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가지 얼굴의 이슬람, 그리고 나의 이슬람
율리아 수리야쿠수마 지음, 구정은 옮김 /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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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국가 인도네시아의 재발견

세계 4위의 인구대국이자 중동보다도 많은 무슬림들이 사는 곳, 우리는 꿈도 못 꿀 엄청난 양의 자원을 가진 나라, 바로 인도네시아다. 이곳의 수도 자카르타는 비교적 익숙한 이름의 도시라 잘 알고 있었지만 정작 인도네시아라는 나라 자체에 대해서는 잘 몰랐었다. 그저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 중에 하나라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세상에서 가장 큰 군도라는 인도네시아는 영토나 인구, 자원의 규모에 있어서는 중국이나 미국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나라에 산재해 있는 문제들을 따져보면 장점이 무색할 만큼 초라하기 그지없다.

대다수의 개발도상국과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 역시 수도인 자카르타에 모든 게 집중돼 있다. 그러다보니 자카르타는 넘쳐나는 인구로 몸살을 앓을 지경이고, 다른 지역은 그저 수도에 인적, 물적 자원을 납품하는 곳에 불과하다. 수도의 인구집중은 도시의 모든 기능을 통제 불능의 상태로 만들었다. 교통, 전기, 수도는 수요를 맞춰 줄 수 없는 상태이고, 녹지공간 없이 팽창일로로 진행된 도시계획은 홍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 도시빈민들의 피폐한 삶은 자카르타의 깊은 주름 중에 하나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이런 현실이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현 인도네시아의 성장을 우선시 하는 국가발전 계획, 국가와 국민의 부를 은닉한 자들의 솜방망이 처벌, 교육 여건의 부실 등은 이러한 병폐를 가속화시켰다. 그리고 또 하나, 보수적이고 극단적인 무슬림들의 과격한 행동이 이 모든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전 세계인들이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9.11 테러는 이슬람에 대한 지울 수 없는 편견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편견은 다시 보통의 무슬림도 과격해지는 명분이 되었다.

이슬람 국가 인도네시아가 갖고 있는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 현실에 맞게 율법을 해석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비이슬람권 사람에게도 관용적이었던 다수의 무슬림들이 소수 과격파가 저지른 만행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율리아 역시 서구의 '이슬람 때리기'가 이슬람권에 있는 모든 것을 향한 것이어서 부당하다고 지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슬람이 어떤 종교인지도 모르는 사람도 이슬람은 나쁜 종교다, 테러집단을 양산한다, 등의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슬람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이 강해지고 더 많아질수록 과격하고 보수적인 무슬림 세력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안타까운 건 이런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이 여성을 더욱 억압하고 사회를 분열로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여성의 옷차림에 일체의 노출을 허락하지 않는 그들은 살갗을 드러낸 여성이 폭탄보다 위험하다고 호들갑이다. 그들에게 여성의 인권은 자동차의 소유권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또한 극도로 보수적인 그들은 성적소수자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사회의 악으로 치부하며 생명의 위협까지 가한다.

정치와 종교, 어느 쪽으로도 편할 날이 없는 인도네시아는 풀어야 할 숙제가 정말 많이 남아있다. 문제는 지금의 인도네시아가 그 문제에서도 가장 중요한 '과거사의 청산' 없이 그냥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하르토 치하 30여년은 인도네시아에게 경제발전의 열매를 안겨주었지만 어이없게도 수하르토 개인이 그 모든 열매를 가지고 갔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좌절과 절망을 느꼈을 게 뻔하다. 하지만 수하르토 체제 이후 어떤 정부도 이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전 정권에 대한 용서와 예우라는 한심한 이유에서다. 올해는 인도네시아의 대선이 있는 해다. 이는 산적해 있는 문제들로 고통 받고 있는 인도네시아인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부디 이 선거가 새로운 인도네시아를 만드는 좋은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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