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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 국선변호사 세상과 사람을 보다
정혜진 지음 / 미래의창 / 201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기자로 15년을 일을 한 후 준비해, 변호사가 된 특이한 이력의 저자가 국선 전담 변호인으로 일하면서 겪은 사건과 사람에 대한 책이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법정에 가서 변호를 받거나, 법률 서비스를 받을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영화나 소설 등으로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것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다. 그런 매체에서 다루는 국선 변호인은 무능하고, 어쩔 수없이 사건을 맡아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으로 그려지곤 한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기 전 국선 변호인에 대한 잘못된 오해와 고정관념이 있었다.
형사 재판에서 자신의 방어권을 위해 변호인이 꼭 필요한데, 변호인을 구하지 못하거나 구하지 않을 때 국가에서 피고인에게 붙여주는 변호인을 '국선 변호인'이라고 한다. 국선 변호인은 예전에는 변호사들이 당번처럼 돌아가면서 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국선 변호인의 서비스 향상을 위해 국가 일정 수입을 보장해주면서 일반 사건은 수임할 수 없고 국선 변호만 전문적으로 전담하는 변호인을 뽑아서 운영하는 제도가 2006년부터 시행되게 된다.
저자 정혜진 변호사는 2014년부터 국선 전담 변호인을 하면서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사건을 통해 만나고, 이 이야기를 기자로 활동했던 영남일보에 3년간 고정된 수요 칼럼을 통해 세상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책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가 출간된 것이다.
5개의 장, 22개의 소제목으로 더 많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가해자, 범죄자로 부르는 그들의 삶, 그들 주변의 삶, 법의 한계를 통해 안타까움과 분노와 여러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15년 기자 생활의 풍부한 경험과 글솜씨 덕분인지 저자가 사소하고 조각난 이야기라고 에필로그에 적었던 에피소드들이 가독성이 높으면서 흡입력이 높아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배고파서 빵 하나 훔쳐도 몇 차례 절도 전과가 있다면 징역 1년 6월이라, 너무 가혹한 나머지 '한국의 장발장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위헌 결정을 이끌어내며 유명세를 얻게 된 계기가 됐던 이야기도 있지만, 본인의 생각과 다르게 무죄가 선고되어서 당황하기도 한 이야기, 무죄를 확언했는데 유죄가 선고된 부끄러워했던 솔직한 이야기까지 모두 흥미롭고 재미있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첫 번째 이야기인 '각자의 시간'이다.
이야기의 구성이 2018년 노벨상 수상자인 올가 토카르추크의 '태고의 시간'들의 구성과 비슷하게 한 사건을 가해자, 부모 등 여러 가지 시점으로 진행되었다. 가해자, 피해자만 부각되는 사건에 가해자이긴 하지만 가해자의 부모님의 시점으로 글을 읽고, 가해자의 가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이야기의 힘도 있지만, 법률에 대한 상식 및 지식도 얻을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고의'에 대한 정의였는데, 법률 용어로 명예훼손의 고의가 없다는 것으로, 피고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주장 중 하나지만 그걸 인정받기란 정말 어렵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고의는 처음부터 그런 마음을 먹고 행동한 '적극적인 고의'지만, 형법에서는 고의는 그 범위가 매우 넓다. 가장 낮은 단계라고 할 수 있는 '미필적 고의'는 앞의 사기 사건에서처럼 자기의 행위로 인해 어떤 범죄 결과의 발생 가능성을 인식 혹은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고 행동해버리는 것을 말한다.
웬만한 사안에서는 미필적 고의라는 그물에 죄다 걸린다.
앞서 미디어를 통한 '국선 변호인'의 오해처럼, 변호사들이 결과를 뒤집고 승리를 하는 장면을 너무 흔하게 보다 보니 실제로 그런 일이 매우 쉽게 자주 일어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책에서 언급하기를 1심 형사공판 사건에서 무죄율은 3%밖에 되지 않았다.
그만큼 무죄 받기가 어렵다.
사실 국선변호인은 결과에 부담이 없으니, 그저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국선 전담 변호인에게 너무 많은 사건과 적은 고정 수입으로 진정한 최선을 다할 수 없는 환경처럼 느껴졌다. 더 나은 환경이 제공되어야 무죄인 사람에게는 무죄를 받아줄 수 있지 않을까?
끝으로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법학전문대학원에 다니면서 외웠던 '양심'의 정의를 통해 불합리한 것을 지나치지 않고, 조금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쓰게 만드는 부분이 이었다.
양심이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이다.
우리 모두 양심의 정의를 되새기면서 살아간다면, 국선 전문 변호인이 저자를 만나는 일이 없이 올바른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