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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어느 순간, 걷기로 결심했다 - 피시티 4300킬로미터에 도전한 사람들
황상호 엮음, 정 인걸 줄리엔.김희남 기획 / 이상북스 / 2020년 12월
평점 :
많이 싸우면서도, 힘들때나 선택의 길에 서 있을 때나 사귀던 여자와 헤어졌을 때도 걱정거리가 있을 때도 걷는 친구때문에 걱정하다가 나도 무작정 욕하면서 둘레길을 걷고, 올레길을 완주했고, 어느 순간 길 위에 있는 그 친구의 뒤를 따라 걷는 것이 일상이었던 때가 이었다. 공황장애로 인해 많이 힘들어할 때도 동반 사직서 제출하고 함께 순례길 걷자한지 하루도 안 되어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죽은 그 친구의 뒷모습이 생각나서 이 책이 아른거렸다. 천국에서 혼자 저렇게 걷고 있을 인간이 아른 거려서...
PCT는 낯설다. 길을 좋아하던 친구에게 술을 먹고 들었을 수는 있으나, 순례길처럼 귀에 딱지 생기도록 듣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 친구와 겹쳐보인다. 여름방학기간동안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함께 해남부터 걸었던 기억도 떠오르고, 지리산 둘레길 걷다가 잠깐 딴 생각하면서 길을 잃어서 끝내 세시간만에 친구가 얼굴이 하얗게 질러서는 나타나서 울게 만들었던 일이며... 길 위에서는 어느 길이든 다 똑같아 지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어.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지금까지 쉬지 않고 일을 할수 있었고 말이야. 만약에 말이야. 예기치 않은 상황이 온다고 해도 난 후회하지 않아. 난 정말 이 세상 정말 멋지게 살다 간 사람이야."(p134-135)
나는 힘들면 그만두고 와도 괜찮다고 말했다. 남편은 피식 웃고 목표했던 길을 떠났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p135)
길 위에 있으면 나를 잊게 되어 좋다고, 고민하던 모든 것들이 무로 돌아간다고... 그 말이 떠오르면서 이 문장들이 계속 잔상이 남는다. 그래서 친구가 죽은 후 처음으로 혼자서 걸어볼까란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이번주부터 공황장애 판정받고 핸드폰 벨소리만 들어도 발작을 일으킬 때 사준 운동화로 가까운 산책코스부터 도전을 시작으로 천천히 걸어보고 있다. 나중에 코로나가 풀리면 순례길과 PCT에 도전을 해서 책으로 엮어 친구의 영정에 올려주고 싶다.
타향살이하다가 아버지를 잃게 되었을 때 36시간을 걸려 장례식장에 오게 되었을 때 그 마음의 위로가 "엔젤의 엔젤이되다"를 읽으면서 나또한 다짐을 하게 한다.
네 친구 씩씩하게 네 몫까지 길 위에 다 쏟아내며 잘 지내고 있다가 네 곁으로 가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