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살인 사건 매그레 시리즈 7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8권까지 나온 매그레 중 가장 별로였다; 그래서 9권이 나왔는데 망설이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이 바닥의 달콤함 플라비아 들루스 미스터리 1
앨런 브래들리 지음, 성문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상당히 매력적인 탐정의 탄생! 최근 읽은 추리 소설 중 단연 마음에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리에서의 점심
엘리자베스 바드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 유럽 여행에서 파리는 마지막 장소였고 그 곳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친구 덕에 나는 반쯤은 여행자이지만 반쯤은 현지인같은 기분으로 일주일을 보낼 수 있었다. 사실 한 도시에 일주일을 머무른다면 웬만한 곳은 다 둘러볼 수 있는 기간이지만 여기 저기를 바쁘게 다니는 대신 그 곳에서 생활하는 기분으로 보냈었고 그것이 나에게 더 오래 여운을 남긴 듯 하다. 아직도 파리하면 내가 잠시 머물렀던 기숙사의 주방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던 샹송을 들으면서 저녁을 해 먹던 기억(준비하고 먹고 치우는데 자그만치 3시간도 더 걸린!)과 하릴없이 골목길과 주변 공원을 산책하던 게 생각이 난다. 그 후로 파리는 나에게 조금은 더 친밀하게 느껴지는 곳이 됐고 기회되면 두말없이 다시 가고픈 곳이 됐다. 표지마저 너무나 프렌치스러운 <파리에서의 점심>은 그런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지 사뭇 기대가 되었다.

 

<파리에서의 점심>은 뉴욕커인 엘리자베스가 파리지엥을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그 곳에 정착하며 새로운 문화와 충돌하기도 하면서 점차 그 곳에서의 삶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그러면서 상황과 기분에 맞는 다양하고 풍요로운 레시피까지 곁들인 그런 에세이이다. 사실 요리엔 별 관심이 없어서(시간 오래 걸리는 건 질색이라)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에게 레시피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진 않았지만, 요리에 대한 로망도 갖고 있는지라 나중을 위해(나만의 집과 오븐이 생긴다면 시도해 보고 싶다) 왠지 알아두면 유용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역시 요리 문외한인데다가 문화적 차이로 인해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재료들이 난무해서(본격 요리책이 아니라 아쉽게도 사진도 없다) 완성된 모습을 상상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각 코스별로 펼쳐지는 이야기의 향연에 등장하는 음식들(실제로 음식은 이 에세이 전반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를 담당하고 있다)을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해! 라는 사람들을 위한 친절한 부록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 싶다.

 

어쨌거나 나의 주요 관심사는 문화가 다른 두 남녀의 현실적인 러브 스토리(연애 소설과 달리 이 에세이엔 특유의 오글거림이 적어서 좋았다)와 사랑 하나만을 믿고 자신이 평생 살아온 근거지를 떠나 사고방식, 생활 습관 등이 확연하게 다른 낯선 곳에서 살기로 마음 먹은 엘리자베스의 용기있는 정착기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절대로 실행에 옮길 수도 없지만(난 한번도 이민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문화의 장벽에 앞서 언어의 장벽이 날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말이 아닌 영어나 불어로 수다를 떤다는 건 상상도 되지 않는다. 엘리자베스가 종종 자국인을 만나 영어로 쉴 새없이 떠들면서 느꼈던 기쁨이 고스란히 전해진 걸 보면 여자들에게 수다를 뺏는다는 건 생각보다 큰 일이다.) 남의 낭만적이고 약간은 무모해 보이는 경험담(나에겐 거의 무용담처럼 들리는)을 듣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그녀는 솔직하고 과장없이 자신이 겪었던 소소한 문화적 충격들과 미국와 프랑스라는 두 섬 사이에 한 쪽 발을 딛고 있는 이의 심정으로 균형을 맞추려고 애쓰는 여정을 들려주었고, 그녀가 능숙하고 자연스럽게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게 되었을 땐(언뜻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녀가 설명한 대로라면 프랑스에서 외국인이 능숙하게 고기를 사는 건 프랑스 사람 다 됐구나!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 마치 내 일처럼 기뻤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그녀의 남편인 그웬달과 처음 점심을 먹은지로부터 8년, 그의 아파트로 이사한 지로부터 6년이 지난 후엔 자신이 지금껏 믿어왔던 것과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기보단 미국의 뭐든 할 수 있다는 긍정적 사고와 프랑스의 물질적 성공보다는 행복을 위한 삶, 각각의 장점만을 취합할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 밑바탕엔 언제나 사랑이 있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돈은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닌 것이다.

