만 외롭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고 삶이라는 것이다.  

 

‘책에 취해 놀다’를 읽고 있으면 과거에서 현재로, 동양에서 서양으로, 산에서 바다로, 하늘에서 땅으로 저자를 좇아 숨 가쁘게 뛰어야 한다. 질질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시간도 공간도 초월한 채 책에 취해 한바탕 거하게 놀아보자는 것이다. 술에 취하면 술 냄새가 진동하듯이 이렇게 흠뻑 책에 취하면 책 냄새가 진동하게 되겠지. 쌀쌀한 가을날 뜨끈한 정종 한 잔 걸치듯 오래된 쿰쿰한 책 한 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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