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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운전하고 오겠습니다 - 인생은 대리가 아니니까
김희철 지음 / 동아북스 / 2019년 7월
평점 :
나는 자차가 없기 때문에 대리 운전을 이용해 본 적이 없다. 차가 있더라도 술자리를 늦게까지 즐기지 않는 성격상 차를 가지고 술자리에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도 대리 운전을 부를 일이 없지 않을까?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경험할 일이 없을 것 같은 대리 운전의 세계가 궁금했다.
그럼 잠깐 탑승해 보겠습니다.
밤에 대리 운전을 뛰다 보면
거리에서, 버스에서, 서울 외곽 아파트촌에서
자주 마주치는 대리기사들이 마치 길고양이처럼 느껴졌다.
차례 다음에 고양이 사진이 나오길래 시작부터 생뚱맞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뒤표지를 보고서야 알았다. 대리기사들을 길고양이에 빗댄 것임을.
콜을 기다렸는데 콜 뜨기가 무섭게 0.0001초 만에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경기가 좋지 않으니 술자리가 별로 없어 대리기사 부르는 수요도 많지 않은데,
나처럼 한푼 벌어 보겠다고 나선 대리기사는 엄청나게 많기 때문일 것이다.
대리 기사들은 먹고살기 위해 콜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콜 사라지는 속도가 체감 0.0001초란다. 콜 경쟁을 통해 경기가 좋지 않음이 체감되어 씁쓸하고, 대리 기사의 고충이 느껴져 짠했다.
택시기사나 대리기사들의 큰 고충은
생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손님들이 예고하고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출몰하기 때문에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밥때를 놓치거나
여유롭게 화장실에 갈 수 없게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고충은 그뿐만이 아니다. 바로 참는 것이다. 대리기사는 배고픔을 참고, 생리현상을 참으며, 진상 취객의 무례까지 참아내야 한다. 대리기사를 왜 길고양이에 빗댔는지 알겠다. 영락없는 길고양이 맞구나.
모든 차가 하이패스를 이용하면 통행료 받는 아주머니들은 직업을 잃겠지.
무인 자동차가 상용화되면 대리 운전이라는 직업은 사라지겠지.
사라지는 걸 기록하는 다큐멘터리만큼 부질없는 짓은 없지.
시대가 바뀌면 사라지는 직업이 생기기 마련이다. 저자는 무인 자동차가 상용화되면 대리 운전이라는 직업이 사라질 것이고, 사라지는 걸 기록하는 것이 다큐멘터리만큼 부질없다고 한탄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사라질지도 모를 직업에 너나없이 뛰어든 사람들로 인한 심한 콜 경쟁을 보라. 이것은 단순히 대리 운전의 기록이 아니다. 이 시대 가장들의 삶의 무게에 대한 기록이고, 밥벌이의 설움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서 의미 있다. 대리기사란 직업이 사라져도, 삶의 무게와 밥벌이의 설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호텔 주차장에서 뱅글뱅글 올라오는 통로의 입구를 지나다가 차 범퍼가 콘크리트 턱에 걸려 흠집이 났다.
보험사에 전화해서 사고 접수를 하고 이십여 분을 기다리자 담당자가 나타났다. 앳된 차주는 내가 최대한 적게 배상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고맙긴 했지만 월요일쯤 나올 배상금이 얼마나 될까 걱정된다.
대리 운전은 정말 답이 없구나. 어서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열심히 벌어도 사고가 나면 일주일 치 수익이 원점인 직업, 대리 기사.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과 무척 닮아 있다.
정리하자면 <잠깐 운전하고 오겠습니다>는 저자가 직접 경험한 대리 운전에 대한 여러 에피소드를 잘 엮은 책이다. 이 일에 종사하는 분들이나 이 일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대리 운전의 기록이다 보니 차주에 대해 평가하는 부분이 없을 순 없지만, '여자는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비호감 얼굴(75~76쪽)' 같은 외모 평가 등은 적절치 못해 보였다.
또한 저자만 아는 인물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가령 '김태오 회장님과 제주도에서 데려온 고양이'라는 문장을 읽으면 '김태오 회장님이 누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장 외에도 인물이 설명 없이 툭 튀어 나올 때가 종종 있었다. 이런 부분을 조금만 친절하게 다듬으면 좀 더 글이 잘 읽힐 것 같다.
아무쪼록 잠깐의 탑승이었지만, 어느새 끝장에 도착해 내려야 할 때다.
부디 좋은 콜 많이 잡히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