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을 다시 쓴다 - 객관성, 여성운동, 인권 한국 여성인권운동사 2
정희진 엮음, 한국 여성의전화 연합 기획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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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경중을 논할 필요가 없는 문제이지만, 가부장제가 공고한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은 여성의 삶에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출간된 지 20년이 지난 책인데도 각각의 챕터에 등장하는 사례와 여성폭력의 실태는 현재에도 유효하다. 어디에나 권력이 존재하는데, 유독 여성에게는 그 권력의 횡포가 성폭력으로 나타난다. 특히 ‘동지’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권력관계를 지양하고 진보를 자처하는 운동권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은 과정부터 결과에 이르기까지 여성을 비가시화시킨다. ‘사실’은 ‘의혹’으로 변질되고 피해자 보호는 가해자의 인권과 상충되는 개념이 되어 버린다. 이 모든 것은 성폭력 사건의 공론화를 막기 위한 수단이자 피해자를 숨게 만드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
흥미로웠던 것은 오늘날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당한 사람 또는 ‘피해 호소인’이라는 괴랄한 단어를 사용하던 정당의 국회의원이 성폭력 운동의 폭발을 불러일으키거나 성폭력과 관련된 법 제정을 견인했던 특정 사건의 피해자를 변호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가해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그러니까 가해자의 명예와 지위, 권력에 따라 성폭력 피해 오염 정도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인권’ 조차도 권력의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자명한 현실은 성폭력 문제를 더욱 해결하기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그것이 정희진의 말처럼 “성적 타자들의 연대에 의한 대안적 섹슈얼리티의 실천”과 “새로운 정치적 상상과 실천의 과정”에서의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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