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실격 쏜살 문고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이은숙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날개에 쓰여진 작가 길먼의 생애에 대한 글을 읽어서였을까. 길먼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투영한 것 같은 내용이 많았다. 특히 『누런 벽지』의 경우 휴식요법이라는 억압으로 고통받은 자신의 경험을 자전적으로 풀어냈다. 작가는 페미니즘 고전 문학답게 여성을 터부시하는 사회와 풍조를 꼬집었는데, 그 방식은 재치와 유머, 기발함이 풍부하다 못해 넘쳐 흘렀다. 이렇게 세련된 글을 약 100년 전에 썼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여성들이 공동체를 만들어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는 『벌들처럼』,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아내의 돈으로 먹고 살면서 아내와 아이들을 구박하다 아내의 각성으로 빈털터리가 된 남자 이야기 『비즐리 부인의 증서』다.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어떻게 이런 내용들을 상상할 수 있었는지, 아마 길먼은 타고난 이야기꾼이 아닐까.

˝여자들끼리도 잘 산다!˝는 여성 간의 연대와 ˝남자는 필요 없다!˝는 결혼선택론, 그리고 맨플하는 남자들을 향한 경고가 10개의 단편을 관통한다. 각각의 단편에서 자주 등장한 잘난척하는 남성들의 실체가 실은 보잘 것 없다는 내용은, 무려 1세기 전의 글인데도 작가가 나랑 동시대를 살고 있나 착각할 만큼 하이퍼리얼리즘이었다. 강속 직구 문체로 읽는 내내 짜릿함과 더불어 묘한 쾌감을 준 책, 제발 안 읽은 페미니스트 없게 해주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