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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하느님
조정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 하느님 저희를 버리시나이까..
그것은 운명이었을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거칠게만 흘러가는 인생 길을 걸을때 사람들은 "운명"이란 말로 모든걸 다 덮어버린다.
하지만, "운명"이란 단어로 덮어버리기엔 너무 억울한 인생들이 있다.
몇년전 SBS에서 독일 동방대대 소속의 조선인 병사들의 이야기를 처음 봤을때, "어떻게 그 먼 독일까지 그들이 건너가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실제 이야기라고 하기엔 너무나 소설같은 그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힘없는 나라의 백성이란 사실이, 더구나 그 나라마저 잃어서 내 조국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없게 된 나라 백성이란 사실이 이토록 처절하고 비참할 수 있다니, 가슴 아팠다.
조정래씨의 " 오 하느님"은 나치 독일군 동방대대 소속의 조선인들을 모델로 쓴 소설로, 그동안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가슴아픈 우리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줌과 동시에 힘없는 약소민족의 설음을 일깨워준 작품이다.
일제시대 힘없고 가난한 소작농의 자식이란 이유로 일본군으로 착출된 신길만은 중국과의 전쟁을 거쳐 몽고까지 가게 된다. 승승장구 하던 일본군은 소련군의 개입으로 연일연패를 거듭하게 되고, 신길만이 있던 부대도 소련군에 포로로 잡히게 된다. 포로 수용소에서 만난 다른 조선인들과 힘겨운 포로 생활을 하던 중 매일 처럼 죽어나가는 포로 수용소보다 일단 살아야지 고향땅에도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신길만을 포함한 조선인들은 소련군에 입대하게 된다.
소련군은 전쟁이 끝난 후 그들을 조선으로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그때 독일군은 소련을 침공한다. 신길만을 포함한 소련군들은 독일부대에 맞서 사생결단으로 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많은 인명피해를 남긴 후 독일군에 포로로 잡힌 그들은 다시 독일군이 되어 동방대대에 들어가게 된다. 그후 다시 미군에게 잡혀 포로가 되고, 처절했던 제 2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패배로 끝이나고 일본 역시 전쟁에서 졌다.
이제 고향으로 갈 수 있을까 소원했던 그들은 자신들이 조선사람이니, 조선으로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조선으로 가지 못했다. 스탈린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모든 소련군 병사들을 다 소련으로 돌려보내달라고 했고, 미국은 그 조건을 수락했다. 적국의 포로로 잡힌 것은 조국을 배신한것이라고 말하던 스탈린은 그들이 소련으로 돌아오자 무차별 총격을 가한다.
오! 하느님 저희를 버리시나이까..
살고 싶었습니다. 어떤 치욕스런 상황에서라도 살고 싶었습니다.
처음 소련군의 포로가 되었을때, 당당히 조선사람임을 밝히고, 조선으로 보내달라고 했을때 소련군은 그들을 회유했다. 소련군에 입대하여 소련을 위하여 싸우라고.. 일본은 조선을 지배하고 있는데, 소련은 일본과 싸움을 하고 있으니 소련이 이기면 조선도 독립하게 되고, 그러면 조선으로 갈 수 있다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소련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그때 바뀐 그들의 국적이 그들을 죽음의 길로 인도했다.
지나고보니 그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말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이란 단 두가지..포로 수용소에서 굶주림과 혹독한 노동으로 죽는 길과, 소련군이 되는 길 뿐 이었다.
그들이 걸어온 험난한 인생길은 우리나라가 걸었던 험난한 길을 축소해 논 것 같았다.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숨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이쪽에서 걷어채이고, 저쪽에서 얻어터진채 망신창이가 된 조국과 꼭 같은 모습이었다.
이 소설은 허구다.
허구란 걸 알면서도 가슴아픈 건 실제로 신길만 같은 인물이 존재했다는 사실과, 그 어두운 역사를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아직도 우리가 강대국의 눈치를 보면 산다는 사실이다.
조정래씨의 소설은 항상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내가 조정래씨의 글을 읽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