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예능 - 많이 웃었지만, 그만큼 울고 싶었다 아무튼 시리즈 23
복길 지음 / 코난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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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보지 않은지 수 년째다. 특별히 보고싶은 프로그램이 없는데다가 TV가 가진 속성때문에 한 번 시작하면 계속 보게되니 그 시간들이 아깝다. 게다가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이 TV를 대체하고 있어 그 빈자리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TV 예능이 사회에 영향을 주는 하나의 지표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작가는 상당부분를 할애하여 유재석, 강호동, 이경규, 김제동, 신동엽 등 한국을 대표하는 예능인들에 대해 논한다. 내가 막연하게 생각을 가졌던 부분들, 그러니까 남성 중심의 한국 예능 프로와 예능인들을 작가 나름의 통찰력으로 깊이 있게 분석했다. 솔직히 좀 반했다.

여성들의 시청 권력 투쟁이 본격화되면서 남성 예능인들로만 구성된 예능 프로는 ˝알탕 예능˝으로 조롱받았다. 긴 세월동안 남성들로 이루어진 예능판은 여성 예능인이 설 자리를 밀어내며 자신들만의 연대를 공고히 했다. 간혹 출연하는 여성 연예인은 숭배와 찬양을 받거나 반대로 제대로 망가지는 이분화된 역할을 답습했다.

이영자와 박나래가 연예대상 시상자와 수상자로 무대에 오른 장면은 한국 예능사에 길이 남을 장면이다. 내가 감동해 울컥했던 것 처럼 많은 사람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들이 대상을 받긴 했지만 그들 만큼이나 뛰어난 능력을 가진 여성 예능인이 많다.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송은이다. 송은이는 팟캐스트를 통해 직접 이슈를 만들고 이미지를 생성했다. 후배들과 함께 걸그룹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하고, 후배들의 부캐 활동을 지원했다. 후배 여성예능인들을 위한 새로운 길을 만들었고, 따라올 수 있도록 보여준 것이다.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 말 그대로 증명해냈다.

이 밖에도 연예인 생활 밀착 예능이 유행함에 따라 고가의 PPL이나 연예인의 호화스러운 집과 생활을 모든 집 안방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은 계속해서 부를 갈망하게 만들고, 빈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세상에서 탈락시키끔 만든다. 예능에서 육아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송출하며 그런 아빠를 슈퍼맨이라고 칭송하지만, 매일 독박 육아를 하는 여성들의 삶은 예능 거리가 되지 못 한다.

‘TV 볼 때는 좀 편하게 보자!‘는 말이 빠지면 섭섭하다. 그래 좀 편하게 보자. 남연예인들만 독식하는 TV 프로 너무 식상하다. 심지어 재미도 없다. 여자, 성소수자, 장애인도 출연시키면 안되나?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무시하고 비장애인 헤테로 남성이 디폴트인 한국 예능을 보는게 오히려 불편하다. 아, 내가 TV를 안보는 진짜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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