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정확하게 듣고 꼼꼼하게 기억하는 일이 수월치 않아 저장된 자료를 참조했다. 직접 현장에서 한 번 들은 후, 집에서 음성'만' 들으며 빽빽하게 필기했고, 적은 내용을 바탕으로 5단락 글을 썼다. 총 21장의 종이와 25시간이 들었다. 이는 평소 한 챕터의 책을 읽고 쓰는 시간의 2배 남짓이다.
1. 들은 내용을 글로 옮기기에 앞서 활자로 배포해도 되는 이야기인지 판단했다. 화자가 전략적으로 상황과 청중을 통제한 경우, 이를 글로 publish 하는 건 윤리적으로 옳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 특강은 공적인 내용이고, 주최 측에서 후기를 허용했기에 글로 옮겨도 된다고 판단했다.
2. 말은 글보다 장황하며 체계적이지 않기에 글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특정 내용을 누락하거나 순서를 재배치하게 된다. 글을 다듬다 보면 화자가 직접 사용하지 않은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화자의 의도와 맥락을 훼손하여 들은 대로가 아닌, 듣고 싶은 대로 쓰지 않도록 주의했다.
3. 화자의 강연 개요를 파악해 글의 구조를 짜고, 적절한 어휘를 말과 동일한 맥락에서 드러내려 했다. 글에 쓰인 어휘 등은 화자가 사용한 단어를 최우선적으로 쓰려 했지만, 글의 흐름에 방해가 되거나(1) 글맛이 살지 않는 경우(2) 원뜻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다른 표현으로 대체했다. 화자의 핵심 단어나 표현 등은 따로 메모해 사용했지만 모든 서술어까지 기록해 그대로 쓰기 힘들어 내 식대로 쓴 문장이 있다.(3)
4. 말은 글보다 산만하고 체계적이지 않기에 사소한 정보 등은 빠트리고 넘어갈 수 있다. 화자가 불필요한 정보이기에 밝히지 않은 것인지, '말'로 전했기에 지나쳤는지 구별하여 필요에 따라 글로 보충하였다.(4)
5. 화자/저자를 '핥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그러다 보니 글에《역사고전강의》를 집필한 저자이자, 화자인 이의 이름을 한 번도 명기하지 않았다. 강연 중 '함께' 공부한 책이라 밝혔기에, 저자의 이름을 앞세우지 않는 것이 저자의 뜻과도 부합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6. 강연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 화자가 부당한 피해를 입을 수 있기에, 글을 읽는 사람이 직접 화자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확인하고 대조할 수 있도록 동영상 주소를 따로 링크했다.
7. 화자에게 직접 코멘트를 받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메일로 글을 보냈다.
구체적인 사례
(1) 저자의 표현 중 “나댄다”는 어휘가 있는데, 글의 분위기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 표현을 살릴 능력이 없어 따로 넣지 않았다. 이 외에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은 책의 내용을 집약하는 매우 핵심적인 구절이라 꼭 넣었어야 했지만, 문단을 이루는 문장들을 얼추 완성한 후 욱여넣으니 분량이 넘치거나 흐름이 튀어 삭제했다. 이 경우 아예 문단을 다시 쓰는 게 적절했다.
(2) 일례로, 2문단의 4번째 줄의 “내 머릿속으로 스며들고 내 몸으로 배어들어”는 화자가 원래 “내 머릿속으로 스며들고 내 몸으로 스며들어”라고 표현했다. / “공부”라는 단어를 강조할 필요는 있지만 지나치게 반복되면 지루할 것 같아 경우에 따라 ‘배움’으로 대체했다.
(3) 2문단 첫 번째 문장 서술어인 “쓸모가 없다”는 퇴고 과정에서 내가 집어넣은 표현 중 하나이다.
(4) 화자는 저자를 밝히지 않고 ‘아틀라스 시리즈’를 뭉뚱그려 소개했기에, 그 중《세계의 역사》를 읽을 때 가장 자주 들여다 볼《아틀라스 세계사》을 저자와 함께 기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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