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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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년동안 세상과 격리된 채 살아야 한다면 과연 제 정신으로 살아낼 수 있을까? 하지만 신영복선생은 그의 글씨체만큼이나 반듯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냈고 그 생각의 궤적은 이 책에서 빛나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에서 교관을 하던 전도유망한 젊은이는 1968년 박정희 정부 시절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된 후 사형을 선고받지만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고 20년을 복역하게 된다. 1970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있을때의 글은 특정 수신인이 없는 글로 자신의 마음을 글로써 풀어낸 내용이 많지만 이후 안양교도소와 대전, 전주교도소에서 쓴 글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때로는 그림도 옆에 그려가면서 보낸 글들은 하나같이 주옥같아 오죽하면 편지를 받은 사람들이 그 편지들을 모아 책으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선생의 입장을 헤아려 보면서 그 속이 과연 어땠을까 상상해보는 것 만으로도 힘들고 괴로운데, 책 중간중간 실려있는 선생의 편지를 찍은 사진들을 보면 얼마나 정갈하고 또박또박 살아있는 글씨인지 전혀 그런 어두운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을 가장 밑바닥에 세우는 냉정한 시선과 용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아내의 일 나감’을 걱정하는 젊은 동료를 보며 ‘아내를 세들어’ 살아야 하는 힘든 사람들을 안타까워한다. 

처음에는 아버님과 어머님, 형님, 동생에게 쓰던 편지가 뒤로 갈수록 형수님과 계수님에게 쓰는 편지로 바뀌고, 그 속에 자신의 생활이라던가 생각했던 것,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선생의 글을 읽다보면 어떻게 그런 상황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반듯한 정신을 잃지 않을수 있는지 마음이 숙연해진다. 형수님에게 쓴 여름 징역살이에 대한 글은 자신에 대한 칼날같은 성찰로 쓰여진 글일 것이다. 비좁은 감옥안에서 상대방의 체온을 느끼며 갖게되는 증오를 없이 사는 사람들 생활속의 그것과 비교해보며, 결코 그것이 그들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과 조건을 헤아려야만 한다는 선생의 생각은 책 전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감과 연대.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p313)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p325)


책을 읽으면서 첫 부분은 신경쓰지 않고 읽었는데, 뒤로 갈수록 글의 마지막 날자를 자꾸 보게된다. 어서 20년이 지나 선생이 자유의 몸이 되어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일까. 2006년 발행된 책이라 저자 소개난의 선생은 아직 성공회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중이시다. 다음 번 책은 바깥세상에서 쓴 선생의 책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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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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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몬드>는 손원평 작가의 첫 장편소설로 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다. 한국형 영어덜트소설의 탄생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들으며 등장한 이 소설은 마치 영화를 보는듯한 속도감으로 끝까지 단숨에 읽힌다. 


주인공 윤재는 일명 ‘아몬드’라고도 불리는 뇌속의 편도체가 작아 감정에 대한 반응을 할수 없다. 윤재의 증상인 ‘알렉시티미아’ 즉 감정표현 불능증은 감정을 인식하고 적절히 표현하는 능력의 부족, 즉 자신과 타인의 감정 모두 느끼지 못하는 증상을 말한다. 

엄마와 할멈(윤재의 표현이다)의 사랑속에서 지내던 윤재는 자신의 열여섯번째 생일날 가족과 함께 시내에 나갔다가 묻지마 살인극에 휘말린다. 할머니는 죽고 엄마는 의식불명상태에 빠지면서 그때까지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은 삶을 살아왔던 윤재는 자의반 타의반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면서 살아가게 된다. 

윤재에게 중요한 타인으로 등장하는 곤이. 13년만에 가족을 찾지만 분노로 가득 차있다. 감정을 느끼는대로 표출해버리는 그는 감정에 휘둘릴 일이 없는 윤재를 부러워한다. 


