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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방문했습니다
장태호 지음 / 종이심장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아프리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떤 것들이 생각날까. 적도의 더위, 빈곤, 내전, 흑인, 르완다의 참상, 넬슨만델라, 인종차별, 풍토병... 머리속에서 생각나는 건 대체로 이런 것들 뿐이다. 태평양 어디 쯤 자리잡은 이 한반도의 서울이라는 곳에서 아프리카는 너무 멀고 위험하고 덥고 험하고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다. 이 책은 가장 큰 의미는 아프리카 기행문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라는 점이다. 그만큼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는 이야기와 맥락을 함께 할 것이다.
아프리카는 세계 제2의 거대한 대륙이며 많은 나라로 이루어져 있지만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방문했습니다''는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남단에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거대한 아프리카 대륙을 한 권의 책으로 설명하기는 불가능 할 것이므로... 대부분의 지명들은 생전 처음들어보는 이름들 뿐이다. 시그너 힐, 랑가방, 아틀란티스 샌듄, 팔락마운틴, 쥬스텐버그, 월즈니스, 셋지필드, 치치캄마, 블루크랑스, 테이블마운틴, 하라레 그리고 케이프타운... 이 생소한 지명과 산의 이름, 장소들은 저자가 페이지마다 담아 놓은 아름답고 신비한 사진들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보는 이를 점점 더 아프리카의 매력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그 중에서도 ''사막을 걷습니다 아틀란티스 샌듄''이라는 챕터와 ''남극에서 올라온 파도 캠스베이 비치''라는 챕터에서 보았던 저자의 글과 사진은 일요일 오후 커텐이 드리워진 집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나를 흥분시켰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하얀 모래 사막...사막이라 하기에는 너무 작은 그래서 지도에도 없는 하얀 정말 새하얀 모래로 되어 있는 사막이 한뼘짜리 사진에 담겨 있었다. 사막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태양이 작렬하고 생명체의 생과 사가 왔다갔다는 하는 극한의 공간이 아니라 눈 위에서 스노우 보드를 타듯 아이들이 샌드보드를 타고 모래언덕에서 신나게 내달리는 바로 그런 곳이었다. 게다가 조금은 소란스럽고 정신없는 샌드보드놀이에서 조금만 거리를 두면 사막 그 특유의 고요함과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는 세상이 펼쳐진다.
나는 사막을 걷고 싶지만 그건 사막에 도달한 이후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우선 거기에 도달해야 마음껏 걸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앞에 사막이 나타났습니다.
두 뺨으로 모래가 섞인 바람이 불어오더니 사막이 다가와준 것입니다. (p47)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의 해변 중에서 희한하게도 캠스베이 비치의 바닷물은 유난히 차갑다고 한다. 아니 왜? 그 더운 아프리카의 바닷물이 차갑다니... 차가운 파도가 남극으로부터 밀려들어오는 해변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놀라게 만든 건 남극에서부터 밀려온다는 파도였지만 날 설레이게 만든 건 캠스베이 해변의 하늘이다. 이토록 파란 하늘을 나는 본 적이 있었던가. 손에 걸릴 듯 가까이 내려앉은 하늘과 하얀 구름과 샛파란 하늘...저자 역시 말보다 사진으로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 여러 장의 하늘 사진을 담았다.
캠스베이를 걸을 때 고개를 조금 숙여주는 것이 좋습니다. 잘못하면 하늘 어딘가로
시선을 그만 놓치는 일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시선을 놓쳐버리는 것입니다.
어딘지 모를 곳으로 시선을 잃고 그만 가슴이 멍멍해지고 마는 것입니다.(중략)
하늘이 다른 방식으로 열리는 것입니다. 섬세한 호흡으로 바다를 흔들고 그렇게
흔든 바다로 해변을 걷는 사람을 붙잡아 심장을 벌컥거리게 만든 다음 바람 하나를
심장 속에 박아 넣는 것입니다.(중략)
캠스베이, 이 나른한 해변의 하늘에 갇힌 채 말입니다. (p179)
사실 이 책만 달랑 들고 아프리카를 여행한다는 것은 절대 무리다. 단순한 기행문이나 실용여행서가 아니기에 그러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아프리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상당 부분 변화시켜 주었다는 점과 아프리카에 꼭, 반드시. 기필코 여행을 가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갖게해주었다는 점에서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방문했습니다''는 훌륭한 여행에세이라 생각한다. 여행의 본질이 무엇인지, 인간에게 행복은 권리이며 의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일종의 여행 철학서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여행이란 단지 떠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향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저자...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여행에게로 떠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철학적 관념을 아직 이해할 수는 없지만 훗날 나 역시 그리스로 체코로 쿠바로 그리고 아프리카로 여행을 하게 된다면 저자가 이야기 하는 ''여행에게로 떠나는 것''의 의미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