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상자의 역습 - 대중문화가 어떻게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들었나?
스티븐 존슨 지음, 윤명지.김영상 옮김 / 비즈앤비즈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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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존슨의 '바보상자의 역습'을 접하게 된 건 2006년 12월 초쯤이었나, KBS1에서 방송하는 'TV 책을 말하다'라는 프로를 통해서였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커다란 책상에 둘러 앉아 한 해 동안 출판된 수많은 책들 중 몇 개의 키워드를 통해 올해의 책을 선정하는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인생수업’이라든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빈곤의 종말’과 같은 한 해 동안 '좋은 책이다'라고 숱하게 들어왔던 도서들도 있었지만 스티븐 존슨의 ‘바보상자의 역습’은 이 프로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고 책에 관한 소개를 듣자마자 읽고 싶어졌다. 대중문화가 인간들을 더 똑똑하게 만들어 주었다라고?



우선 이 책에 대해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올해의 책에 선정된 만큼 내용의 구성이라든가 과학적 변론, 연구, 관찰, 저자 본인의 직관력과 사고 등이 잘 어우러져 흥미롭고 설득력 있는 책을 만들었지만 대중문화 편들기 같은 편협한 시각에서 이 책을 쓴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책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하나의 존재를 일관되게 생각하지 않고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기'라는 저자의 남다른 시선에 끌린 것이다. 그는 대중문화를 크게 게임, TV, 인터넷, 영화로 나누어서 이러한 대중문화가 어떻게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들었는지 예를 들어주고, 관련 자료를 제시하고, 논증하고, 유쾌한 수다를 버무려 인문과학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쉽고 무겁지 않게 설명해주고 있다.



책을 통한 독서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훌륭한 지적유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뇌운동과 상상력을 활성화하는데 있어서도 독서만큼 좋은 것이 없다. 하지만 책과 대비되는 모든 대중문화를 저질이다, 단순하다라고 매도하기에는 인간의 뇌기능 활성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했을 때, 더 이상 ‘바보상자’라고 치부할 수 없음을 저자인 스티븐 존슨은 조목조목 이야기 하고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게임도, TV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도, 인터넷도, 게임도, 영화도 점점 어려워지고 복잡해짐으로써 우리를 생각하게 만들고, 고민하게 하고, 연구하게 하고, 추리하게 하고, 양방향으로 참여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뇌를 운동시킨다는 것 즉 좀 더 명민한 뇌, 똑똑한 뇌로 이끌어 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저자의 논리에 합당한 예를 드는 것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CSI 시리즈라던가 LOST, 24와 같은 TV 드라마는 매 회 시청자들로 하여금 복잡한 사건들을 추리하게 하고 풀어나가도록 유도함으로써 인간의 뇌를 움직이게 만든다. 하나의 인터넷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수 십 개가 넘는 캐릭터나 유닛의 특징을 파악하고, 수 백 개에 이르는 그 게임의 규칙, 특성, 공략하기 위한 방법 등을 익혀야 가능하다.



저자의 이러한 관점을 어느 정도 동조하기에 더욱 흥미롭게 읽혔음은 물론이고 게다가 대중문화가 청소년이나 어린 아이에게 미치는 선정성, 폭력성에 대해서는 저자 역시 비판적 입장이었고-이 책의 주제는 대중문화가 우리를 똑똑하게 만들었다는 순기능에 관한 것이지 대중문화의 저질적인 부분과 폭력성 따위를 감싸고자 했던 것이 아니다-독서의 중요성에 관해 잊지 않고 언급하는 것 역시 생각이 같았기에 저자의 논조가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바보상자의 역습’은 대중문화가 하향평준화 되어가고 있다, 대중문화는 저질이다라는 보편적 관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이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 서서 ‘대중문화’라는 키워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신선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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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열차 - 꿈꾸는 여행자의 산책로
에릭 파이 지음, 김민정 옮김 / 푸른숲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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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에릭 파이의 야간열차를 읽는 동안 처음에 느꼈던 감정과 끝에 이르렀을 때의 나의 감정이 크게 변화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동질감’이라든가 ‘동경심’을 느꼈다. 밤에 잠을 자는 다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제외된 잠 못 이루는 자들 중 하나였던 나로서는 야간열차를 통해서 나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안도했다고 해야 할까. 게다가 이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던 저자 본인을 비롯 잠 못 이루는 자들에 대한 일종의 미화적 발상은 내 기분을 만족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단지 에릭 파이와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저자는 야간열차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아주 설레고 멋지고 운치 있는 밤을 보낸다는 사실이었는데 바로 그것이 나의 동경심을 자극했다. 세밀한 묘사와 조금은 환상적이고 독자를 낯선 곳으로 인도하는 작가 특유의 독특한 표현력이 더해져 방구석에서 날 밤을 지새우고 있는 독자 중 하나였던 나에게 얼마나 많은 자극과 동경심을 심어주어겠는가. 야간열차의 부제로 붙어 있는 '꿈꾸는 여행자의 산책로'라는 부제와 파스텔톤의 삽화들이 어우러져 몽환적인 기분을 타고 이 책 속으로 점점 더 빠져들게 했다. 여기까지는 참 좋았다. 

