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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 지구를 뒤덮다 -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 2007년 7월
평점 :
『태백산맥』에 나오는 장면이던가? 착하고 성실한 소작농이 어느날 지주의 횡포를 못 견디고 우발적으로 지주를 살해하고 산에 들어가 빨치산이 된다. 한국에서 봉건지주제에서 근대적 토지소유 관계로 이행할 때 일제시대가 끼어 있어서 그 이행은 자연스럽지 못했다. 어디 그런 문제가 토지 문제뿐이었겠는가만은, 어쨌든 해방 이후 북한에서는 토지개혁이 이루어진 반면 남한에서는 일제 치하의 토지소유 관계가 존속했을 뿐 아니라 더욱 악화된 면이 있었다. 땅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인간은 그토록 땅에 집착해 왔는가?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감상에서부터 부대자루 속의 감자 비유를 통해 농민의 탈조직화(땅이라는 생산수단에서 자유롭지 못하므로)를 지적한 맑스의 언급에 이르기까지 토지(를 소유한다는 것)는 분명 인간에게 무언가 원초적이고도 실질적인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기는 하다. 경작용 토지도 그러할진대 주거용 토지는 오죽하겠는가? 발 딛고 서 있을 땅조차 없다면 인간의 존재 자체도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빈곤은 여전히 세계적으로 중요한 화두이다. 빈곤을 설명하는 시각과 접근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인구학적 접근, 경제학적 접근, 정치경제학적 접근, 심리학적 접근 등등. 이 책에서는 그 중에서도 도시화와 관련지어 빈곤 문제를 다룬다. 아무래도 ‘빈곤’이라고 하면 남의 얘기처럼 들리다가도 도시의 빈곤화(슬럼화)라고 하면 사정은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더욱이 슬럼화의 양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닫게 되면 놀라움을 넘어 경악할 지경에 이른다. 원제 Planet of Slums를 『슬럼, 지구를 뒤덮다』로 적절하게 의역한 이 책의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지구는 슬럼으로 뒤덮여가고 있다. 저자는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도시들을 계속해서 인용한다. 시기상으로는 대략 1950년대 정도부터 통시적 비교의 소재로 등장한다.
사실 도시화는 근대의 탄생과 궤를 같이 한다. 중세 말, 근대 초에 도시는 신흥 부르주아들의 근거지였다. 그들은 봉건영지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에 거주하면서 오늘날 시민사회의 모태가 되는 살롱에 모여 시국을 논하며 혁명을 꿈꾸었다. 이들은 결국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에너지를 흡수하여 봉건귀족을 타도하고 근대 자본주의 시대를 여는 데 성공한다. (학자에 따라 봉건귀족이 부르주아로 변신한 경우가 많다는 주장도 있지만). 당시 도시는 혁신, 창조적 에너지, 희망의 요새였다. 그러나 이 책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오늘날의 도시는 이와는 반대로 (노동자와 빈민이 혁명의 주요세력이라는 주장은 잠시 접어두고) 가난, 무질서, 절망의 상징이 되어 가고 있다. 특히 제3세계 도시에서 그러하다.
특히 제3세계에서 농촌의 도시화는 정겨운 샛길과 유서 깊은 건물들이 없어지고 곧게 뻗은 도로와 차가운 잿빛 건물들이 들어서는 정도의 감상 따위가 아니다. 그곳에서 도시화는 직업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고 가족관계가 바뀌는 등 개인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것을 의미하며 나아가 공동체의 생태계가 바뀌고 국가의 정치지형까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대다수 제3세계 도시의 성장은 기형적이고 사뭇 처연하기까지 하다.
대다수 개발도상국의 경우, 도시의 성장은 강력한 공산품 수출 동력이나 외국 자본의 대규모 유입으로 뒷받침 되지 못한다. 성장 없는 도시화는 테크놀로지 선진화의 필연적 결과가 아니라, 전지구적 정치위기—1970년대 후반 전세계적 채무위기와 뒤이은 1980년대 IMF 주도의 제3세계 경제 구조조정—의 유산이다. 실질임금 하락, 물가 급등, 도시 실업 급증에도 불구하고 제3세계의 도시 인구는 꾸준히 증가했다. IMF와 세계은행이 강요한 농업 자유화와 금융감독 정책 때문이었다. 경제 정체와 기간시설, 교육 설비, 공공의료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농촌 인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컨대 도시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은 약해졌지만 시골이 사람들을 밀어내는 힘은 더욱 커졌다. (pp. 27-31)
따라서 이러한 도시화는 슬럼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한마디로 ‘슬럼이 대세다.’ UN 연구에 따르면 2005년 슬럼 인구는 10억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선진국에서는 6%, 저개발국가에서는 78.2%의 인구가 슬럼에 살고 있다. (p. 37-39)
20세기 후반 아프리카, 아시아를 비롯한 제3세계에서 도시화와 슬럼화는 탈식민화, 내전, 영토 분쟁, 종교 분쟁, 강대국의 군사전략, 토지개발, 산업화 등 복잡하고 다양한 요인 때문에 가히 폭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자신의 본래 거처를 떠난 자들은 도시 주변에 몰려 들어 토지를 무상으로 점유(스쿼팅; squatting)하면서 슬럼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슬럼에 모여 사는 스쿼터(squatter)들은 상시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상하수도 같은 기본적인 공공설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슬럼 지역은 토질이 나쁘다. 그곳은 독성폐기물 매립지이거나 만성적 지반붕괴, 산사태, 범람 지역이다. 그리고 화재와 전염병에도 취약하다. 때문에 각종 재해와 전염병으로 수많은 스쿼터들이 목숨을 잃곤 한다.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의 슬럼 지역은 폭력조직과 테러조직이 절망적인 가난에서 헤어날 길이 없는 피끓는 청소년들을 포섭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이곳에서는 아이들도 무기로 장난감을 삼으며, 폭력으로부터 방어하려는 또 다른 폭력이 연일 크고 작은 유혈사태를 낳는다.
