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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 - 상 ㅣ 창비교양문고 43
찰스 디킨스 지음 / 창비 / 1996년 10월
평점 :
절판
어린시절에 읽었던 동화, 혹은 만화영화 속에서의 올리버 트위스트 이야기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착한 심성을 잃지 않고 고난을 이겨내어 결국 행복해지는 감동적인 인간승리였다. 때론 눈물범벅과 안도감, '그래, 역시 세상은...' 하는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런데 조금 커서 본 <올리버 트위스트>에서는 그 때 차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다. 동화판이나 문고판이 아닌 걸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말이다.
어린 시절에는 '올리버가 착하고 심지가 굳으니까 당연하게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올리버가 끔찍한 빈민, 도둑생활을 청산하고 안정된 삶으로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맘씨 좋은 중산층 브라운 씨에 의해서였다. 더군다나 후에 밝혀지는 출생의 비밀을 통해서 원래 올리버의 신분이 중산층이었던 것이 드러남으로써 올리버의 되찾은 행복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게 한다. 그 구원의 주체가 올리버 자신이 아닌 외부 세력, 그것도 자신이 원래 처해 있던 빈민 계층을 착취하고 억압했던 중산층이라는 것과 아울러 결국은 올리버 자신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 중산층에 편입되어 버린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다. 자신의 노력에 의한 성취나 성공이 아닌, 그야말로 우연한 외계로부터의 구원이고, 그 돌봄의 손을 뻗친 것도 그의 참담한 빈민굴 생활과는 넌무나 거리가 먼 중산층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디킨스의 한계였나 보다. 단지 착함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사회악을 통렬히 고발하기는 했지만 스스로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한 채 기존 사회의 통념에 보조를 맞추어 버렸다. 같은 중산층임에도 착취하는 악한 부류와 구원하는 착한 부류를 나누어 놓음으로써 제반 사회악이 그런 일부 개인의 잘못으로 오해할 소지를 남긴 채, 사회 구조적 모순의 문제로 끝까지 끌고 나가지 못한 것이 이 소설, 그리고 디킨스의 결정적인 약점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나 스스로 대견해 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디킨스가 사회적 차원으로 문제를 확대시키지 못한 것이 한계였고 지극히 감상주의적 성향을 가졌다는 것도 모두 공감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그런데 황당한 건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결말에 안도하며 미소짓고 있는 나를 보았다는 것이다. 머리로는 비판을 하면서 가슴으로는 공감하고 동조한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컬하면서도 우스운 일인가! 내가 아직 학문을 할 자세가 안 된 탓인가? 아니면 역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명작가의 작품은 그만큼 호소력이 있는 것인가?
뭐, 사실 역사를 공부하는 본인이야 역사적 맥락에서 이런 비판도 하면서 보았지만, 어린 시절의 가슴따뜻한 동화를 되새기고 싶은 사람들이나 좋은 책들을 읽어야 할 어린이들은 이러한 불충한 마음없이 순수하게 읽으면 솔직히 눈물도 나고 감동도 엄청주는 책이다. 본인 역시 머리로는 비판하면서도 가슴으로는 울고 웃었으니 말이다.
다만, 위에서 했던 얘기들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는 것, 그리고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올리버의 착한 심성을 본받을 것을 교훈삼아 이야기하면서도 당시에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고통받았고 어떻게 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도 해준다면 사고력과 창의력 발달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