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류시화 지음 / 열림원 / 199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류시화의 시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시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소월의 시처럼 입안에서 착착 감기며 읖조려지는 가슴시림이나 김광균의 시처럼 읽으면 이미지가 눈앞에 펼쳐지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류시화의 시는 편안한 호흡을 가지고 술술 읽혀 내려갔다. '시'라고 하면 괜히 어렵고 읽어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편견이 있는데 류시화의 시는 그런 편견에 대한 반전이었다.

류시화의 시는 일상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이미지를 일상에서 친숙한 언어로 만들어 낸다. 그의 시를 읽으면 마치 내가 직접 '어느 여름날 고요한 숲속에서 새둥지를 보러 몰래 다가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거리에서 혼자 울고 있는 한 남자의 눈물'을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시어가 독창적인 단어로 구성된 것은 분명 아니다. 별, 구름, 새, 소금.... 그리고 시에 등장하는 많은 낱말들은 내가 일상에서 쓰는 단어이다. 그럼에도 그의 시에서는 일상의 친숙함과 함께 새로운 느낌을 준다. 단어들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새로운 형태로 조합해서 입안에서 술술 풀어져 나오게 만든다. 산문같기도 한 시들이 읽어보면 나름의 가락과 운율을 가지고 있다. '그리움이 너무 커서 신문처럼 접을 수도 없었다'는 구절은 신선한 공감이었고, <비로 만든 집>은 소리내어 읽었을 때 운율이 매우 경쾌하고 재미있었다.

또 그의 시에서는 삶의 냄새가 느껴진다. 삶에 대한 자신의 고백과 깊은 고민의 결과물이 시로 표현되었다는 것을 그의 시를 읽으면서 느꼈다. 그것이 그만의 삶이 아니라 내 삶 역시, 우리의 삶이 가지는 공통분모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말이다.

이해하지 못할 현학적이고 추상적인 언어의 잔치가 되는 시가 좋은 시는 아닐 것이다. 시도 분명 독자가 있고, 모든 문학작품들이 그러하듯 작가와 독자가 작품을 통해 만나고 공감하고 상호작용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작가의 일방통행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대중들이 많이 읽는 시, 쉽게 읽히고 공감을 얻는 시는 시가 아니라는 생각은 어쩌면 '우매한 대중들이 고상한 시에 대해서 얼마나 알겠냐'는 문화 엘리트주의적 발상의 영향이 아닌가 한다.

시는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람들 모두 각자의 삶 속에서 고민을 하고 열심히 살아가고 어떤 시가 나에게 다가오고 감동을 주는 지 알 수 있는 능력은 가지고 있다. '좋은 시'란 나의 삶에 감동을 주고 정서적 감응을 불러일으키는 시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류시화의 시는 나에게 참 좋은 시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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