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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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대해 묻는다면, 안나의 저 유명한 첫 대목, 즉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비슷한 이유로 행복한 데 반해서, 불행한 가정은 다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문장으로 썰을 풀다가, ‘그런데 사실 유부녀인 안나가 총각 장교인 브론스키와 불륜을 저지르다가 끝내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치정극라 할 수 있지. 그 세계적 명성에 비해 난 별로 좋은 줄 모르겠더라’ 고 서둘러 이야기를 마무리 할 것만 같다.
만약 상대 역시 안나를 읽은 사람이라면 결혼제도과 사랑의 부조화에 기인하는 갈등 그리고 사랑의 본질에 관해서 좀 더 깊은 대화는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또 누군가가 최인훈의 ‘광장’을 언급한다면, 한국전쟁 후 남과 북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고 3세계로 망명하던 중 끝내 바다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한 인간 ‘이명준’의 이름을 새삼 떠올리면서, 역사의 무게 아래서 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정치적 입장에 대한 얘기를 할 테지.
왜냐하면 당대 현실은 여전히 모순으로 가득 차 있을게고, 그 속에서 한 개인이 ‘밀실’로 숨어들어 갈 것이냐 아니면 ‘광장’으로 나올 것이냐의 질문은 여전히 실존적인 화두일 테니.

그런데 이제 누군가 나에게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보았느냐고 묻는다면, 그리고 그 상대 역시 카잔차키스의 글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나는 당장 그의 손목을 잡고 식당으로 끌고 갈 것만 같다. 그리고 벌겋게 달아오른 숯불에 살점이 두툼한 돼지고기를 먹음직스럽게 구워가며 맑은 소주를 권하면서 이렇게 쏘아붙일 테다. “책나부랭이 얘기는 집어치우고 오늘은 게걸스럽게 잔뜩 먹고 진탕 마시자. 그리고 네가 살아온 얘기를 들려주렴. 너를 내게 읽혀달란 말이다. 오늘 나도 나를 읽어주마.”
자, 다시 안나의 첫 문장을 패러디 하자면 이렇다. “모든 시시한 소설은 비슷비슷한 이유로 시시한데 반해 모든 뛰어난 소설은 제 각각의 이유로 뛰어나다.”
누구는 조르바를 자유라고 읽고, 혹자는 방탕이라 읽고, 또 누구는 술과 육욕만을 탐내는 무식쟁이 난봉꾼, 그리고 누구는 카르페디엠의 상징적 인물로 읽으리. 그것 또한 모두 각각의 독자들의 자유.

게으른 책벌레이자 얼치기 펜대운전수에 가까운 나에게 조르바는 나를 호통 치거나 격려하는 삼촌뻘의 사내 쯤 되려나. 그런데 이 농탕한 사내의 집게손가락이 잘린 왼손에는 도끼가 들려져있는 게지. 바로 카프카의 도끼 (Axt).
인생의 어떤 대목에서 어쩔 줄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는 나한테 도끼를 든 조르바가 호탕하게 웃으며 놀려대겠지. “어이 조카뻘 친구, 펜대 운전할 시간에 인생의 신비를 즐기게나. 때로는 전쟁, 때로는 계집, 때로는 술, 때로는 산투리로 인생을 살게나. 좌충우돌 실수투성이, 그게 인생이지. 자네 몸에 지니고 다니는 그 알량한 저울은 집어 던지고 말일세.”

하지만 나는 알지. 내가 끝끝내 저울을 폐기처분 할 수 없을 것이며 절대 손에서 책을 떨어뜨려놓지 못할 것임을. 이것이 또한 아이러니.
내가 카잔차키스의 책을 통하지 않고서 어찌 그대 조르바를 만날 수 있었으리.
어쨋든 내가 지닌 저울추의 무게와 책의 냄새는 조르바를 알고 난 후 조금은 분명 달라졌음을 의심하지는 못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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