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 - 전쟁, 역사 그리고 나, 1450~1600
유발 하라리 지음, 김승욱 옮김, 박용진 감수 / 김영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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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이른바 인류 3부작으로 그의 빅 히스토리에 대한 놀라울 만큼 방대한 지식과 그의 독특한 견해를 들려주었다. 유발 하라리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던 분야가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그의 엄청난 인기 덕분에 책으로 출간되어 유발 하라리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읽게 되었다.

먼저 이 책은 제목만 보고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지식들도 많이 전달할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의 중점은 르네상스가 아니라 전쟁 회고록이다. 르네상스시대에 쓰인 전쟁 회고록을 박사학위 논문답게 기존 연구들을 살펴보고, 기존 연구들과 다른 자신만의 주장을 점진적으로 펼쳐나가고 있다.

매우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책이지만, 유발 하라리의 팬이라면 반드시 읽어볼 만하다. 그가 한 가지 주제를 놓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살펴본 후 하나하나 언급하며 결론을 내리는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과 역사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본다.

-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의 저자들은 거의 모두 전사 귀족이었다.

- 기존 회고록에 대한 정의는 역사적 담론과 개인적인 담론의 조합, 역사와 개인사의 조합이 바로 회고록의 정의라고 주장한다. 최종적인 특징이 바로 역사와 개인사를 어떻게 조합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가정한다.

- 일인칭 시점의 글이 많은데, 이는 르네상스 시대에 개인적인 경험을 가장 확실한 진실의 기반으로 보는 시각이 점점 널리 퍼졌기 때문에 일인칭으로 글을 쓰는 것이 문헌의 진실성을 보장하는 최선의 방법이 되었다는 것이다. 일인칭 시점은 글의 내용이 진실임을 확인해주는 역할을 했다.

- 르네상스 시대의 군인 회고록 중에 개인사나 역사서로서 좀 더 일관된 모습을 보이는 작품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글에서도 언제나 개인사와 역사가 놀라울 정도로 뒤섞여 있다.

​유발 하라리는 르네상스 시대 군인 회고록이 역사와 개인사의 이분법을 따른다고 미리 가정하지 않는다. 저자가 전투원이나 지휘관으로 참가한 군사적 사건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글을 군인 회고록만의 특징으로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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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르네상스 시대 전사 귀족계급의 세계와 그들의 세계관에 대한 연구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 귀족 계급 전반에 대한 연구는 아니다. 당시 전사 귀족은 이미 전체 귀족 계급을 대표하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 많은 군인 회고록은 예전에 이미 이런 식으로 몇 번이나 남들에게 들려주었던 전쟁 이야기를 글로 적은 것에 불과했다.

- 회고록의 저자들이 전쟁이라는 현상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전쟁에 대한 허구적인 이미지를 다루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전쟁을 자연스럽다 못해 심지어 긍정적이기까지 한 일로 받아들여졌자는 점이다. 따라서 그들은 전쟁을 반드시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 르네상스 시대 군인 회고록에 등장하는 현실을 조사할 때 내가 사용한 중요한 도구 중 하나로 20세기 군인 회고록과 비교하는 방법이다. 20세기 회고록에서는 자신의 개인사를 심리적인 변화가 이어지는 과정으로 묘사하며, 이런 과정을 야기하거나 명백히 드러내는 경험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보통 '내가 경험한 전쟁'이 아니라 '전쟁이 나를 어떻게 바꿔놓았는가'이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 군인 회고록의 저자들에게서는 심리적인 변화 과정이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르네상스 시대의 회고록 저자들은 아내, 성생활, 친구뿐만 아니라 자신의 유년기도 무사히는 경향이 있었다.

자신의 탄생이 아니라 군대에 발을 들인 시점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처럼 '삶'은 그가 말을 타고 무기를 들 수 있게 되었을 때, 즉 무훈을 세워 역사의 주인공이 될 잠재력을 갖췄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 일어난 일은 무엇이든 그의 정체성이나 삶에 중요하지 않았다.

- 역사가 알고 보면 단순히 '귀족 남성이 한 일'의 기록인 경우가 허다하다. 귀족 사회의 역사 서술에서 귀족 남성이 차지한 특권적인 지위는 그들이 역사의 가장 중요한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역사의 중요한 원천이자 청중이었다는 사실에도 잘 드러나 있다.

귀족사회의 역사 서술은 귀족 남성이 한 말을 귀족 남성에게 들려주는 일이었다.

- 르네상스 시대 군인 회고록이 역사와 개인사를 동일시하고, 역사와 개인사가 모두 '명예로운 행동'을 중심으로 삼고 있었으므로,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역사 속의 자리뿐만 아니라, 개인사와 정체성도 빼앗기고 말았다. 많은 회고록 저자들이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글을 쓰면서 오로지 '진실'만을 이야기해서 자신과 동료들에게 불후의 명성을 안기고자 했을 것이다. 어쩌면 물질적인 보상까지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글은 귀족적인 정체성이라는 맥락을 벗어나지 않았으며, 그들이 이야기하는 진실은 귀족적인 역사 속의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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