 

난 그녀가 8년 동안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갖고(어느 학교를 나오고 월 수입이 얼마가 되고 어떤 인맥을 가지고 있는지가 나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미국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 탓인지 밖으로 보여지는 성공과 출세에 대한 욕망이 강한 편이라 엘리자베스가 겪고 깨달은 것들이 더 깊게 와닿은 게 아닌가 싶고, 그런 면이 <파리에서의 점심>을 단순히 유쾌하고 러블리한 에세이로만 치부할 수 없게 만든다. 사회적 성공만을 위해 쉼없이 달리도록 길들여진 이들에게 특히 권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갈레 씨, 홀로 죽다 매그레 시리즈 2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리즈 추리소설 중 좋아하는 건 홈즈보다 뤼팽인 내가  

매그레 시리즈를 읽게 된 건 마케팅의 힘이 큰 것 같다. 

이벤트에 약하기도 하고 행여나 별로면 알라딘에 50%에 되팔 수 있으니깐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나온 4권까지 다 구매하고 2권은 예약 중에 있는데 

(아마 책갈피의 유혹이 큰 듯 하다;) 

홈즈나 뤼팽이나 첫번째 책이 가장 재밌는 건 아니듯이 매그레도 마찬가지이다.  

수상한 라트비아인이 가장 재밌진 않을 것이다. 홈즈와 뤼팽은 전집으로 산 거라 제목 보고 맘에  

드는 걸로 골라 읽었었기 때문에 이런 고민이 없었는데 매그레를 처음 접하는 사람의 경우엔 좀  

 불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엄청난 반전을 기대하면 실망할 듯 하고.  

매그레의 인간적인 면모가 점차 드러나지 않을까 싶은데 갈레씨, 홀로 죽다에서 조금 엿볼 수 있었 

다. 추리 과정도 좋아하지만 인간 심리에 더 관심이 많은지라 매그레가 그런 쪽이길 더 바란다.  

 근데 내용과 별개로 책 표지 재질이나 크기, 무게가 내 취향이라 소장하고 싶은 맘이 든다.  

뭔가 꽂아두면 근사하겠다? 이런 마음 

 5,6권은 영화화된 작품도 있고 해서 

좀 더 매그레 시리즈의 진가를 보여주는 책일까 싶어서 기대가 된다.  

이 시리즈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라면 굳이 첫번째부터 읽지 말고 5,6권 중에서 고르면 되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의 역사 - 이성애와 동성애, 그 대결의 기록 현대의 지성 135
루이-조르주 탱 지음, 이규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부제가 이성애와 동성애 그 대결의 기록으로 되어 있다. 사실 내 관심 분야는 아니다. 게다가 딱 봐도 학술 논문처럼 딱딱하게 서술되어 있음이 느껴졌다.

그래도 일단 읽어 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읽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취향이 아니다 싶으면 덮어버리면 되니깐.

 

머리말을 보면 저자는 특이하게 이성애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하였다고 한다.

너무나 당연하고 보편적이어서 의문조차 들지 않는 이성애에 무슨 의문이 든단 말인가? 생물학적 목적인 번식을 위한 본능에 의한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속해서 읽어 나갔다. 하지만 저자는 번식은 이성애의 목적이 될 수는 있어도 원인이 될 수는 없다고 한다. 대부분의 포유류는 생식이 끝나면 재빨리 헤어지며 이성애 커플이 자식의 보육에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이성애를 토대로 사회를 건설한 동물은 정확히 인간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음식 섭취의 관습과 식도락 문화가 갖는 관계를 들어 이성애 관습과 이성애 문화간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음식 섭취와 이성애 관습은 보편적이지만 식도락 문화와 이성애 문화는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과거를 살펴 보면, 수많은 문명과 과거 서양사회는 이성애 문화를 찬양하기 보다는 영웅적 인물에 대한 상찬, 계절에 대한 사색,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인 전통의 연구 등에 더 열중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성애 문화가 유일하고 보편적인 본보기가 될 수 없으며 언제부터, 어떻게, 왜 사회에서 이성애 문화를 기리기 되었는지를 연구해 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꽤나 흥미를 유발하는 머리말이었다. 당연하게 생각해 왔는데 그렇지 않다고? (대부분 관심을 끌기에 괜찮은 접근이다.) 어디 한번 논의를 더 들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하면 저자로서는 반쯤은 성공한 게 아닌가 싶다. 나처럼 '이성애 문화이건 동성애 문화이건 그게 뭐 어떻다고.' 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관심이 동하기 시작했으니깐.

