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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생활의 발견
와타나베 쇼이치 지음, 김욱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책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책은 곧 나를 말해주는 것이다. 즉, 나만의 고전을 만드는 것은 곧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40쪽) 당신의 장서(藏書)를 보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44쪽) 서재를 꾸미는 것은 학문을 생활의 일부로 여기며 나를 닦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69쪽)
<지적생활의 발견>은 평생을 학문에 몰두하고 매진하며 살아온 일본의 영문학자이자 평론가인 ‘와타나베 쇼이치’의 저서이다. 그는 인간이란 본능적으로 지적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에 여타의 동물들과 구별된다고 밝히면서 자신이 그간 영위해 온 지적생활의 즐거움과 만족감, 당위성과 필요성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앞서, 와타나베 쇼이치는 인간이란 지적추구를 통해 기쁨과 풍요를 느끼는 존재이지만 오늘날 현대인들은 분주하고 고단한 현실 속에서 지적생활의 기쁨과 행복을 알지 못한 채 혹은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그렇다면 지적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바로 ‘끊임없이 책을 읽고 지속적으로 글을 써라’이다.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어도 좋은 나만의 책 즉, 나만의 고전이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고전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곧 나를 만들어가고 나를 정립해가는 과정이며, 나만의 서재를 가꾸어 나가는 것이 곧 나를 닦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한다. 즉 나의 책, 나의 서재, 나의 장서가 곧 내 자신을 설명하고 말해주는 것이며 이것이 곧 지대한 지적욕구에 비하여 지적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지적생활을 영위하고 가능케 할 수 있는 길이 되어 줄 것이라는 게 이 노학자의 견해이다. 그 규모가 작고 소소하다 하더라도 나만의 장서, 나만의 책을 가꾸어 나가고, 그 책을 읽고 사색하는 시간이 짧고 간소하다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수행한다면 풍요롭고 만족스러운 지적생활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 저자는 오랜 시간 축적된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적생활을 위한 여러 방법들과 권고사항들을 제시하면서 정신적으로 내적으로 좀 더 풍요로운 일상을 위해, 삶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 책을 통해 조언하고 있다.
저자의 견해에 대하여 대체적으로 공감하며 특히 ‘땀을 흘리고 있는 동안에 영감도 함께 떠오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겉으로 보기에는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오히려 마음은 자유로워져 통찰이 깊어지고 새로운 영감과 구상이 떠오르는 것이다. 즉,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일단 작업에 착수해 일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117쪽)’와 같은 저자의 생각에 크게 공감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위대한 작가들 대부분이 뜻밖의 영감을 통해서가 아니라 매일 매일 규칙적, 지속적으로 아주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훌륭한 작품들을 탄생시켜 왔다.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르한 파묵은 하루에 9~10시간씩 매일 글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파묵은 작가의 첫 번째 덕목으로 바늘로 우물을 파는 인내심을 꼽았다. 오죽하면 작가 황석영은 글은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쓰는 것이라고 했을까.
그러나 저자 와타나베 쇼이치의 모든 견해에 동의할 수는 없다. 우선 ‘건전한 책(40-42쪽)’에 관한 그의 생각과 그 생각에 대한 사례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저자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작품은 건전하지 못하며 읽으면 기분이 좋지 않고ㅡ그의 작품들이 유쾌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ㅡ, 학창 시절 아쿠타가와의 작품을 즐겨 읽던 친구가 있었는데 중학교 때부터 문란을 행동을 했으며 훗날 책을 읽는 지적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술회한다. 개인적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매우 좋아하는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작품을 거의 다 읽어버린 나로서는 난감하기 그지없었고ㅡ내 자신이 그동안 책이라고는 통 읽지 않고 살아왔는지 또 문란한 인간은 아닌지 잠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ㅡ설령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 대목에서는 웃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어떤 교수가 작가 이상의 작품들은 건전하지 못하고 읽으면 기분이 좋지 않고 이상의 작품을 읽으면 문란해지고 나중에 책이라고는 전혀 읽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일본인이 그것도 일본 대학에 몸담고 있는 영문학 교수가 아쿠타가와의 작품을 이렇게 평가한 그 용기 하나만큼은 높이 산다.
‘장서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86-88쪽)’ 중 장서의 질은 내용뿐 아니라 아름다운 모로코가죽 장정에 금박을 입힌 책일 때에 그 질이 높아지고, 어차피 남은 생애 동안 그렇게 많은 책을 읽을 수 없다면 값싼 문고판보다는 가격이 비싸더라도 고급 양장본이나 삽화가 좋은 책을 읽어야 하고, 토머스 그레이의 시를 싸구려 복사판으로 읽는다면 어쩐지 인생이 아깝다는 부분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김용택 시인의 ‘시가 내게로 왔다’ 중 몇몇 구절들이 생각난다. 이용악 시인의 시집 ‘낡은 집’의 복사본을 만나던 날의 기쁨과 충격을 김용택 시인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면서 그 ‘낡은 집’은 자신이 만난 시집 가운데 가장 완벽한 시집이었다고 술회한다. 또 김용택 시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 박수근의 그림을 신문이나 잡지에서 오려 방 여기저기 붙여 놓았는데 언젠가 아내랑 그 그림 앞에 서서 “우리는 참 복도 많아, 이런 그림 앞에 서 있을 수 있다니”라며 행복해했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이용악 시인의 시집이 모로코가죽 장정에 금박이 입혀 있고, 방에 박수근 화가의 진품 그림이 걸려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김용택 시인이 복사본 시집을 보면서, 신문과 잡지에서 오려낸 그림을 보면서 ‘아, 내 인생이 어쩐지 아깝구나’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자 와타나베 쇼이치가 주장하는 지적생활을 통한 정신적 풍요로움, 내적 만족감을 진정으로 깨닫고 누리는 삶이란 다름 아닌 김용택 시인의 삶의 태도(attitude)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