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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조선의 영웅들 - 시대를 풍미한 도적인가, 세상을 뒤흔든 영웅인가
이희근 지음 / 평사리 / 2010년 1월
평점 :
사회적으로 큰파장을 일으켰던 인물이나 사건들은 먼 훗날 역사의 평가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당시에 어떤식으로 평가를 받았는가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평가가 바로 역사의 평가가 아닐까한다. 역사의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이후에 혹독한 비판에 직면하는 경우도 있고, 당시에는 엄청난 비난과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시대는 그 모든 일들을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혁명가 내지는 한시대를 앞선 행동이라 추켜세워주기도 한다. 역사적 평가에 대해 이것이 잘됐다 잘못됐다 정확한 판결을 내릴 수는 없다. 그 평가를 내리는 후세도 그들이 사는 시대에 맞게 또 시대를 바라보는 사람들에 따라 다른평가를 내리기에 시대가 바뀌면 또 새로운 종류에 평가가 내려질 뿐이다.
<만들어진 조선의 영웅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인물들을 새롭게 평가한 책이다. 그동안 언론이나 교과서에서 배웠던 내용들과 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어서 조금은 혼란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역사의 평가는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기에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구나 생각하고 읽으니 의외로 재미있었다.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이 세 사람에게 우린 의적이란 단어를 붙여서 부른다. 탐관오리들을 혼내주고 부정하게 재산을 모은 사람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의적.. 그럼 세 사람은 과연 의적이었을까? 책에서는 그들이 의적으로 바뀌된 된 사연을 소설때문이라고 한다. 허균의 홍길동전, 홍명희의 "임꺽정", 황석영의 "장길산"은 도적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을 한순간에 의적으로 바꾸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적고 있다. 실록을 보면 이들은 일반 도적과 다를바 없는 잔혹한 면을 지니 법죄자였을뿐이다. 다만 그들을 따라 함께 도적질을 했던 무리가 많았던 이유는 탐관오리가 많았고 과도하게 매겨지는 세금으로 인해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박탈감이 큰 이유였다. 또 신분제 문제도 한 몫을 했다고 한다. 만약 지도층들이 서민의 고통에 좀 더 귀기울였다면 이들은 의적이란 이름을 달지 못했을 것이다.
<홍경래의 난> 역시 지역적인 차별로 인해 일어난 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지역적 차별로 인해 중앙무대에 진출할 수 없었다는 이유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나온다. 서북지방이 따로 차별받은것이 아니라 당시에는 서울 경기도 외 지역의 양반들은 모두 고위관직에서 소외됐다는 자료를 제시하고있다. 오히려 서북지방은 위쪽 지방중에서는 가장 많이 중앙무대에 진출한것으로 나타났다. 정감록 속에 등장하는 새로운 세상, 새왕조에 대한 꿈을 홍경래 역시 꾸었다는 것이다. 그는 서북차별에 대한 반발로 일어선것이 아니며 그를 따랐던 사람들 역시 스스로 일어선 것이 아니라, 가난한 거지와 광산의 광부들등에게 돈을 주고 고용한 용병에 불과했다고 한다. 결국 의욕없는 병사들을 데리고 무모한 도전을 한 셈인것이다.
<녹두장군 전봉준>역시 근왕주의자 였다는 내용은 조금 충격이었다. 전봉준에 대한 평가 역시 그는 민중들의 삶을 대변코자 일어난 것이 아니오. 국왕을 위해서 일어났을 뿐이란다. 외세가 물러나고, 임금에게 위협이 없어진다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겠다는 그의 말은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전봉준의 대한 평가는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과 많이 다르다보니, 조금은 어색하고 잘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했다.
<양반전의 박지원>은 양반의 특권 체제를 옹호한 인물이라 평가한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할아버지 손에서 컸던 박지원은 양반사회를 꼬집기는 했지만, 양반사회가 해체되는 것을 원치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양반을 하늘에서 준 작위라고 말할만큼 선민의식이 강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양반전 역시 양반사회의 타파가 아니라 기존 신분질서를 옹호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실학자들의 평가 역시 그동안 알고 있던 내용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박지원과 같은 실학사상가들 역시 양반을 귀족이라 층하며 예우해야 하며, 양반의 특권보호를 위해 더 많은 노비를 양산해야한다고 말한 정약용처럼 양반의 특권을 중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보수인물인 송시열보다 더 보수적인 인물들이 실학자들이었다는 글을 읽으니 당시의 민초들의 삶이 얼만 고됐을까 안타가운 생각이 든다.
<대원군의 개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흥선대원군은 극적인 인생을 살다간 인물이다. 안동 김씨 세력이 판치던 시절 시정잡배보다 못한 행동을 하고 미치광이 흉내까지 냈던 이하응, 그는 꿈이 큰 인물이었다. 당시 대원군은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왕족 중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하도 심해 왕족들이 기를 펴지 못하고 있을때 궁중 최고 어른이었던 신정왕후 조씨와 대원군은 안동세력 김씨를 무너뜨리자는데 뜻을 모았다. 그리고 대원군의 둘째 아들 명복을 임금으로 세운다. 대원군은 정치를 하자마자 사원부터 철폐시킨다. 이 조치는 백성을 위한 조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후 벌인 일들은 백성을 위하는 일보다 왕실의 권위를 위한 일이었다고 한다. 경복궁을 짓는데 들어간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들을 마련코자 벌인 일들은 말이 많았다고 한다. 환곡문제도 실패하고 오직 왕실의 권위만 내세우다보니 백성을 위한 정치는 사라지고 왕족의 배만 불러주는 꼴이 된것이다.
역사적 기록을 가지고 얘기한 내용이란 반대의견을 내기가 어렵다. 아는게 많다면 어떤 말이라도 했을텐데.. 반론할만한 지식이 없다는게 아쉽다. 모든 평가가 그렇듯 한가지 평가만 내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수의 생각이 있으면 소수의 생각이 있기 마련...
오히려 모두가 한가지 평가만 내리고 또 그것을 다 따르기보다는 이렇게 다른 평가를 내리는것이 다양한 측면에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또 그러면서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를 듣게 되니 그것이 큰 수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