이성이 있기에 인간은 비로소 인간이 되었다라고 했던가. 지금 여기서 이 책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감정적인지를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감정적이기는 하지만 비현실적이는 않다) 책을 읽다가 돌아온 내 이성에 대한 안도감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에릭 파이는 여행자로서의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다. 제국주의에 대해 경멸한다는 그는 다분히 제국주의적 사관이 너무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서방 자유주의 국가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국민이라는 점과 프랑스가 얼마나 대단한 선진국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프랑스가 G7국가 중 하나라는 사실과 본인이 서양인이라는 점, 프랑스인이라는 점에 대해서 얼마나 지나친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가를 야간열차를 통해서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아직 사회주의 체제에서 벗어나진 못해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유럽의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또 중국이라든가 몽골이라든가 아시아의 국가를 야간열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조롱하고 비하한다. 아주 점잖게. 비하하는 건 아니야. 조롱하는 건 아니야. 단지 내 느낌이나 상황이 그랬을 뿐이야. 원 세상에...책을 읽다가 나는 그만 화가 나버렸다. 이 사람은 도대체 왜 여행을 하는 것일까? 혹시 저자는 프랑스인이라는 우월성의 재확인과 다른 존재들의 불행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위치에 있는지를 확인하고 만족하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여행을 하면서 계속 불안 속에 있었고 짜증과 불만 심지어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었다. 자신이 마치 서구 영화 속에 주인공이 된 것처럼. 

동안 많지는 않지만 여러 권의 여행에세이들을 읽으며 저자들이 느꼈던 낯선 곳에 대한 설레임이라든가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배려 혹은 우수성에 관해 이야기 해주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에릭 파이식 여행하기는 나에게 반감을 주고 말았다. 여행을 하면서 불평도 있을 수 있고 화가 날 수도 있다. 류시화씨가 인도를 여행하며 겪는 무수한 이야기들은 읽고 있는 내가 다 짜증이 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몇 시간이고 떠나지 않는 버스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뜯어내려는 인도 사람들. 장태호씨의 아프리카 여행기는 또 어떠했던가. 갈매기 똥이 들어간 음식을 먹기도 해야 했고 정승희씨의 아마존 여행기는 정말 목숨을 건 사투가 벌어지기도 했고 수천마리의 바퀴벌레와 잠을 자기도 했다. 이들은 불만스러웠다고 정말 힘들었다고 호소하지만 이들의 불평과 짜증에는 따뜻함과 이해와 배려와 정이 있었다. 그렇기에 타문화 앞에서 자국의 우월성이라든가 타문화 비하라든가 조롱 같은 건 있을 수가 없다. 여행은 그렇게 하는 거 아닌가? 타문화를 이해하려고 하고 우수성을 관철시키기도 하고 그들과 어울리고 함께 하려고 애쓰는 것. 바로 그것이 진정한 여행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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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 - 인류 최후의 에덴동산, 아마존 오디세이
정승희 지음.사진 / 사군자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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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아마존에 가게 된다면 꼭 가져가야 할 목록 3가지는 어떤 것인가라는 물음에 내 대답은 다용도 칼과 필기구와 ‘물’이었다. 왠지 그곳에는 사람이 마실만한 적당한 물이 없을 것만 같은 생각에 물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를 펼치자마자 프롤로그 부분에 ‘아마존 강이 바다로 내뿜는 신선한 물의 양은 1초에 약 2천억cc로 이것은 1초에 4억 명이 500cc씩 마시기에 충분한 양이며 15초마다 전 세계인구 60억이 500cc씩 마실 수가 있다고 한다.’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오...맙소사. 이렇게 무식할 수가...서울에서 마시는 물보다 깨끗한 물이 넘쳐흐르는 곳이 바로 아마존인데 말이다. 물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아마존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시적인, 질이 낮은, 더러운, 끔찍한, 사나운, 인간보다 짐승에 더 가까운, 이러한 편견과 오해로 시작된 아마존 읽기는 중간에 도저히 책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했고 나의 편견들을 바로 잡아 주었다.  

