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보흐밀 흐라발 지음, 김경옥.송순섭 옮김 / 버티고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체코 작가인 보흐밀 흐라발의 작품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독일에 의해 점령당한 체코의 한 간이역을 배경으로 비참한 현실과 서글픈 삶을 기본 모태로 하되 인간의 존엄성과 전쟁의 패악을 따뜻하고 유쾌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암울하고 참담한 현실을 유쾌하게 표현하려는 보흐밀 흐라말의 작전은 이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진행된다.

수습 역무원인 젊은 청년 밀로시 흐르마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다. 스물두 살 되던 해에 여자 친구와의 첫 성경험에 실패하고 어처구니 없게도 자살을 시도하지만 죽지도 못하고 다시 근무에 복귀하는 평범하다 못해 바보 같은 흐르마가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전쟁의 막바지에 다다른 독일군들의 행패가 극심했고(우리나라도 그러지 않았던가. 일본이 가장 극악하게 조선인들을 괴롭힌 것이 패망하기 직전이었으니까.) 엄중히 감시받는 독일군 열차에 신호를 잘못 보냈다는 이유로 독일군 기차에 끌려들어가 총살을 당할 뻔 하기도 한다.

역장 란스키는 괴팍한 성격에 화도 잘 내고(그래서 때때로 부인한테 따귀를 맞기도 하고) 기차역의 업무보다는 승진과 비둘기 키우는 것에만(옷에 비둘기 똥을 잔뜩 묻힌 채 상사를 접대하기도 하는)열중하는 사내다.

배차계장 후비츠카는 젊은 여자 전신기사의 엉덩이에 업무용 도장을 찍고(책을 읽기 전에는 ‘여자 전신기사’를 女子 全身記事 그러니까 여자의 온 몸이 나와 있는 신문기사의 사진에 도장을 찍는 것인 줄 알았는데 책을 읽어보니 그게 아니라 女子 傳信技士(技師) 즉 편지를 전하는 여자 사무원을 뜻하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같은 기차역에서 일하는 여자 사무원의 엉덩이에 업무용 도장을 찍었다는 것이다...이런)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인물이다.

암울하기 그지없는 현실과는 달리 이 현실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은 낙천적이고 웃기는 인간들이다. 하지만 이 세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들의 나라 체코를 아끼고 사랑하며 체코가 독일의 억압과 탄압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찾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주인공 말로시 흐르마는 결국 후비츠카 씨와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독일군과 탄약이 실린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를 폭파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흐르마는 이 과정에서 치명적인 총상을 당해 숨져 가고 그때 옆에 있었던 것은 흐르마의 총에 맞은 독일군 병사였다. 죽음으로 향해가는 독일군 병사를 보며 흐르마는 연민과 함께 자신도 그 독일군 병사도 모두 다 똑같은 ‘인간’인데 도대체 왜, 어째서, 무엇 때문에 이렇게 서로를 죽여야 하는지를 반문한다. 흐르마는 엄마를 부르며 죽어가는 독일군 병사의 손을 잡고 이렇게 이야기하며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는 끝이 난다.
“집구석에 궁둥이나 붙이고 얌전히 앉아들 있을 일이지!”

끔찍하고 비참한 현실을 따뜻하고 유쾌하게 그리고 무겁지 않게 그려나가는 보흐밀 흐라발의 이 작품의 이면에는 사실 극렬하게 전쟁에 대해 비판하고 있으며 평범한 인간들을 통해서 전쟁이라는 모순덩어리를 날카로운 매스로 도려내고 있다.

2006년 이 시점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과 내전이 벌어지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에 이 현실 속에서 진정한 인간의 존엄성과 휴머니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게 된다.

[인상깊은구절]
그 역시 인간이었다. 나처럼, 혹은 후비치카 씨처럼 말이다. 특별하게 잘난 것도, 특별한 지위도 없는 그저 평범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를 쏘고, 서로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곳 말고 다른 곳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만났더라면,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지도 모르겠다.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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