도시화가 슬럼화로 진행된 데에는 제3세계 정부의 무책임이 한몫했다. 게다가 슬럼화가 진행되면서 농촌지주들은 재빠르게 슬럼지주로 변신하여 가난한 자에게서 이윤을 뽑아냈다. 예컨대 인도에서는 도시 공간의 약 3/4이 도시 가구 6%의 소유이다. 돈이 생산이 아닌 땅 투기에 몰리면서 슬럼화는 가속화되었다. 1990년대 무렵이면 제3세계에서 스쿼팅은 종식되고 기업형 사조직들이 변두리 도시화를 장악하기에 이른다. 이에 슬럼에서는 세입자 비율이 증가하고 인구밀도가 폭등했다.
곧이어 국가가 개입한다. “국가는 ‘진보’, ‘미화’, 나아가 ‘사회정의’라는 미명하에 개입을 시도하며, 이를 통해 땅 주인, 외국인 투자자, 엘리트 주택소유자, 중간계급 통근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경계를 재편한다.” (p. 132). 한국에서 88올림픽 때 상계동 주민들이 또 다른 올림픽을 치러야 했듯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국제행사가 있을 때마다 국가의 개입이 있었다. 토지 무상 점유자(스쿼터; squatter)와 세입자는 흔히 아무 보상 없이 쫓겨났다. 강제퇴거 과정은 한국에서도 그러했지만 제3세계, 특히 강력한 군사독재가 행해지는 국가들에서는 무척이나 폭력적이었다. 강제퇴거는 마르크스주의 정당이 정권을 잡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계 경제도 슬럼화에 영향을 끼친다. 1980년대 IMF와 미국의 경제 개입 및 조작 때문에 제3세계에서 빈민이 더욱 양산되었다. 1990년대 들어서도 지난 10년간의 구조조정은 오히려 제3세계의 경제를 악화시켰다. 세계화로 성공을 거둔 몇몇 제3세계 국가들에서는 양극화가 더욱 심해졌을 뿐이다.
객관적이고 절제된 언어로 이어지던 글은 7장부터 비판적으로 바뀐다. 1~6장까지는 도시사회학 연구서 같은 느낌이었다면, 7~8장(특히 8장)은 정치경제학 분석 같다. 저자는 7장에서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의 변동이 제3세계에서 슬럼화를 가속화시켰다고 비판하고 결론 격인 8장에서는 신자유주의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간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여러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도시화와 슬럼화에서부터 시작해서 신자유주의 비판으로 결론짓는 이 책의 분석도 꽤나 흥미롭다.
이 책에는 이름도 따라 부르기 어려운 수많은 제3세계 도시 이름들과 현지용어들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책은 술술 읽힌다. 뭔가 어렵게 증명하려 하지 않으며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을 현학적인 수사도 없다. 저자가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기 때문에 독자들도 감정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독자들은 그저 슬럼의 심각성에 대해 놀랄 준비를 하고서 책을 술술 읽어내려가면 된다. 그러나 몇 가지 사례를 분석한 심도 깊은 case study는 아니기 때문에 다소 산만한 느낌은 든다. 수많은 사례들(도시들)을 종으로 횡으로 넘나드는 배치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덧붙임] 1. 번역은 무난한 편이다. 어색한 직역어투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한가지만 지적하자면… 역자는 ‘the South’를 ‘남반구’라고 번역했는데, ‘the South’에는 ‘남반구’라는 뜻 외에 ‘개발도상국’이라는 뜻도 있다. 우리가 흔히 ‘동서갈등’이라고 할 때에는 이념갈등을, ‘남북갈등’이라고 할 때에는 빈부갈등을 의미하듯이, ‘the South’는 가난한 지역을 가리킨다. 이 책에서 홍콩, 싱가포르, 중국을 the south라고 부른 걸로 봐서 ‘남반구’보다는 ‘개발도상국’이라고 번역해야 맞는 것 같다.
2. 번역서 부제는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라고 되어 있다. 이 부제는 원서에는 없는 것이다. 물론 시기적으로는 197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 이후의 시기에 분석이 집중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은 딱히 신자유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IMF가 제3세계에 강제한 구조조정이 슬럼화에 끼친 영향을 다룬 7장을 빼면 신자유주의의 그림자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다.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붙인 부제인 듯하다. 그렇지만 비단 이런 부제가 없더라도 상징성이 뛰어난 책 표지그림이라든가 압축적인 한글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첫눈에 호기심을 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