 

이 책을 쓴 정승희씨는 본업이 작가가 아니기 때문인지 문장을 유려하게 다듬거나 화려한 수사어구 같은 건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마치 아마존 한 복판을 허우적거리며 헤매고 있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여과 없이 솔직하고 시원시원하게 글을 써 내려 갔다. 친한 학교 선배가 소주 한 잔하면서 내가 아마존에 갔는데 말이야, 아 글쎄 이랬지 뭐냐 하고 이야기 해주는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는 저자가 방송 촬영을 위해 수차례 아마존을 여행하면서 겪었던 일들, 느꼈던 감정, 풍경,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은 책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3부 ‘아마존에서 산다는 것’ 챕터에 수록된 여자들만 모여 사는 부족인 ‘야르보족’에 관한 이야기였다. 처음 등장할 때의 모습은 다분히 전사다운 강한 여성의 모습이었다. 남자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비롯 소도 잡아먹는다는 아나콘다를 맨 손으로 때려잡는 그 터프함이란... 하지만 왜 그녀들이 여자들로만 구성된 부족을 이루며 살게 되었는지를 찬찬히 풀어놓을 때 한 명의 문명인으로써 미안하고 같은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강한 분노를 느꼈다. 사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일명 ‘문명인’이라 지칭되어 지는 서구의 많은 사람들이 자연과 더불어 평화롭게 자신들의 문화를 보존하며 살아가는 아마존의 숱한 사람들에게 결코 해서는 안 될 이기적이고 사악한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고발하고 반성하고 있다. 

 

저자가 바라보는 아마존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순수함’ 혹은 ‘순진무구함’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깨끗하고 순수하다. 하지만 아마존의 밖, 문명이라는 탈을 쓰고 욕심으로 얼룩진 존재들이 이들을 이용하고 학대하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아마도 저자 정승희씨는 자신이 보고 느낀 아마존의 순수함을 알리고 현대의 문명이라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이롭기만 한 것인가를 반추해보고자 이 책을 써 내려 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마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빠질까봐 그 추락을 막기 위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싱구 부족들의 삶처럼 내일 역시 오늘과 같을 수 있다면 적으도 나는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며 현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보다 오늘의 소박한 행복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뭐라고 해도 문명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문명으로부터 떨어져 있으면 떨어져 있을수록 행복한 ‘싱구’를 나는 보았고 그 증거가 아직도 아마존 싱구 강 유역에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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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위한 스테이크
에프라임 키숀 지음, 프리드리히 콜사트 그림, 최경은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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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재미있는 글을 쓰거나 유머가 넘치는 말을 할 수 있을까. 평생 즐겁게 살아온 사람? 낙천적 성격? 아니면 타고난 유머감각? 그렇다면 개를 위한 스테이크의 저자 에프라임 키숀은 어디에 해당되는 사람일까? 적어도 평생 즐겁게 살아온 사람에는 속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2차 세계대전을 겪고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유대인 중에 한 사람이다. 전쟁이 끝나고 이스라엘로 돌아와 살았지만 알다시피 그곳도 결코 평화롭고 행복한 나라와는 거리가 먼 곳이다.

''개를 위한 스테이크''는 한 가장의 소소한 일상들을 짧은 단편들로 구성한 책이다. 대부분이 그냥 넘어갈 법한 평범한 일상들이지만 키숀은 마치 낚시꾼이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것처럼 이 소소한 일상들을 잡아 올려 하나의 유머러스한 일상로 변화시킨다. 그중에서도 ''고무젖꼭지 체치의 비밀'' ''우산 도둑으로 몰리다'' ''옆집 라디오와 우리집 면도기'' ''엄마 좀 바꿔줘''는 거의 쓰러질 정도로 웃으며 읽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키숀이 쓴 책만으로 그의 삶이 어땠을까를 대략 가늠해 본다면 그는 무척이나 유쾌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처럼 보인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인생을 유쾌하게 바라보려고 애쓰며 살아온 사람처럼 보인다. 평범한 가족을 이루고 있는 평범한 한 사람의 가장으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을 그 특유의 통찰력으로 모든 것을 ''유머''로 바꿔버린다. 그의 인생이 그렇게 재미있었을까? 앞에서도 생각해 봤지만 그는 즐거운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토록 폭소를 터트리게 하는 유쾌한 글을 쓸 수 있었을까. 그건 아마도 키숀이 ''승화''라는 단계를 거쳤기 때문일 것이다. 어둡고 비참했던 삶을 겪은 그는 모든 것을 웃음으로, 유머로, 풍자로, 유쾌한 삶으로 승화시켰다.