 

<사랑의 역사>는 크게 3부로 나뉘어 있다. 기사들, 성직자들, 의사들의 이성애 문화에 대한 저항을 시대별로 나눠서 그 변화 양상을 고찰해 보고 있다.

첫번째로 나오는 기사들의 저항을 먼저 살펴 보면, 중세 시대 기사도의 전통은 사나이들 간의 사랑에 대한 찬미였다고 한다. 흔히 알고 있는 부인(숙녀)에 대한 예의바른 매너와 친절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봉건적 질서가 지배하던 시기이므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신분이나 지위가 떨어지는 존재로 취급 받았기 때문에 그 지체가 떨어지는 존재와의 사랑을 하고 싶어한 이들은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쟁이 빈번하던 시기였으므로 집단 생활을 하며 생사를 함께 하는 관계이므로 확고한 유대 관계가 형성되었다. 우정이라고 부르기엔 우정은 강도가 약하므로 사랑이라고 하여야 하지만 성적인 함의만을 연상시키는 것을 배제하기 위해서 최근에는 '동성사회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프랑스 문학 작품의 예를 많이 들고 있는데, 나에게 친숙한 작품들이 별로 없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근거로 삼고자 하는 작품의 내용을 자세히 인용하고 있으므로 이해하는데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나중에 역자도 밝히고 있지만 조금 더 다양한 문화권의 경우를 예로 들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현상이 프랑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하지만 논의를 전개해 나가고 있는 저자가 맺는말에서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지각하고 있으므로 이성애 문화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가진 첫번째 저작로서의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동성사회성은 당시 사회적 특성과 관련이 깊은데, 남성만의 사회였고 세의 우정은 사적인 동시에 공적인 관계로 명령의 대상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봉건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서도 동성사회성은 권장되었다. 군주 입장에서는 자신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많은 기사들을 성 안에 데리고 있어야 하지만 이는 무질서와 소동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바, 동성사회성이 예찬되면 기사들간의 유대를 돈독히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남성간의 지극한 애정은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12세기부터 궁정사회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이성애 문화가 출현하기 시작했고, 남성적 우정의 봉건 문화는 이성애적 사랑의 궁정 문화로 변화 과정에서 갈등을 겪게 된다. 기사에게 두 가지 요구는 상호 모순적이어서 각각의 규범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저자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들고 있는데, 베룰의 판본에서 토마의 판본으로의 진전은 기사도 윤리에서 궁정 문화로의 전환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보고 있다. 베룰의 판본에서는 트리스탄이 자신의 삼촌인 마르크가 결혼하기로 되어 있는 이졸데를 사랑하게 되는 원인이 미약을 마셨기 떄문으로 보고 트리스탄과 마르크의 관계가 부각되는 반면, 토마의 판본에서는 미약으로 인한 것이 아닌 자연발생적으로 서로 첫눈에 반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기사도 문화에서 이성애 문화으로 바뀌었지만 근본적인 기능은 같았다. 둘 다 봉건군주의 권위를 뒷받침하는데 일조하는 역할을 부여 받았고 그렇기에 대조적인 패러다임이 급속도로 잇따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성애 문화가 보편적으로 확산될수록 남색자는 자연을 거스른다는 관념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 시대에도 동성사회 전통과 이성애 문화간의 대립관계는 유지된다. 특히, 인문주의 비극의 영역에서 이성애 문화에 대한 반항이 일어나는데, 비극은 연애 서사시나 사랑을 노래하는 서정시는 적합한 주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영웅적인 주제를 무대화한다. 궁정풍 문학은 빈번하게 패러디되고 돈키호테에서 그 예를 볼 수가 있다. 안토니우스와 같은 태도는 국가에 해가 된다는 식으로 이성애 문화적 요소는 비판 받았다. 하지만 시에서 먼저 페트라르카풍의 시가 유행하였고 16세기 말과 17세기 초부터는 비극과 희비극에서조차 이성애 문화가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시작한 결과 17세기는 이성애 문화의 압승이었다.

