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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학교 이야기 ㅣ 살아있는 교육 11
윤구병 지음, 변정연 그림 / 보리 / 199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실험학교 이야기>를 읽으며 처음 든 생각은 '이런 것이 학교일 수 있는가?'였다. 공동체 내의 어른들이 선생님이 되고 학교에는 정해진 수업시간도, 숙제도, 학년도 없다. 마을의 모든 환경이 교육공간이다. '무슨 이런 꿈(? 이상적이라는 뜻이 될 수도 있고 허황되다는 뜻일 수도 있다)같은 이야기가 있는가라'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실험학교가 가지고 있는 이상, 교육관을 생각해보지 않고 단지 현재의 교육환경에서 낯설다는 이유로, 현실성이 적다는 이유로 비판해서도 안될 것이다.
더군다나 대안학교니, 특별학교니 완전자율 사립학교니 하는 것들이 인정받고 생겨나고 있는 교육의 다양화 속에서 <실험학교 이야기>그런 것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실험학교의 아이들이 공부하고 생활하는 내용이 동화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직 현실 속에 있는 학교는 아니고 저자의 바람을 이상적으로 그려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읽히기는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그러나 그와는 같은 무게만큼 생각해야 할 거리는 많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실험학교가 가지고 있는 이상, 교육관은 크게 학습자 주도의 자발적 학습이라는 개념과 자연 속에서의 감각체험, 전통과 민족성에 대한 부분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각각 나름대로의 의도를 가지고 행해진 것이고 장점과 단점이 있다.
자연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나 학습자가 자발적으로 학습을 하려고 하는 교육 등은 상당 부분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지나친 민족주의의 고양으로 오히려 민족관과 세계관이 왜곡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들고, 자연 속에서의 체험학습을 통한 교육이 감성적인 측면과 자연의 이해에 대한 지식 이외의 이성적 영역과 지식에 대한 면은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개연성이 부족하다.
그리고 실험학교에서는 교육에 있어 학습자에게 상당한 자유가 주어져 있는데, 여기서의 자유란 '공부를 하기 싫으면 계속 안해도 된다'는 자유가 아니라 '어떤 공부를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자유'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사의 역할(매우 많지만)은 자유를 그릇되게 이해하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분명한 통제를 할 수 있는 것이며,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이 충족될 수 있도록 적절한 자극과 교육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실험학교의 교육이 국가적 차원의 제도권의 교육이 되어 많은 아이들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은 힘들 것이다. 국제환경 속에서의 우리나라의 위치나 관계를 고려할 때나 재정적인 문제,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에 대한 고려 등등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실험학교 자체에 대한 교육적인 평가 또한 논란의 여지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 실험학교의 교육 중에서 현재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반성적 부분은 충분히 검토하고 받아들일 부분은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모든 교육이 제도권 교육으로 획일화하는 것도 문제가 있겠지만, 그 대안으로 내놓은 교육이 검증받지 않은 채 교육으로 행해지는 것 또한 문제가 있을 것이다. 최근의 추세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점차 탈제도권화하는 경향을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