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야간열차 - 꿈꾸는 여행자의 산책로
에릭 파이 지음, 김민정 옮김 / 푸른숲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에릭 파이의 야간열차를 읽는 동안 처음에 느꼈던 감정과 끝에 이르렀을 때의 나의 감정이 크게 변화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동질감’이라든가 ‘동경심’을 느꼈다. 밤에 잠을 자는 다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제외된 잠 못 이루는 자들 중 하나였던 나로서는 야간열차를 통해서 나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안도했다고 해야 할까. 게다가 이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던 저자 본인을 비롯 잠 못 이루는 자들에 대한 일종의 미화적 발상은 내 기분을 만족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단지 에릭 파이와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저자는 야간열차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아주 설레고 멋지고 운치 있는 밤을 보낸다는 사실이었는데 바로 그것이 나의 동경심을 자극했다. 세밀한 묘사와 조금은 환상적이고 독자를 낯선 곳으로 인도하는 작가 특유의 독특한 표현력이 더해져 방구석에서 날 밤을 지새우고 있는 독자 중 하나였던 나에게 얼마나 많은 자극과 동경심을 심어주어겠는가. 야간열차의 부제로 붙어 있는 '꿈꾸는 여행자의 산책로'라는 부제와 파스텔톤의 삽화들이 어우러져 몽환적인 기분을 타고 이 책 속으로 점점 더 빠져들게 했다. 여기까지는 참 좋았다.
이성이 있기에 인간은 비로소 인간이 되었다라고 했던가. 지금 여기서 이 책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감정적인지를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감정적이기는 하지만 비현실적이는 않다) 책을 읽다가 돌아온 내 이성에 대한 안도감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에릭 파이는 여행자로서의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다. 제국주의에 대해 경멸한다는 그는 다분히 제국주의적 사관이 너무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서방 자유주의 국가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국민이라는 점과 프랑스가 얼마나 대단한 선진국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프랑스가 G7국가 중 하나라는 사실과 본인이 서양인이라는 점, 프랑스인이라는 점에 대해서 얼마나 지나친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가를 야간열차를 통해서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아직 사회주의 체제에서 벗어나진 못해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유럽의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또 중국이라든가 몽골이라든가 아시아의 국가를 야간열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조롱하고 비하한다. 아주 점잖게. 비하하는 건 아니야. 조롱하는 건 아니야. 단지 내 느낌이나 상황이 그랬을 뿐이야. 원 세상에...책을 읽다가 나는 그만 화가 나버렸다. 이 사람은 도대체 왜 여행을 하는 것일까? 혹시 저자는 프랑스인이라는 우월성의 재확인과 다른 존재들의 불행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위치에 있는지를 확인하고 만족하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여행을 하면서 계속 불안 속에 있었고 짜증과 불만 심지어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었다. 자신이 마치 서구 영화 속에 주인공이 된 것처럼.
그동안 많지는 않지만 여러 권의 여행에세이들을 읽으며 저자들이 느꼈던 낯선 곳에 대한 설레임이라든가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배려 혹은 우수성에 관해 이야기 해주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에릭 파이식 여행하기는 나에게 반감을 주고 말았다. 여행을 하면서 불평도 있을 수 있고 화가 날 수도 있다. 류시화씨가 인도를 여행하며 겪는 무수한 이야기들은 읽고 있는 내가 다 짜증이 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몇 시간이고 떠나지 않는 버스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뜯어내려는 인도 사람들. 장태호씨의 아프리카 여행기는 또 어떠했던가. 갈매기 똥이 들어간 음식을 먹기도 해야 했고 정승희씨의 아마존 여행기는 정말 목숨을 건 사투가 벌어지기도 했고 수천마리의 바퀴벌레와 잠을 자기도 했다. 이들은 불만스러웠다고 정말 힘들었다고 호소하지만 이들의 불평과 짜증에는 따뜻함과 이해와 배려와 정이 있었다. 그렇기에 타문화 앞에서 자국의 우월성이라든가 타문화 비하라든가 조롱 같은 건 있을 수가 없다. 여행은 그렇게 하는 거 아닌가? 타문화를 이해하려고 하고 우수성을 관철시키기도 하고 그들과 어울리고 함께 하려고 애쓰는 것. 바로 그것이 진정한 여행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