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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달리는 러너
박태외(막시) 지음 / 뜰book / 2024년 7월
평점 :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단번에 읽었단다. 다 읽고 나니 희부염하게 새벽이 밝아오더라고 했다. 나는 리처드 도킨스를 앉은 자리에서 읽어낼 지성과 교양을 지니지 못했다. 그러나 막시(박태외)의 신간 <산을 달리는 러너>는 밤이 새벽과 손잡는 시각까지 꼬박 앉아 읽어냈다. 이런 책은 길지 않는 내 독서 역사에서 사건이라면 사건이다.
그의 글은 몸으로 겪어낸 개별적인 체험이다. 그러기에 진실의 땀 냄새가 풍기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직관적인 통찰에서 얻어진 명언이다. 읽는 내내 ‘뼈와 살’로만 쓰여진 책도 이렇게 흡인력이 있구나 싶었다. 에너지가 모두 소진된 후 뼈와 살이 토해내는 이야기가 어찌 진심을 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달리기에서 인생을 배우고, 달리기 코스가 인생의 여정이라 믿는 그는 진심 달리기를 사랑한다. 그런 그가 평지를 밀어내는 달리기에서 산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달리는 ‘트레일 러닝(trail running)을 하는 사람이 됐다. 산을 사랑한 사람이 된 것이다.
이 책은 ’트레일 러닝‘에 어쩌다 입문하게 됐는지와 그 여정, 그리고 트레일 러너들에게 꿈의 무대인 UTMB 몽블랑(Ultra Trail du Mont-Blanc)에서의 감격적인 완주 기록이자, 자연과 인간을 향한 끈끈한 감동의 기록이다.
오랜 기간 달리기로 단련된 그에게 ’산을 달리는 일‘은 일상의 희열이고, 육체의 산뜻함이며, 정신에 활력을 주는 가뿐한 취미일 것이라 추측했다. 그는 한 번도 엄살을 부려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온라인에서 4년 동안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리더는 ’산을 달리는 러너‘, 막시다. 그는 독서 회원인 우리에게 어디를 삐끗했다거나 힘겹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저 든든한 바위처럼 그 자리에 있다. 쉬지 않고 길을 달리고 산을 달려도 그는 늘 책을 읽는다. 그리고 쉴 새 없이 글을 쓴다. 이게 신기하다. 이런 그의 원동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묻는 일은 어리석다.
이제 알겠다. 그에게도 눈물이 날 것만 같은 힘겨운 길이 있었고, 울고 싶을 만치 험한 자갈밭이 앞길을 막았으며, 끊임없이 찾아오는 현타에 마음이 흔들리는 날이 있었다는걸. 그런 길 위에 그는 인생의 의미를 찾았고, 자신의 도전 의식을 불태웠다. 가족을 향한 끈끈한 사랑이 더 두터워졌음은 물론이다. 딸의 성숙한 응원과 후원? 이 없었다면 그가 몽블랑에서 산 달리기를 할 수 있었을까?
그는 말한다.
"산을 알게 된 건 행운이다.
산을 모르고 살았을 때보다 삶은 즐거움과 설렘으로 가득하다.
산으로 둘러싸여 척박하다고 배운 우리나라가 이제 축복으로 다가온다.
산은 살아갈 수많은 날 동안 다 다니지 못한 만큼 넓은 놀이터가 될 것이다."
트레일 러닝은커녕 달리기도 못하는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당장 달리기를 하고 싶었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기도 했다. 부끄러움을 덜고자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계단을 걸어서 집으로 오는 것으로 막시 님의 힘겨움을 체험해 보고 싶었다.
몇 계단을 오르지 않았는데 심장이 밖으로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종아리는 천근만근 무거웠다. 나는 무릎 연골에 부상을 당해 걷는 게 힘겹다. 다행히 무릎은 평온했다.
막시 님이 책에서 그랬다.
앞만 보고 나아가다 보면 목표에 도달한다고.
한 계단, 한 계단에 집중하다 눈을 들어보니 기가 막히게 우리 집, 19층이었다.
20층을 걸어 올라온 것이다. 등 뒤가 함빡 젖은 채 떨리는 손으로 현관 키를 눌렀다.
그 뒤는 상상에 맡긴다.
이 책을 계기로 나는 계단을 걷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우리의 삶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듯 나의 산 달리기도 삶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항상 그랬듯 길은 또 다른 길을 만들 것이다."
달리기를 인생의 답 찾기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오늘도 삶을 불태우는 막시 작가님!
<산을 달리는 러너>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깔끔하고 명쾌한 글들.
제겐 보물입니다.
목표가 있는 달리기와 목표가 없는 달리기는 천지 차이다. 목표가 있으면 몰입하게 되고 몰입은 행복과 성장을 일군다. 그러면 달리기가 더 재미있어지고 자신감도 솟는다. 우리의 삶이 삶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듯 나의 산 달리기도 삶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항상 그랬듯 길은 또 다른 길을 만들 것이다. - P331
누군가의 인생에 고난이 닥쳐도 시간은 아무렇지 않은 듯 흐르고, 타인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인생이 그렇듯 달리기도 각자도생일 때가 있다. - P85
시계를 봤다. 도전을 포기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스스로를 질책하던 나는 온데간데없었다. 세상에 위기가 닥치면 밑바닥에 있는 사람이 가장 힘든 고통을 당하는 법이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오늘까지 이어져 내려온 인간사의 법칙이다. - P86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길도 쉼 없이 가면 끝난다. 멈추지만 않으면 결국 목적지에 도달한다. 멈춘 듯한 시간은 조금씩 흘러 어느 순간 계단은 끝을 보였고, 드디어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 P87
천천히, 자주, 적게(적당한 거리) 달리는 것이 오래 달리는 비결이다. 이걸 알면서도 우리는 기록에 집착하고 울트라마라톤과 울트라트레일 러닝 같은 초장거리 달리기를 한다. - P127
우리 러너는 달리면서 삶의 의미를 찾는 존재다. - P127
적당한 수준에서 달리면 무릎은 강해진다. 정확하게 말하면 무릎을 지탱하는 근육과 인대가 강해진다. - P128
편한 길을 기대했지만, 그건 나의 희망일 뿐 다시 너덜길이 시작됐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불평을 쏟아봤자 아무 소용없다. 그저 묵묵히 할 일을 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빨리 어려움을 끝내는 길이다. - P87
이제 막 달리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무작정 열심히만 달리면 실력이 향상되는 줄 안다. 그렇게 하면 따라오는 건 부상뿐이다. 훈련을 열심히 한 뒤엔 그만큼 잘 먹어야 하고 잘 쉬어야 한다. 그래야 훈련이 실력으로 바뀐다. "휴식까지가 훈련"이라고 말한 지인의 얼굴이 생각났다. - P146
우리의 삶이 삶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듯 나의 산달리기도 삶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항상 그랬듯 길은 또 다른 길을 만들 것이다.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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