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고 싶은 그들만의 세계사 - 망각의 20세기 잔혹사
정우량 지음 / 리빙북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진실이 말소된 역사의 어두운 페이지

역사란 이름의 퍼즐은 결코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숨기고 싶은 그들만의 세계사>를 읽고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익히 알고 있던 역사적인 사건도 좀 더 면밀하게 파고들어 가면 새로운 사실이나 또 다른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오니 말이다. <숨기고 싶은 그들만의 세계사>는 외신에 의해 짧게 보도되었거나 숱한 세계사 책에서 가볍게 다루었던 주요한 세계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표방하며 다각적인 측면에서 보다 사실에 가깝게 접근한다.

책은 크게 두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다. 1장은 전쟁과 대량학살에 관한 장으로 스페인 내전과 타이완의 2˙․ 28사건, 독일 드레스덴 폭격, 홀로코스트 등 지배 권력의 무자비한 탄압과 잔인한 폭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혁명, 쿠데타, 스캔들에 관한 역사를 다룬 2장에서는 20세기 중후반 세계에서 벌어졌던 주목할 만한 사건들을 소개한다. 특히 일본의 관동군에 대한 내용과 당시 유럽을 뒤흔들었던 68혁명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곧 패전국의 멍에를 짊어져야할 두 국가 일본과 독일은 비슷한 경험을 통해 지옥을 맛보게 된다. 두 번의 원폭투하로 만신창이가 된 일본은 누가 봐도 곧 항복할 태세였다. 하지만 미국은 대규모 공습을 통해 빤한 승리를 확인시켜주는 무모한 살상을 자행한다. 영국 공군의 독일 드레스덴 폭격 역시 마찬가지다. 피난민들로 북적거리는 이 고풍스런 중세도시에 영국은 무자비한 폭격을 가해 다 끝나가는 전쟁에서 무의미한 사망자 수를 더 늘렸다.

2장에 나오는 아옌데 정부를 뒤엎은 피노체트 군부의 쿠데타에 대한 부분은 새로운 사실로 당시의 정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던 좋은 예였다. 마르크스주의자 아옌데는 과감한 정책을 통해 시민들의 권익을 보장했지만 당시 칠레에 진출했던 다국적기업의 횡포와 미국의 개입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결국 미국에 힘입은 피노체트에 의해 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칠레 역시 군부의 손에 놓이지만 피노체트의 개혁으로 칠레의 경제는 안정을 되찾는다. 경제적 성과로 치면 다국적기업의 농간에 휘둘렸던 아옌데 시절에 비해 피노체트 시절이 훨씬 더 나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아옌데를 구국영웅으로 추앙하고 있다. 성과가 있는 독재자보단 민중을 생각했던 아옌데가 더 후한 대접을 받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르겠다.

한편 <숨기고 싶은 그들만의 세계사>에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적인 사건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만에서 벌어진 학살사건(2˙․ 28사건)은 대만이란 한 나라의 형성과정 함께 그들 사회가 안고 있는 병폐와 고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소련의 스파이로 활동한 조르게라는 인물의 이야기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긴박한 전황 속에 자칫 샌드위치가 될 뻔했던 소련이 그 위기를 넘기고 미 - 소 양극을 구축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줬다. 여기에 우리 386세대의 학생운동과 종종 비교되는 68혁명의 이야기는 당시 유럽에 들끓었던 자유를 향한 그들의 뜨거운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은폐되고 왜곡된 세계사를 전면에 내세운 <숨기고 싶은 그들만의 세계사>는 역사의 이름 앞에 감출 수 있는 사실은 없다는 진리 아닌 진리를 확인시켜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책의 서두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역사는 과거의 거울인 동시에 미래를 밝혀주는 빛이기도 하다. 숨겨야 할 정도로 끔찍하고 잔혹했던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일은 역설적으로 그런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전 인류적 사명을 갖게 만드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고통스런 역사의 반복과 재현을 막는 일은 지난 날에 대한 반성을 통해서라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시대가 남긴 유산을 되새기며 진지한 성찰을 해본다면 더 큰 자극과 동기로 새시대를 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인류가 더 이상 부도덕한 이유로 숨겨야 할 역사를 만들지 않기를 바라며 또 다시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가 재현되는 일이 없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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