다른사람의 감정에 반응하지 못하는 윤재였지만, 감정을 느낄 수 없는 만큼 감정에 의해 자기자신을 속이는 일 없이 자신이 믿는 것을 관철할 수 있었던 걸까? 엄마와 할머니가 속수무책으로 폭력을 당할 때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슬픔보다는 질문을 품어왔던 윤재는 곤이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주저함없이 행동한다.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p245)


많은 묻지마 범죄가 횡행하고, 공감능력이 부족한 시대라고 말들을 한다. 작가는 공감에 대한 화두를 묵직하게 던진다. 다른사람의 아픔을 공감한다는 것은 과연 어디까지 가능한걸까. 우리는 수많은 SNS페이지에서 공감버튼을 누르지만, 정작 타인을 위한 행동이 필요해질 때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그 수많은 공감들은 그저 소비되는 감정이었던 것일까. 어떤 것을 공감한다는 것이 그저 같은 것을 느낀다는 사실일뿐 더 이상도 더 이하도 아닌 것이 현실이다. 

사람들이 많은 거리에서 윤재의 엄마와 할머니는 공격당하지만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소설이지만 더이상 낯선 사건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윤재라는 캐릭터는 나에게 많은 울림을 남겼다. 윤재를 통해 공감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 감정은 비로소 표현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타인과의 관계맺기와 큰 사건을 거치며, 어쩌면 제일 변하기 힘든 사람이었을 윤재는 변하게 된다. 자기의 손을 내밀어 곤이의 손을 잡는 행동을 보여준 것이다. 많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고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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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말을 건다 - 속초 동아서점 이야기
김영건 지음, 정희우 그림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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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서울 국제 도서전은 한마디로 말하면 '부활'이 될것 같다. 작년에 최악을 찍었고, 어쩌면 없어질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올해는 정말 많은 관람객이 모였다. 도서정가제 전의 도서전은 책떨이시장같은 측면도 없지 않았지만 올해는 정말 책을 위한 책의 잔치같은 느낌이었달까. 설마하고 간 도서전에 깜놀하고 왔다.
그 도서전안에 '서점의 발견'이라는 섹션이 있었는데, 전국의 개성있는 서점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행사였다. 그것도 한 가운데 알짜배기 공간에! 그중 한 서점이 바로 동아서점이었다. 속초에 있는. 그 주인장(의 아들)이 쓴 책이 바로 이책이다.
전부터 속초의 서점 이야기가 간간히 들려왔는데 정작 속초에 가서도 가보지 못한 것이, 왠지 미안한 마음까지 갖고있던 차에 서울에서 보게되어 반가왔다.  거기다 주인장의 책이라니! 도서전에서 산 몇권의 책 중 제일 먼저 손이 가더라. 거기엔 내용이 궁금해서 그런것도 있지만 갖고 다니기 좋은 사이즈와 코팅을 안한 표지의 부드러운 종이 감촉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내용도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일상다반사 같은 글들이 엮여있었다. 서울 생활을 하던 아들에게 갑자기 아버지가 서점을 해 볼 생각이 없냐며 제안을 하고, 결국 아들은 갑작스럽게 서점 경영을 하게 된다. 나도 서점에 대한 로망을 갖고있었고 만약 가게를 하게 된다면 서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책으로 조금이나마 서점 운영에 대한 간접 경험을 할수 있었다.(고 말하면 서점주인장들은 코웃음을 칠 지도;;) 생각과는 달리 서점에서 일한다는것은 꽤나 하드한 육체노동인듯.... 수익도 내면서 운영유지도 해야하는 주인장들의 입장도 잘 나와있었다. 매출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마지막 한권의 책을 주인이 사는데 찾아오는 결정장애에는 왠지 짠한 느낌이...
서점을 찾은 손님에게 한눈에 반한 주인장은 결국 그와 부부가 되기도 하고, 시언어를 찾는 초등학생의 주문에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그건 C language였다는 에피소드도 겪고, 꼰대 손님들을 대응하면서 속이 상하기도 하고... 바닷가 작은 도시의 서점 이야기는 따뜻한 이불같은 느낌이었다.
올해 속초에 가면 꼭 들려서 책한권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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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남자
박성신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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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을 보는걸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그걸 보는동안 뭔가 내 정신을 뺏기는 것 같은 느낌이 좋지 않아서다.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게 되는 상황이 TV를 바보상자라고 부르는 이유일듯. 그래서 책을 읽는것을 더 선호한다. 이야기를 읽고 그 이야기를 머리속에 그려가면서 나만의 동영상을 만드는 셈이다. 자연히 보기만해도 머리속에서 그림이 그려지는 책이 단연코 내가 재미있어하는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책은 오랫만에 읽는 '재미있는 책'이다. 머리속에서 저절로 영화가 돌아가게 만든다. 자연히 앉은자리에서 다 읽어버리도록 만들어버리는 흡인력이 장난아니다. 단언컨대 이 책, 기어코 영화로 만들어질 듯. (그러면 주인공은....?)


