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어거스틴의 참회록 (완역본) - 개역개정성경인용
성 어거스틴 지음, 송용자 옮김 / 씨뿌리는사람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소설 '초록드레스'의 프롤로그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저 세상으로 가서 나와 이심전심으로 나누는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내가 기독교를 알게 되면서부터 줄곧 이심전심의 영적(本名) 동화자(同化者)로서 함께해 왔는데 그때마다 그는 나로 전화(轉化)되어 지난날에 대한 반성의 염을 토로하는 거였다. 그가 나로 환생한 게 아니라 직선적으로 영통하여 그의 영혼이 이 시대의 내 영혼으로 지속되는 듯했다. 내가 나의 이단적 발언으로 인해 기독교친구를 잃고 상심하고 있을 때 그가 말했다.

내가 기독교를 변호하기위해 비정형화된 성서의 신을 삼위일체론으로 정형화하지만 않았어도 많은 형제들이 이단으로 내몰리지도 않았을 텐데… 당신친구가 당신의 책을 읽고 당신을 멀리 하듯이 말이지요. 불과 한 달 전에 만나 술을 사며 당신책의 출판을 축하해주던 친구가 그 책을 다 읽고는 당신의 성탄축하 문자도 받지 않은 것은 당신친구의 내면이 나의 이론으로 무장되어 당신의 책 내용들을 밀쳐내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독실한 신자인 그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삼위일체의 한 위격만을 곳곳에서 분리해내는 당신의 표현들에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던 게지요. 당신의 책이 내가 다시 쓴 참회록이라는 사실을 그 친구가 알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테지만 그러기위해서는 당신이 나의 회심을 보다 엄밀하고도 친절하게 변호해주어야만 할 것이오. 

   참회록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세기에 대해 길게 언급한다. 나는 태초의 원형인간을 통해 창세기를 재구성하는데 저 세상에는 원형인간과 베드로, 베드로모친, 토마스 아퀴나스, 루터, 칼빈 등이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원형인간의 입을 통해 전해 듣는 역사 이전의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그중 한 대목이다.
 

남자 분보다 여자 분이 질문에 주로 답변을 더 많이 하셨는데 여자 분이 기억력이 더 좋아서 인가요. 아니면 평소의 생활이 여자중심의 모계벤더로 이루어져서 인가요. 마치 여자의 갈비뼈로 남자를 지어 만든 게 아닌가할 정도이니까요. 뱀의 유혹에 넘어가 원죄의 주역이 된 여자이미지와 비겁하게 여자가 선악과를 먹자고해서 먹었다고 변명을 한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 원죄의 조역이 된 남자이미지와 흡사한 것도 같고요. 아무튼 저는 여자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으니까 태초의 성의 정치학이 몹시 궁금하거든요. 남자분이 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베드로의 장모가 좌중의 남자들을 둘러보며 왜 남자이야기만 하느냐는 불만어린 어조로 물었다. 원형남자와 원형여자는 서로를 마주보며 웃더니 원형남자가 얼굴을 붉히며 다소 멋쩍은 듯 자신의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말문을 열었다.

보시다시피 저만 수염이 나고 이 사람은 수염이 나질 않았잖아요. 이 사람이 나보다 더 뱀 머리를 닮아서 그런 얘기들이 나온 게 아닌가 하지요. 털 있는 부모들과의 차별화를 털 없는 것에 둔다면 이 사람이 나보다 더 원형인간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라기보다는 생물에게는 아이 낳는 일이 무엇보다 큰일이고 아이 낳는 일을 이 사람이 하니까 부부생활이 이 사람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게지요. 그리고 아이들이 워낙 무능한 상태로 태어나니까 임신전후의 많은 시간을 이 사람은 아이에 붙들릴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갓난아이를 가진 여자한테는 늘 곁에 몸종이 딸리지 않으면 안 되었고 남자들은 그저 여자몸종 같은 신세를 면치 못했지요. 이게 필요하다 저게 필요하다는 표정과 눈치를 시시각각 보여 오는가하면 맹수들 망보랴 해충들 쫓으랴 그야말로 하인신세를 면치 못했으니까요.

원형남자의 유머어린 제스처를 따라 모두들 웃음꽃을 피웠다.

