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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치료의 혁신, 면역항암제가 온다
찰스 그레이버 지음, 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19년 10월
평점 :

요새 AI의 능력과 미래는 아무도 과소평가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현재의 단계에 비해 과대평가하기가 더 쉽다. 하지만 AI 기술도 이렇게 뜨거워지기 전 2번의 긴 겨울, 40년 가까운 암흑기가 있었다.
그러다 기술이 발전하고, 환경이 받쳐주자 드디어 위대한 발전의 시기 'THE BREAKTHROUGH'가 왔다.
이처럼 'THE BREAKTHROUGH'는 AI처럼 긴 암흑기와 진정한 발전이 있을 때 쓰는 단어인데, 암 치료에 쓰이다니 암이 정복되기라도 한 것인가?
그런데 왜 우리는 모르고 있을까?
책의 원제에 너무나 큰 의구심을 갖고 보기 시작했다.
암은 이제는 특이한 병이 아니라, 한국인의 사망 원인이 36년 동안 1위를 지켜오고 있는 흔한 병이 되었다.
이렇게 흔한 암이지만, 지금까지 암을 치료하는 데는 암세포를 물리적으로 잘라내는 수술, 방사선을 이용해 태우는 방사선요법, 화학적인 독극물들을 이용해 중독시키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 방법으로 전체 암 환자의 절반 정도를 완치시킬 수 있다지만, 아직도 절반의 환자가 남고, 정상세포마저 파괴하고 무력하게 만드는 치료의 부작용이 심하게 후유증으로 남는다.
우리 몸은 사실 강력한 면역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암이 우리의 면역 시스템을 망가트리거나 속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이용해, 직접적으로 암을 공격하는 방법이 아니라 면역 시스템이 암을 인식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항암면역요법이다.
매우 단순한 아이디어였지만, 기나긴 연구가 필요했다. 그리고 기나긴 연구 끝에 면역요법제를 완성하고 나서도 수십 년간 면역요법제로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실패하고 나서야, 마침내 노력의 결실이 나타나게 되었다.
책은 의학, 과학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해 몇몇 인물을 크게 부각시키는 방법을 이용했다. 실제 환자의 이야기와 사례가 소설처럼 진행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어려운 내용을 단계별로 이해하면서 진행할 수 있었다.

책의 마지막에 가면, '암 면역 주기'라 명명된 복잡해 보이는 그림이 보이지만, 앞에서 이야기를 잘 따라오면 이 내용이 쉽게 이해되었다.
가장 최근 기술인 CAR-T의 경우, 단 한 개의 CAR-T 세포가 수십만 개의 암세포를 살상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고, 실제 임상에서 CAR-T 세포를 주입한 지 불과 4주 뒤에 생검 결과 암세포가 사라지는 결과도 있었다.
CAR-T는 가장 최근인 2017년에 처음 승인되었지만, 너무나 강력하고 너무나 새로운 치료법이므로 어디까지 발전할지 상상조차 어렵다.

CAR-T 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연구진들은 얼마나 벅찬 희열을 느꼈을까? 여기까지 발전한 과학 이야기에 감탄하고 정말 이제야 암이 정복되는구나 싶었지만, 치료 비용이 나오자마자 현실적인 생각이 들었다.
미국 제약회사 노바티스에서 CAR-T를 이용해 급성 B 세포 림프종에 사용되는 약물 '킴라이아'를 상품으로 출시했다. 킴라이아는 우리가 흔히 아는 알약, 주사 등의 형태가 아니라 환자 자신의 T 세포를 유전공학적으로 처리한 개인 맞춤형 약물이다.
먼저 병원에서 혈액을 채취하고 원심분리를 통해 추출된 T 세포를 극저온 냉동 상태로 노바티스 중앙연구소로 보내진 후, 해동된 환자의 T 세포가 암세포에 특이적으로 발현되는 단백질을 인식하도록 유전공학적으로 조작한다.
조작한 T 세포를 배양하여 수억 개 단위로 증식시키고 병원으로 돌려보낸 후 환자의 몸에 주입한다.
이 과정이 22일 안에 이루어진다.
이전에 생존율 0퍼센트였던 ALL 환자군의 경우, 현재 추정 생존율은 83퍼센트 이상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혁신이 생긴 것이다.
정말 'THE BREAKTHROUGH'가 맞는 듯했다.
그런데, 한 번 주입받는 데 드는 비용은 현재 47만 5,000달러이다.
입원비가 추가되므로 결국 총비용은 100만 달러 정도다.
우리나라 돈으로 12억에 가까운 비용이 드는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정도가 아니라 돈이 없으면 죽어야 하고, 돈이 있으면 살 수 있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그다음으로 좋은 치료는 골수 이식으로 비용은 10만 달러 정도인데 비해, 10배 이상의 금액이 필요하다.
책에서는 2017년의 출시의 당시의 가격을 언급하고 있어서, 2020년인 현재 기술의 발전과 환경의 변화로 훨씬 더 저렴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에 알아봤는데, 노바티스에서는 47만 5,000달러의 가격을 현재까지 고수하고 있다.
그나마 일본에서는 작년 5월부터 30만 6,000달러에 파는 것으로 승인받아, 미국보다 저렴하게 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CAR-T 킴라이아 유독 비싸긴 하지만, 항 CLTA-4 제제인 이필리무맙의 상표명인 여보이도 4차례 투여받는데, 총 치료 비용이 12만 달러가 넘는다.
진행 흑색종에 사용하는 머크사의 항 PD-1 항체 키트루다를 1년간 투여받는 데 드는 비용은 15만 달러에 달한다.
지금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이 엄두도 낼 수 없는 금액의 치료제만 있게 되어 의학적 발전의 혜택을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없다면, 아무리 혁신적인 치료가 개발된다고 해도 대다수에게는 치료제 개발 이전과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최신 암 치료 방법인 면역요법에 대한 이해와 현재 상황을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
기술적인 면에서 'THE BREAKTHROUGH'가 일어났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인류가 그 기술적인 혁신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치료제의 가격까지 낮아지는 진정한 'THE BREAKTHROUGH'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