 

두번째 성직자들이 이성애 문화에 저항한 것은 젠더가 아닌 섹스의 문제였다. 이성애 문화의 찬양은 내세보다 현세의 쾌락에 대한 욕망을 부추길 우려가 있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세속적인 사랑보다 고귀한 것으로 본 그리스도교 질서에 부합하지 않았다. 나는 모태신앙으로 카톨릭 신자인지라 혼배 성사의 중요성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으며, 결혼은 신성한 결합에 대한 하느님과 한 약속이므로 이혼을 용납하지 않는 교리를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중세 시대에는 결혼보다 독신을 더 바람직한 것으로 보고 이성애 문화를 부정적인 것으로 보았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카톨릭교회는 결혼을 성사로 간주한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이성애 문화와의 현실적 타협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당시 성직자들의 윤리에 따르면 사랑의 시는 결혼 전 구애 활동에 그쳐야 했지만 궁정풍의 사랑을 노래한 경우는 대부분 부부간의 관계가 아닌(부부관계는 의무로 맺어진 것이지 사랑으로 맺어진 것으로 보지 않았음)불륜 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결혼을 성사로 인정한 후 남녀간의 사랑을 관리하고자 성모마리아에 대한 사랑을 찬양하는 문화를 장려하였다. 카톨릭 교회는 타협을 위해 시인들에게 사랑의 대중가요의 선율을 바탕으로 성모마리에게 드리는 기도를 붙이는 방식인 개작을 제안하였다. 이런 식으로 이성애 문화를 그리스도교에 편입시켰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부각된 문제는 사제의 결혼 문제였다. 위그노(프로테스탄트)의 입장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남녀의 사랑 사이에 전혀 모순이 없었고 실용주의적 사상이 반영된 것이었으며 카톨릭에서는 사제에 결혼을 허용하는 문제는 성 바울로 이래 부부 생활에 대한 독신 생활의 우위를 점해 온 윤리와 전통을 포기하는 것이 되며, 성직자와 평신도간 위계가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거부되어야 했다. 사제의 권위는 성적 금욕 규율 위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그 권위를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일을 만들어서는 안되었다.

17세기가 되면서 카톨릭은 계속해서 소설이나 연극의 선정적인 요소(이성애 문화)를 제거하고자 하였으나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애정극 대신 종교극을 장려하였지만 대중이 종교극에 환호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어린이들을 훈육하는 학교에서만 상영되기에 이른다.

 

세번째 의사들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사랑을 일종의 병리적 현상(상사병)으로 보았으며 건강에 해롭다고 생각하였다. 고결한 천상의 사랑은 절도 있는 뇌 속에 존재하고 육체적인 사랑은 간 속에 존재한다는 장 오베리의 견해는 지금 생각하기에는 다소 특이한 논리로 보인다. 그러면서 사랑의 원인을 사람의 감각에서 찾았는데, 시각, 청각, 후각, 촉각뿐 아니라 성별의 차이, 계절의 영향, 사람의 기질 등에 따라 양상이 달라진다고 보았다. 일견 타당해 보이기도 하지만 재밌는 해석이었다. 상사병이 생기면 맥박이 느려지고 한숨을 많이 쉬게 되고 불면증을 호소하게 되기 때문에 건강에 해롭고, 여자의 경우 우울증이나 히스테리의 원인이 되므로 이성애 문화는 권장되기보다는 억눌러야 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의사들 나름대로는 의학적인 논거를 대고 있는 듯 하지만 자의적인 부분이 많다.

하지만 17세기가 되면 사랑은 오히려 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는 의사가 많아지기 시작한다. 예를 들고 있는 것이 몰리에르의 희곡인데 상사병을 치유하는 것은 사랑하는 두 남녀의 행복한 결합임을 보여준다고 한다.

