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흰 꽃이 무더기로 그려진 벽지 아래 쪼그려앉은 아내를 보고있자니, 아내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꽃매‘를 맞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이들이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라‘며 줄기 긴 꽃으로 아내를 채찍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 P36
나는 결국 고개를 숙이고말았다. 부엌 바닥으로 굵은 눈물방울이 툭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 손에서 벽지를 놓을 수 없어, 그렇다고 놓지 않을 수도 없어 두 팔을 든 채 벌서듯 서 있었다. 물먹은 풀이 내 몸에서나오는 고름처럼 아래로 후드득 떨어졌다. 한파가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두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 - P37
그렇게 두 개의 시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건지 나는 알고 싶었다. 저 엇박자 돌림노래 같은 것, 꿈꾸는 동시에 생시를 사는 것 같은 걸까. - P114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 P134
독특한 형식을 가진, 조용하고 특별한 위로의 힘을 가진 책이었다.노벨상 수상 강연문을 시작으로, 빛이 부족하지만 소중한 식물들을 가꾸는 매일의 작은 중정을 들여다 보듯 그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는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의 작품에서 쓰신 언어들이 형체를 갖춰가는 걸 보는 재미도 있었다. 어쩌면 작가님은 그늘진 중정에서 하루하루 식물들을 돌보듯 그렇게, 아름답고 고통스러운 언어들을 키워오셨던걸까?다만 ‘노벨상 이후 첫 신작‘이라 홍보했기에 기대했던 바와는 달라 조금 당황했었다. 차라리 그런 거대한 타이틀 대신, 이 독특한 형식과 특별한 위로의 힘을 가진 이번 작품의 특징에 부합하는 문구로 다가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물론 그 홍보가 틀린건 아니지만, 읽는 사람 입장에서 이번 작품의 성격을 이해하는데는 다소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오래지 않아 이 작품 특유의 리듬에 점차 익숙해졌다. 문장들은 조용했지만 힘이 있었다. 다 읽고나니 마음속에 작은 중정 하나가 떠올랐고, 그동안 마음을 찔러왔던 문장들이 마치 그곳의 식물들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작별하지 않는다’ 와 ‘소년이 온다’를 다시 읽고싶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