분단이라는 특수상황의 현대사에 불행한 가족사, 거기에 뜨거운 러브스토리까지. 우리나라에 특화된 상황이 나오다보니 자연히 몰입도도 높아지고 그럴듯함이 배가된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작가가 이끄는대로 마치 롤러코스트를 타듯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러다보니 결국 밤늦게까지 책을 읽게 되어 버린다. 


줄거리는 현재를 사는 아들의 시점과 과거 아버지의 상황을 교차하며 진행된다. 자살을 기도하며 고시원을 전전하는 아들은 지금의 자기 상황의 많은 부분은 아버지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던 중 아버지가 총에 맞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아버지가 남긴 주소록을 넘기면 많은 보수를 주겠다는 소리에 아버지의 궤적을 따라가던 아들은 그동안 알지못했던 아버지의 실체를 만나게 된다. 


아버지의 상황이 나올때는 특히 과거의 배경을 읽는 재미가 있다. 70년대의 은하수, 버스안내양, 다이알비누, LP판... 따져보면 그리 멀지 않는 과거인데 정말 오랫만에 느껴보는 이 친근함이라니. 어린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작가님 연세가 어찌 되시는지 급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한가지 아쉬운것은 제목인데... <안녕 내사랑>같은 제목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레이먼드 챈들러가 먼저 쓰긴 했지만...

다 읽은 후 표지를 보니 안보인던것이 보인다. 책을 읽기전에는 표지의 배경색이 그냥 단색으로 보였었는데 다 읽고나니 그게 아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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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진흙 창비청소년문학 71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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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재미있는 이벤트를 기획했다. 이름하여 눈가리고 책읽는당!
제목도 저자도 알지 못한다. 오로지 내용만으로 승부!

대개 책을 읽기 전에 이런저런 정보를 접하고 최종적으로 책을 읽을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게 된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라서 책을 선택할수도 있고 책 표지가 마음에 들어 책을 읽게 될 수도 있다.(나에게는 이게 제일 비중있는 선택의 조건...^^;;) 혹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읽게 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자칫하면 ‘낚일’수가 있다는 것이 함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목도 지은이도 모르는 상태로 책을 읽은 경험은 어쩌면 일종의 모험일수 있지 않을까. 이런 묻지마 독서는 그 옛날 국정교과서를 읽어야 했던 이후로 거의 처음인 듯.
무슨 내용인지 어디한번 볼까...라는 생각으로 표지를 펼쳐서 조금만 읽어보려고 했는데 어느새 마지막장을 덮고 있더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너무 자극적이라 아드레날린이 푹푹 나오는 그런 내용은 아니지만 주인공이 13살 소녀로 나름대로의 역경을 겪고 영웅이 되는 과정이 실감나게 표현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친구가 꼭 영웅이 되고자 애썼다는 얘긴 아니다. 그저 결과론적으로 그렇다는 것 뿐) 
하지만 소녀의 고난 극복 스토리와 함께 왕따문제, 문제아 문제(그렇다. 이건 어느나라나 다 있는 공통적인 인류의 숙제같은 존재,,,,), 환경오염, 에너지 개발문제 등등... 그야말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면서 맞닥드리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녹아들어있다. 이 책을 한참 읽고있을 때 뉴스에서는 건국대에서 원인모를 폐렴으로 벌써 50명이상 감염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니 소설속의 상황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현실과 소설의 싱크로율 급상승!) 그저 다른점이 있다면 왠지 여기 나오는 정치인들은 일을 잘 하고 있다는 느낌이... 쿨럭;;;
어쩌면 이 소설은 청소년 소설로 분류될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이 13살 소녀이기 때문에? 피와 폭력이 난무하는 내용이 아니라? 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우리의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또는 추구하는 미덕은 결코 청소년에게만 요구되는 것만은 아닐 듯. 타마야도 느끼듯이 그런 미덕들은 모두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길때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러한 가치들이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을 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관용,청결,용기,공감,품위,겸손,정직,인내,신중,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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