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워낙 흥미로운 내용인데다 강한 흡인력까지 갖춘 소설이라 금세 읽었다. 유색인과 여성이란 교차점에 위치한 흑인/황인 여성에게 차별과 억압은 더욱 가중된다. 작가는 흑인 여성(다나)이 타임슬립하며 19세기와 20세기를 오가는 과정 속에서 교차적 억압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우연히 19세기로 가게 된 다나는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는 흑인들을 목격한다. 그 후 남편 케빈과 함께 19세기로 가게 되는데 인종과 젠더를 아우르는 ‘최고 계급‘에 위치한 백인 남성 케빈의 눈에는 흑인 노예의 삶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뭐, 이를테면 최저임금으로 살 생각 없는 자본가들이 ˝최저임금 충분히 높다! 더 올리지마라!˝고 말하는 거랑 비슷한 맥락이랄까.. 흑인 여성을 배우자로 두고 있으면서도 흑인이 당하는 수모에 눈 감는 케빈의 졸렬함과 아둔함이 유독 돋보였다.

지금 우리 사정은 어떨까. 자율적 계약이라곤 하나 결국 자본가 소유의 부품으로 소비되고, 허울뿐인 여성상위시대를 진짜인 양 믿는다. 차별은 안된다고 믿으면서도(혹은 자신은 차별하지 않는다고 믿으면서) 정작 젠더나 인종문제에 있어서 차별하거나 방관하는 경우가 많다. 아, 그건 ‘인지 부조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불과 몇 세기 전 존재했던 노예제가 지금은 말도 안되는 혐오스러운 제도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당연한 인식과 제도들이 미래에는 갖다버려야 할 유물이자 편협한 생각이 되지 말란 법 없다. 새로운 건 엄청나게 좋아하는 자본주의의 키즈들이 왜 후진적 마인드는 버리지 못하는지 참 아이러니하다.

p.189 ˝제대로 된 숙소도 없고, 흙바닥에서 자야하고, 음식은 부족해서 쉴 시간에 텃밭을 가꾸고 세라가 눈감아줄 때 부엌채에서 뭐라도 훔치지 않으면 모조리 몸져누울 지경이지. 권리는 하나도 없고 언제든, 아무 이유도 없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가족에게서 떨어져 팔려나갈 수 있어. 케빈, 사람들을 때려야만 잔인한 건 아니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