20세기의 의사들은 상사병이란 용어 대신 좀 더 의학적인 용어로 보이는 연애 망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미친 사랑을 지칭하기 위한 용어로 '이성애'라는 용어를 찾아냈다. 이 시대에는 이성애가 치료해야 되는 정신질환으로 본 것이다. 1901년의 돌랜드의 의학 사전을 보면, 이성애는 '이성에 대한 비정상적이거나 도착적인 성욕'으로 정의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이성애에 대한 시선이 지금의 동성애에 대한 시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비정상적인 것으로 취급되던 이성애가 오늘날 자연스러운 사회 규범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이성애 문화가 지배적인 문화로 자리잡고 대중들도 이성애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음에 기인한다. 전문가인 의사들도 정상인, 이성애자, 동성애자의 패러다임을 버리고 정상적인 이성애자와 정상적이지 않은 동성애자긔 패러다임으로 급선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의사들의 이성애 옹호는 당시 진전되고 있던 여권주의를 억누르기도 하였는데, 의사가 된 여자는 직업상의 경력을 위해 부부생활을 희생(여자가 인체 구조를 빤히 아는데 사랑의 감정에 빠져들기 어렵다고 주장했음)하기 때문에 여자에게 직장생활은 행복한 부부부생활을 위태롭게 한다는 논리였다. 실소를 금치 않을 수 없었다.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다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남성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된 수단이 경멸적이거나 전제적인 거에 비해 온화하고 매력적인 외양을 가졌기 때문에 꽤나 효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동성애를 병리로 보고 전기충격, 혐오감 요법, 몸 속 성호르몬 비율을 원래 균형 상태로 돌려주는 방법 등 여러가지 인권유린적인 의료 요법들이 시술되었는데 환자로 취급된 동성애자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지만 의사들 사이에서는 널리 퍼졌다고 한다.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990년에 와서야 비로소 동성애는 질환이 아님이 인정되었으니 그동안 숱한 동성애자들은 비정상인으로 낙인 찍혀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남들이 자신을 비정상으로 인식한다는 것보다 그러한 인식으로 인해 본인 스스로가 비정상으로 인식한 것이 더 고통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이어서 나타난 것은 이성애 교육이었다. 선천적이 아니라면 교육에 의해 동성애가 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억제해야 했기 때문이다. 수음을 방지하기 위한 기숙학교가 동성애를 조장할 수 있어 남녀공학이 장려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젠더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내가 학교 다녔을 때 기준으로 하면, 여자에게는 가사 시간이, 남자에게는 기술 시간이 주어지게 된 것이다. (요즘에는 둘 다 배운다고 들은 것 같지만) 그리고 학생들이 동성애 성향을 갖지 않도록 은폐, 훼손, 변조를 통해 텍스트에 직접 적용하여 저자를 강제로 이성애로 편입시키기도 하였다. 여기서 언급되는 사람이 셰익스피어이다. 셰익스피어처럼 위대한 작가가 동성애자로 인정되는 일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소네트 모음에 나오는 대상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어 버렸다.

20세기 초부터 이성애 문화에 대한 새로운 비판이 가해지기 시작했는데, 동성애자들과 여권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성애주의는 동성애자뿐 아니라 억지로 포함되는 이성애자에게도 값비싼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한다. 저자가 예로 들고 있는 "17세인데 여전히 여자친구가 없는 젊은 이성애 남자, 미혼으로 25세가 된 젊은 여자, 이혼녀나 과부 등 사회가 정해 놓은 이성애 규범과의 괴리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에 깊은 공감을 하였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하면 언급된 나이는 조금 수정되어야 할 것 같지만) 아무래도 내 나이가 사회가 보는 결혼 적령기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은 개인의 선택일 뿐인데 결혼을 하지 않거나 또는 이혼한 사람을 하자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이 언제쯤 바뀔런지...

 

마지막으로 저자의 맺음말을 보면 이 책의 의의(이성애 문화 역사에 대한 프랑스 최초의 책, 당연시 되어왔던 이성애에 관한 검토의 장을 연 것)와 미흡한 점(다른 민족사와 비교학적 연구, 문학 외 다른 분야에 대한 연구 등)을 언급하고 본문의 내용을 짤막하게 요약하고 있으며 향후 과제(이성애 현실에 대한 사유의 시급성, 이성애자뿐 아니라 동성애자들도 관심을 가져야 함)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저자가 자신이 하는 이성애 문화에 대한 연구가 시대착오적(anachronique)이지 않냐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 "정의상 역사는 시간(chronos)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기(ana)를 겨냥하고 필연적으로 과거에 하나의 시각을 던지고 특히 당대인들이라면 스스로 제기할 수 없었을 문제를 제기한다. 중략 시대착오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착오의 함의를 의식하는 것이다."라고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역자의 해설이 저자의 논의를 보충해 주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돈키호테>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햄릿>대한 예를 들고, 작품을 동성사회 문화와 이성애 문화 사이의 알력과 대립이라는 측면에서도 해석할 수 있음이 신선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꽤나 수긍이 가는 견해이다. 또한 역자는 프랑스보다 훨씬 더 심각한, 극단적인 이성애 문화 현실을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동성간의 결혼을 인정하는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는데, 결혼의 본질이 사랑하는 사람간의 결합이라면 남남, 여여, 남녀인지 여부는 상관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앞으로는 이러한 사랑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통해 당연시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사유하고 비판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비단 이성애 문화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당연하다고 인식되는 것이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으며, 미래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겠다. 그리고 관심 없는 분야도 어떻게 글을 썼느냐에 따라 충분히 재미 있으면서 새로운 사실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의 역사는 꽤나 재밌는 책이다. 잘 모르는 프랑스 시인들의 이름과 작품들이 나온다는 점만 제외하면. 지나치게 난해하지도 않았고, 역자의 해설이 필요한 부분에 적절하게 잘 이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저자 자체가 꽤나 친절한 성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