여자눈치 보는 일이 생활의 전부라고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그러지 않으면 곁에 얼씬도 못하게 했으니까요. 남자들끼리의 경쟁에서 얼마나 우위를 차지하느냐보다 여자에게 얼마나 눈치헌신을 잘 하느냐에 따라 여자의 성을 차지할 수 있고 그래야만 자기종족이 보존되었으니까요. 자기먹이를 찾아먹지 못하는 무능한 아이가 둘 셋 딸린 여자란 남자를 상대로 자신의 성과 그 아이들을 무기로 삼지 않으면 생존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일부일처의 몸종구조가 자연스레 생길 수밖에 없었지요. 남자의 성촉발기능이 후각에서 시각이미지로 옮겨온 것도 후각능력의 감퇴라기보다는 여자눈치 보는 오랜 관성으로 비롯된 게 아닌가 하지요. 만약 남자가 발정기 때만 여자를 찾는다고 해 보세요. 여자 혼자서 그 무능한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겠어요. 아마도 그래서 여자 쪽에서 먼저 발정기를 후각에서 시각으로 감추는 기전을 생성해냈을 거예요. 여자의 발정기를 식별해내지 못한 남자는 여자눈치 보는 시각 쪽으로 성감을 촉발시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요. 여자의 관능적인 움직임 하나하나에 따라 남자의 시각이미지가 성을 촉발시킨다는 것은 여자와 아이들의 생존에 필연적인 것이 되어 오늘날에 이르지 않았나 싶어요.

에덴동산도 아닌 원형동산에서 일부일처라뇨? 이해가 되질 않는군요. 유인원들이 일부일처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으니까요.

누군가가 노골적인 야유가 섞인 분노를 드러냈다.

왜 그 질문이 안 나오나 했지요. 사실 유인원의 대부분이 암컷의 성을 강한 수컷이 독차지하잖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유인원의 새끼들은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털을 잡고 내달려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장악력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엄마가 새끼로 인해 유동성이나 이동성에 장애를 받지 않지요. 그래서 벤더의 일사불란한 유기적 시스템에 능동적일 수가 있어요. 힘이 센 수컷이 리드하는대로 따라 움직일 수도 있고 그 리더를 따라 움직여야만 먹이채집도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에 일부다처는 아주 자연스런 섭생이라고 봐요. 반면에 저희 원형인간들은 그렇지를 못해요. 우리 어린아이들도 어느 정도의 장악력은 갖고 태어나지만 잡고 달릴 털도 없고 유인원에 비하면 턱없이 약하기 때문에 유동성이나 이동성에 엄청난 장애를 받게 되지요. 그래서 아무리 힘이 센 수컷이라 하더라도 여러 마리의 암컷과 새끼들의 먹이를 조달할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일대일의 맨투맨 식 밀착생존으로 밖에는 어째 볼 도리가 없는 거지요. 간혹 새끼 없는 젊은 암컷들을 여럿 거느리고 다니는 수컷이 있긴 하지만 새끼로부터 자유로운 기간이 너무나 짧기 때문에 대개가 자기 딸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 역시 엄마의 슬하에 있기 때문에 함부로 하지 못하는 거지요. 성폭력을 감행할 여력조차 없을 정도로 바듯한 성의 정치구조가 일부일처를 가장 효율적인 관습으로 정착시켜온 게지요. 그래서 남자가 바깥일을 장악하고 여자가 안일을 장악하는 핵 가정의 권력구조가 생겨난 거구요. 아이들이 자라면서부터는 아이들의 성까지 엄마인 여자가 관리하고 장악하게 되었는데 그것마저도 사춘기와 함께 일찍 독립을 시키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으니까 대가족조차도 형성되기 어려운 형국이었지요. 심지어 우생학적 종족번식을 위해 한 아이를 낳고나면 남자(몸종)를 바꾸는 한이 있어도 힘이 지배하는 일부다처의 생존양식은 불가능했으니까요. 그러다가 육체적 무능에 의한 장애지(障碍智)가 축적되어 큰 동물수렵 등 바깥일이 확장되자 벤더규모가 점점 커지게 되고 남자의 몸종역할도 따라서 중요시되어 마침내 힘과 폭력으로 성이 좌지우지되는 몸종이 왕이 되는 가부장사회가 생겨난 거지요. 따라서 성의 원천구조는 몸종구조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러한 성문화는 오늘날에도 여성패션이라는 화려한 생활미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요. 

 

  요즘 참회록을 끝까지 다 읽는 독자는 흔치 않다. 이 프롤로그도 그에 못지 않게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성의 원천구조에 대한 참신한 생각을 다시 쓰는 참회록에 담아냈다는 것이 새롭다. 이를 여성패션의 기원으로 보고 소설의 프롤로그로 삼은 것은 더더욱 새로운데 이것이 독자에게는 뛰어넘어야 할 장벽이자 통과해야 할 관문이 되고 있다.

챵세기에 대한 해석이 그만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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