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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필리아 - 우리 유전자에는 생명 사랑의 본능이 새겨져 있다 ㅣ 자연과 인간 15
에드워드 윌슨 지음, 안소연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1월
평점 :
에드워드 윌슨은 이 책을 통해 “인간이 생명을 탐구하고 생명에 친밀감을 느끼는 것이 정신 성장에 필수적인, 심오하고 복잡한 과정임을 증명”한다. 이를 위해 그가 고안한 개념은 바이오필리아(biophilia: bio- 즉 ‘생명’과 –philia 즉 ‘좋아함’의 합성어)이다. 즉 인간에게는 ‘생명 혹은 생명과 유사한 과정에 가치를 두는 타고난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생명 사랑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기존의 과학적인 의미에서 볼 때 이 주장에는 충분한 증거가 없다. 우리가 주장의 진위를 확실하게 밝힐 수 있을 만큼, 가설, 연역, 실험을 이용하는 과학적 방식으로 이 주제를 충분히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생명 사랑’의 경향은 일상 생활에서는 아주 뚜렷하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일 만하다. (p. 132).
인간이 자연과 경험하는 (때로 무의미해 보이는) 모든 접촉들이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뇌는 존재하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접촉뿐만 아니라 낭비처럼 보이는 수많은 접촉들로부터 마음을 엮어 가는 경향이 있다. …연구실 우리 속에서 잘 자란 것처럼 보이는 원숭이들과 콩만 먹고도 살이 찌는 소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동식물이 없는 환경에서도 겉보기에 정상적인 모습으로 자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자란 사람에게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들이 결여되어 있을 것이다. …인간은 다른 생물과 함게 살아야만 하는 존재이다. (pp. 178-179)
사회생물학자로서 항상 땅바닥을 들여다보거나 썩은 나무를 헤치며 곤충 같은 작은 것들, 작은 세계에 집중해온 그가 오히려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인 큰 사상, 형이상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마이크로 코스모스는 사실 매크로 코스모스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이런 답사를 계속 하다 보면 인간의 마음과 정신에 가가운 것들을 더 다루게 되리라는 결론에도 도달했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사실이라면, 자연주의자의 통찰력은 모두가 공유하는 생명 사랑 본능에서 갈라져 나온 결과일 뿐이며, 이 통찰력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자세하게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다른 생물보다 훨씬 우위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을 잘 안다는 사실이 생명의 참된 의미를 고양하기 때문에 인간은 고귀하다. (p. 45)
생명 사랑이 더 화급한 문제가 되는 실제적인 이유도 있다. 바로 환경문제이다. 인간이 본격적으로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기 시작할 때에는 윤리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곧이어 인간은 윤리보다는 자연과 관련된 정보에 관심을 더 쓰게 되었는데, 이제는 다시 윤리 문제로 넘어가게 된다. 에드워드 윌슨은 환경을 보존하기 위한 운동들이 이 세 번째 단계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환경 보존 운동의 미래는 이러한 윤리적 논의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달려 있다. 생물학이 발달하고, 생물학의 혼성 분야이면서 최근의 생물학 발전으로 가능해진 여러 가지 기술적 진보를 다루는 생명 윤리학(bioethics)이 발달해야 환경 보존 운동도 이 분야들과 함께 발달한다. (pp. 181-182)
자연 세계를 향해 인간 세계가 확장되는 것은 인간 정신의 기본이다.
그러나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물 세계의 성실한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확장과 관리는 처음에는 서로 모순되는 목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보존 윤리의 깊이는 확장과 관리 중 하나가 자연에 접근하는 방법이 다른 하나를 재형성하고 강화하는 데에 쓰이는 정도에 따라 가늠될 것이다. 이 역설은, 내가 인간 정신의 보호라는 뜻에서 쓴 궁극적인 생존에 더 적합한 형태로 역설의 전제를 바꿈으로써 해소될 수 있다. (p. 210)
이러한 입장에는 학문간 통합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후에 『통섭』 (1998년 출판)으로 학문간 통합을 주장하게 되는 저자는 1984년에 출판된 이 책에서도 그와 관련된 주장을 이미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다.
(과학과 인문학 간의) 이러한 근본적인 구분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거나 최소한 어느 정도 기분 좋은 방식으로 과학과 인문학이 조화를 이루기까지는 인간과 생물 세계 사이의 관계에는 여전히 문제가 남아 있을 것이다. (p. 83)
생물학 연구로 새로운 종합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때마다 인문학의 범위와 가능성은 확장될 것이고, 과학 역시 인문학의 방향이 재설정될 때마다 인간 생물학에 새로운 차원을 더할 것이다. (p. 91)
과학이 예술가 마음의 내향적인 여정을 보고 예술과 문화의 연구 대상을 생물학적인 형식으로 만든다면, 그리고 예술가와 비평가가 과학의 방식으로 밝힌 마음과 자연 세계의 작용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면, 서로 다른 학문 분야가 격론하는 주기는 끝날 것이다. 최소한 원칙적으로 인문학에서는 어떤 것도 부정될 수 없으며 과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p. 127)
이 책은 ‘생명 사랑’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저자의 주장은 논쟁적이지는 않다. 가벼운 에세이 같다. 박노해가 ‘사람만이 희망’이라며 다소 거창한 주제로 옮겨갔을 때 굳이 논쟁을 원한 것은 아니었듯이, 저자가 인간의 보편적 속성으로서 ‘생명 사랑’을 논할 때 그가 원한 것 또한 과학적 논증은 아니다. 비록 그가 자연과학자이긴 하지만 말이다. 책의 각 장은 독자들에게 바이오필리아를 전도하기 위해 일관되게 나아가는 글들이 아니다. 바이오필리아는 그저 책 내용 전체를 관통하는 저자의 근본 입장일 뿐이다. 인간의 자연파괴를 비판하는 부분에서처럼 비판적 주장을 할 때조차 저자의 어투는 담담하고 차분하다. 따라서 바이오필리아가 무엇인지 논리적이고 명확한 해답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각 장에 담긴 에드워드 윌슨의 생명 사랑을 느껴보면 좋을 듯하다. 아울러 그의 실제적/지적 ‘답사기’를 통해서 사회생물학의 세계를 엿보는 재미를 만끽하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