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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감시원 ㅣ 코니 윌리스 걸작선 1
코니 윌리스 지음, 김세경 외 옮김 / 아작 / 201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 도로시 길먼의 <뜻밖의 폴리팩스 부인>을 읽고서 감탄해 마지않았다. 긴장감과 재미가 매우 적절히 어우러진 참으로 신기방기한 스파이물이었던 것이다. 그 책의 작가 도로시 길먼은 이미 타개했지만 새삼 할매 작가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구나 하고 느꼈었다. 그리고 이번에 또 한 명의 할매 작가와 만났으니 바로 코니 윌리스! 게다가 이번에 SF다. 더욱이 각종 상을 휩쓸었던 걸작선이란다. 부푼 기대와 함께 첫 장을 열었다.
<화재감시원>은 중단편 모음집이었다. 각각의 이야기 첫 장에는 제목과 함께 수상했던 각종 상의 이름이 자랑스레 쓰여 있었다. 일단 처음 만난 건 [리알토에서]라는 제목의 단편. 양자역학에 관련된 이런 저런 박사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시종일관 수다스럽게, 종횡무진 이야기가 전개된다. 인물들이 대화를 하긴 하는데 각자 자기말만 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학술대회는 어떻게 됐다는 건가? 과연 제대로 호텔에 예약을 하고 투숙한 이는 누구인가? 라는 의문만이 남았다. 빌어먹을 양자역학은 왜.....;;;
중간에 몇 작품을 건너뛰고 [화재감시원]을 읽었다. 1983년에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야기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영국으로 타임슬립하는 내용이었다. 주인공은 실습 차! 런던 대공습이 벌어지던 그 전쟁의 한 구역으로 돌아간다. 거슬러간 과거에서 그의 역할은 바로 화재감시원! 정확하게는 세인트폴 대성당의 화재를 감시는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폭격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는 실습의 임부를 잊지 않으며 성당 내외부의 곳곳과 그곳의 사람들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옥스퍼드 사전 한 권과 함께 성당에 머무르던 중 바솔로뮤는 랭비라는 인물과 묘하게 부딪히게 된다. 둘은 서로를 도와야 하는 위치지만 한편으론 경계하며 관찰한다. 그리고 대공습이 벌어지던 때에 둘의 신경전은 극에 달하고 처절한 현장에서 그동안 품었던 모든 이야길 꺼내 놓고 만다. 랭비의 예측은 얼추 맞았다. 바솔로뮤는 스파이였다. 다만 나치의 협력자가 아니라 먼 미래에서 온 실습자였다!
죽고 사는 문제로 하루하루가 악몽인 상황을 관찰하는 실습자라니! 참 고약한 설정이다. 랭비가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시간여행이라는 설정임에도 엄청난 스케일의 드라마틱한 전개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소소하면서도 차분하고 재밌게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도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 이제 [화재감시원]으로 신뢰를 회복했으니 남은 단편들과 함께 <여왕마저도>라는 윌리스의 또 다른 책도 찬찬히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