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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거짓도 사랑할 수 있는가
황정미 / 유페이퍼 / 2021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유있고, 능력있어 벤츠 e 클래스 익스클루시브의 조수석에 남자를 앉히고 싶은 그녀에게 네 번째 남자가 나타났다. 두 번의 이혼 끝에 만난 세 번째 남자는, 그녀의 이혼경력을 문제삼는 어머니 때문에 떠나갔다.
황정미 작가의 두 번째 저서 <거짓도 사랑할 수 있는가>는 e북으로 출간을 했다. 중편 분량의 이 소설을 황정미 작가는, 심리상담을 하고, 글쓰기 수업과, 그림 수업, 그리고 독서모임, 그것 뿐인가, 30년 넘은 과외 선생님의 노하우를 잊지 못하는 학부형들 성화에 학생들 상대로 ‘과외’까지 하면서 글을 쓰고 손수 편집을 하여 e북으로 출간까지 감행했다. 심리상담을 온 내방 객의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 놓은 이 소설엔 ‘상처’가 ‘사랑’을 어떻게 변모시킬 수 있는지, ‘사랑’을 앞세운 ‘기억의 비만’이 어떻게 자신의 생을 갉아먹고 있는지, 지상이 아닌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환상적으로 들려주고 있다. 그녀의 하얀 침실의 빛나는 린넨침대보처럼 신기루 같은 이야기는 내 이야기이면서, 당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네 번째 남자는 여자의 눈을 보지 않는다. 그녀는 그를 도서관에서 보았다. 연두색 형광펜을 책에 그으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남자. 승진시험을 준비중인 그녀에게도 연두색 형광펜이 있다. 도서관 뜰, 닭의 볏을 닮은 맨드라미를 그에게 투사하는 그녀는 사랑에 목이 마르다. 아니다. 그녀가 목이 마른 건 어디에도 없는 자신의 존재 때문인 것도 같다. 그녀는 언제나 바스락거리는 건초처럼 불안하다. 자신의 존재가 불안하니 상대를 현실 그대로 투영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상상의 갑옷과 투구를 입혀 기억의 비만 속에 침잠하는 그녀의 사랑은 늘 왜곡된 채 파멸로 끝이 났다.
내 번째 남자와, 토성의 위성처럼 노란 눈으로 그녀를 맴도는 검은 고양이 테오는 그녀의 집에서 또아리를 틀었다.
'건조에 강해서 물을 자주 줄 필요가 없다고 들었다. 작열하는 태
양 아래 숨이 더 살아나서 더 건조해져도 더 빛을 발하는 맨드라미'
겨울에 죽은 나무에 한 바가지의 물을 주듯, 그녀를 다 주면, 가진 것을 다 주면, 그가 피어날 줄 알았다. 작렬하는 태양아래서 현란하게 빛을 내며 타오르는 맨드라미처럼 말이다. 그는 맨드라미가 아니었다. 맨드라미가 될 생각이 아예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상상 속에서 비만처럼 부풀어 오르는 사랑이 실현될 때 삶은 출렁다리가 된다.
네 번째 남자의 아버지는 독일에서 신학을 공부한 목사였다. 신도 앞에서 인자한 미소를 짓는 아버지는 어머니를 폭행했다. 아버지가 보던 신학책에 깃든 연두색 형광펜은 유미와 남자를 운명적으로 이어주는 도구가 된다. 목사 아버지, 네 번째 남자, 유미. 엄마를 가스라이팅하는 아버지의 폭력을 남자는 여자에게 다른 방식으로 행사한다. 작품 속에서 대화하는 여자의 친구는 ‘유미’자신이다. 방황하고, 흔들리는 내면과의 대화는 ‘아이러니의 극복’을 향한 끝없는 몸부림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탈출하고 싶어 몸부림을 칠 때마다 뻘 속에 빨려들어가는 발처럼 속수무책이 아닌가 불안불안하다. 그녀의 영혼은 늘 부나방이다.
'슈프레강 교량은 아름다웠어요. 돌로 만든 다리를 건너면서 강
밑을 바라보면 아들은 불안해 했어요. 뛰어내릴 수 없는 높이인데
도 아들은 내 손을 잡아당겼어요. 아들은 어렸으니까요'
아버지의 가스라이팅, 엄마의 자살충동에 불안하고 억압된 어린시절을 보낸 남자는 ‘세상의 왕’으로 군림하고 싶다. 여자의 집에 들어 와, 5년 간을 놀고 지낸 남자는 하얀 린넨 침대보를 흩트리면서도 1시간을 들여 자신 몸을 닦는 사람이다.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아이를 거부한 남자는, 같은 이유로 호스피스 병동의 여자 부모의 병문안을 거부한다. 그리고 쇼핑을 한다. 홍콩에서.
그 남자에게서 떠나고 싶다. 그녀는. 메아리가 없는 사랑은, 나르시스처럼 자신의 얼굴을 대면할 날이 반드시 오게 마련이다. 자신의 얼굴은 '자아'이다.
'그래, 이제 나는 흰 구름의 이야기와 저녁 광선의 비밀을 끝까지
들어 줄 남자에게 가려고 한다. 파동이 심한 뛰는 가슴을 따스하
게 안아 줄 남자가 있다.'
클럽에서 원 나잇으로 만난 그녀의 세 번째 남자가, 다섯 번째 남자가 되어 돌아왔다. 결혼을 반대하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는, 네 번째 남자와 달리 들어주고, 눈으로 말하는 것을 읽을 줄 알고, 그녀의 눈을 바라 봐 준다.
네 번째 남자가 깔아뭉개던 하얀 린넨 침대보를 바로 잡아주고 그녀를 읽을 줄 안다.
세 번째 남자이자, 다섯 번째 남자가 그녀가 되는 지점이다. 다시 말하면, 다섯 번째 남자는 다름아닌 네번 째 남자를 향한 그녀 자신인 것이다.
나는 아름다운 교량 위에서 반짝이는 윤슬에 충동을 느끼는 엄마의 뒷모습이 가장 비극적이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은 늘 불안에 떨었을 것이고. 이국적인 풍경이 수놓아질 때마다 불행의 예감으로 가슴이 떨렸다. 아름다움과 불행의 예감은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가 아닌데...
인간 관계 속에 놓인 그럴듯한 허위의식을 '그녀'가 '내면의 자아'와 함께 잘 타파해내길 바란다.
부디 다섯 번째 사랑은 '행복'하길....
부디, 자신의 삶과 악수를 하며 전진하길..
황정미 작가의 [거짓도 사랑할 수 있는가]는 '서정이 흐르는 아픈 사랑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