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부아르 오르부아르 3부작 1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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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없다. 흙은 너무도 무겁고, 빛도 거의 사라졌다. 땅 위에서 계속 비처럼 쏟아지는 포탄들에 박살 나는 대지의 경련들만이 느껴지다가, 결국엔 더 이상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단 한번의 헐떡임을 제외하고는, 그러고 나서는 깊은 평화가 그를 감싼다. 그는 눈을 감는다. 어떤 불편한 느낌에 사로잡히고, 심장은 딸깍 무너져 내리고, 이성은 꺼져버리고, 그는 어둠 속으로 잠겨든다. 병사 알베르 마야르는 죽은 것이다." 38쪽


제 1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 '깨진 얼굴', 살아있는 송장으로 남은 두 프랑스 병사의 대사기극. 

시작부터 작가는 갑자기 독자를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와 독일이 접전하는 그 상황으로 무서울정도로 사실적으로 끌어다 놓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던 알베르는 678쪽씩이나 되는 소설에서 38쪽만에 죽는다. 마치 내가 포탄들이 날아드는 전쟁터에서 구덩이에 빠져 생매장 당하기라도 한 것 같은 현실감. 작가가 생매장 당한 경험이라도 있는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실제 전쟁에도 당신이 원하는 결말은 현실에는 없다는듯 독자의 뒷통수를 신나게 두들겨친다.


"이곳엔 적이 하나 있어. 눈에 보이진 않지만 어디서나 그 무거운 존재가 느껴지는 적. 우리의 삶은 그것에 달려 있지. 적, 전쟁, 행정, 군대, 이 모든 것들은 다 똑같아. 우리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 그리고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것들이지." 141쪽


전쟁은 끝났고, '깨진 얼굴'로, 살아있는 송장으로 삶 속으로 돌아온 병사들의 삶은 전쟁보다 처참하다. 전쟁중이나 전쟁후에나 여전히 개자식으로 살아가는 프라델 중위는 독자의 바램과 달리 특유의 사기꾼 기질을 발휘해 큰 돈을 벌고 승승장구한다. 반면,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돈 몇 푼에 범죄를 저지르며 처참한 생활을 이어가는 알베르와 에두아르. 마치 불행이 전쟁 하나로는 충분치 않은 것처럼 이들의 남겨진 삶에서 전쟁은 계속 되고, 이들은 계속 패배한다.


이 두 병사가 벌인 대사기극에 알베르처럼 들통날까봐 조마조마한 마음도 들었지만, 에두아르처럼 그저 속이 다 시원한 기분도 동시에 들었다. 자연스럽게 두 병사의 마음 속으로 온 신경을 집중하면서 나도 마지막 장면의 알베르와 함께,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에두아르의 얼굴을 본 그의 아버지처럼 울 것 같은 기분으로 소설의 제목을 다시 떠올렸다. Au revoir La-haut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초반에 전장에서 죽은 두 병사의 비극은 전쟁 후에도, 대사기극에도 여전히 비극이다. 이미 시작부터 이 비극은 예고되어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전쟁이 남긴 것은 허무함, 비극, 또 다른 전쟁들뿐이다. 이 처참한 두 프랑스 병사들의 삶 뿐만 아니라, 결국 개자식으로 살다 마지막까지 개자식으로 죽은 프라델 중위, 그토록 증오하던 아들의 죽음 이후 뒤늦게 아들의 흔적에 집착하지만 다시 한 번 아들의 죽음을 본 페리쿠르, 정의를 지켰지만 여전히 자신의 삶에선 패배자로 살아가는 메를랭. 결국 시작부터 끝까지 이 이야기의 모두는 비극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비록 설명할 수는 없지만, 여기엔 그 어떤 우연도 없으며, 이것은 한편의 비극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결말은 이미 오래전에 쓰여 있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든 아니면 다른 식으로든 와야 했던 것이다." 6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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