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임진왜란전에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의 의견이 달랐던 일이 떠오릅니다.
(물론 이경우는 동인, 서인 세력간의 이견도 있을 것입니다.)
직접 만나서 장기간 이야기를 나눴는데, 어떻게 더 모를 수 있을까요?
우리는 대부분 따뜻하고 열정적인 악수를 하는 경우에 실제로 우리가 만나는 사람에게 따뜻함과 열정을 느낍니다.
히틀러가 체임벌린에게 그렇게 따뜻하고 열정적인 사람처럼 행동한 것이지요.
히틀러는 정직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부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체임벌린은 히틀러를 아예 만나지 않았더라면, 직접 만나지 않고 히틀러의 책 <나의 투쟁>을 읽었다면 더 나은 판단을 내렸을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이미 말콤 글래드웰은 이전 책 <블링크>에서 오케스트라가 신입 단원을 뽑을 때 지원자의 모습을 가리는 장막 오디션으로 진행하면 훨씬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는 이야기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녹스는 자기 룸메이트가 살해된 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죄 때문에 이성적으로는 죄를 저질렀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지만, 이탈리아 교도소에서 4년을 보낸 사례도 나옵니다.
이 사례는 마치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어머니의 죽음에 주변 사람들이 납득하지 못한 반응과 행동을 보이는 장면이 연상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모두 똑같은 행동과 표정을 짓지 않습니다.
문화가 다른 곳에서는 화난 표정과 과 적대심을 가진 것을 구분하지 못하기도 하지요.
외모와 행동은 진실을 거짓으로 생각하게 하기도 하고, 거짓을 진실로 믿게도 합니다.
즉 외모와 행동같이 두드러지고 과대평가되기 쉬운 정보는 편견을 불러와 판단을 한층 어렵게 만들 뿐입니다.
이런 것은 중요한 정보의 원천이라기보다 잘못된 예측의 원천이 되어, 신호가 아니라 잡음을 만들어냅니다.
낯선 이를 직접 만나면 만나지 않는 것보다 그 사람을 파악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책에 나오는 해리 마코폴로스는 "나한테는 수학이 진실"이라고 말합니다.
투자 기회나 기업을 분석할 때, 그는 당사자를 직접 만나지 않는 쪽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바로 전에 소개한 영국 수상 네빌 체임벌린과 같은 식의 오류를 범하길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4. 그럼에도 낯선 이에게 다가서야 한다.
우리는 낯선 이와 대화하는 것에 서투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얼마나 서투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아예 낯선 이들과 대화를 하지 않아야 할까요?
세상에서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일들은 대부분 과감하게 낯선 이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시작되는, 마음을 열고 새로운 사람과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행을 하면서 종종 느끼는 일이지만, 낯선 이들이 나누는 최고의 대화는 이야기를 하고 나서도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한 채 끝나는 대화입니다.
우리는 외모, 행동에 쉽게 속고, 오해도 합니다.
모두 진실되다는 잘못된 기본 값도 가지고 있지요.
그렇다고 모두 의심을 하고, 그 의심을 해소할 만큼 충분한 증거를 얻기에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러면 낯선 이들과 대화할 때,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