이 책의 표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웃다 보면 인생을 음미하게 되고 인생을 음미하다 보면 웃게 된다''
아직은 이 글귀의 의미가 머리로만 이해되고 마음으로는 절반도 파악되지 않지만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웃음의 미학을 알게 된다면 이 문장이 지금보다는 더 가슴에 와 닿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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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선비 - 살아있는 조선의 청빈을 만난다, 개정판 조선을 움직인 위대한 인물들 1
이준구.강호성 엮음 / 스타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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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강호성 편저의 ''조선의 선비''는 책의 제목에서 풍겨지는 느낌처럼 딱딱하고 어렵거나고리타분하지 않다. 오히려 한 편의 전래동화를 읽고 있는 기분이 들만큼 재미있고 쉽다. 하지만 그 내용이 쉽고 재미있다고 해서 가볍게 그저 웃어넘겨 버리기에는 ''지금 이 시점에서 왜 이런 책이 출판될 수 밖에 없었겠는가''라는 생각 때문에 마냥 감탄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없었다.

조선의 선비들, 여기서 말하는 선비는 양반, 벼슬아치, 학자를 뜻한다기 보다는 학문의 뜻을 두고 백성을 귀하게 생각하며 자기 자신을 다스리고 바른 말 하기를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겼으며 청빈하게 사는 사람들를 뜻한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조선이 무려 오백년간 유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를 들 때, 조선의 과거제도와 선비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조선의 ''선비''라는 존재는 나라의 기둥이었고 백성들이 따르고 존경하는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바로 이러한 선비들 중에서도 서른명의 선비들을 모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놀라운 건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선비들보다 그 이름이 생소한 선비들이 더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태어나고 죽은 날이 언제인지 조차 명확하지 않은 낮은 직책의 관리도 있었고 입신보다는 자신의 뜻과 학문에 매진하고자 했던 사람들도 있었기에 아마도 그 이름들이 낯설었던 모양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선비는 김수팽이라는 영조 시대의 아전에 관한 이야기다.아전이라 하면 양반의 신분이 아닌 중인(中人) 계급이었는데 이런 사람도 선비라고 할 수 있나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저자들이 왜 김수팽이라는 인물을 선택했는지 곧 알게 되었다. 그는 비록 아전이었지만 한 나라의 관리로서 얼마나 청렴하게-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당시 아전들은 직접적으로 실무를 담당하던 사람들이라 왠만한 벼슬아치들보다 더 많은 부정과 부패를 행했다고 한다-자신의 위치에서 도리를 다하였는지를 몇 가지 일화들을 들어 소개한다. 그를 더더욱 주목하게 만들었던 이유는 재상의 집으로 서류 결재를 받으러 간 일화에서였다. 재상은 바둑 두기에 열중한 나머지 서류 재가를 하지 않고 있었다. 김수팽은 한 시간 두 시간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화답이 없자 재상의 방으로 뛰어들어가 바둑판을 손으로 죄다 쓸어 버리고는 도로 뛰어내려와 자기를 죽여도 좋으니 어서 서류에 재가를 해달라고 읍소했다. 이 부분에서 그만 실소가 터져 나왔다. 누가 봐도, 중요한 서류를 앞에 두고 바둑이나 두는 재상이 잘못이 컸지만 그래도 그렇지 고작 아전의 직책을 가진 자가 한 나라의 재상 방에 허락도 없이 뛰어들어가서는 그것도 모자라 바둑판까지 쓸어버렸으니 이건 모르긴 몰라도 태장감 아니 그보다 더 한 처벌을 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물며 김수팽이 그걸 몰랐을까. 하지만 그에게는 재상이고 뭐고 어서 이 급한 서류에 재가를 받는 것이 더 중했던 것이다. 다행이도 재상은-누구였는지 참 궁금하다-"저 버릇없는 아전 놈에게 술이나 한 잔 내려라!"라고 했다고 하니 여하튼 해피엔딩이었다.

나라의 높으신 분들, 나라 일을, 국민의 일을 돌보고 있는 많은 공직자분들이 김수팽과 이 재상과 같다면 어떨까. 자신의 안위를 챙기기 보다는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굽히지 않고 행동하고, 아랫사람의 깊은 뜻을 헤아려 보고 자신의 행동을 반추해보는 공직자들이 많은 세상이라면 지금처럼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신문에서, TV에서 보지 않아도 될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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