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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평점 :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나는 믿어요."
권은과 승준의 관계성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점차 확장되어 그물망처럼 이어져 있는 공동체의 세계를 조명한다. 평소 조해진 작가가 나라는 존재를 넘어 타인을 바라보고, 타인의 생애를 들여다보도록 만드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데 빛과 멜로디에서는 더 많은 것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등장인물들은 조금씩 미련하다. 본인의 집을 선뜻 내어주는 것부터 그로 인한 빚을 갚아나가기도 하고,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도움을 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헌신한다. 개개인의 가치가 우선시되는 요즘 이러한 희생은 낯설고 허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빛과 멜로디는 계속해서 말한다. 사람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작은 카메라로도, 악보 한 장으로도.
사람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동시에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인간됨을 벗어나는 구호품 트럭 피격이나 유대인 등록령, 각종 전쟁 언급과 홀로코스트, 인티파다가 언급될 때에는 참담했고 이 모든 일이 이루어졌던 일이자 현재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게 처참했다. 특히나 게리 앤더슨이 화자로 등장하는 챕터에서 울컥했는데, '자신의 생존과 누군가의 죽음이 이어져 있다는' (170) 생각을 나 또한 자주 하기 때문이다. 늘 누군가에게 빚지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당장 내가 그처럼 전쟁터에 내던져진 상태는 아니지만 이를테면 안전 수칙이나 관련 법규는 어떤 희생으로부터 제정되고는 하고, 나는 동물과 자연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루하루 편리하게 살아가고 있으므로. 선한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아닌
참담함을 적확히 바라보게 하고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계속 이야기한다는 점이 나는 슬프고도 좋았다.
무엇보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우크라이나가 세상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에 나스차는 걱정이 많았다. (중략) (225)
무엇보다도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 가늠할 수 없는 피해를 만들어내는 전쟁의 참혹함, 인간의 도리를 포기하는 잔혹한 방식, 그 그릇됨에 대해서.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생각해보면 온기가 줄곧 세상을 지속해왔다. 그런 것들이 우리라는 공동체와 세계를 결속시켜 왔다는 사실을 읽으며 떠올렸다. 이런 온기는 아주 없는 것이 아닌 잠시 잊힌 것뿐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사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과 그 기적 같은 일이 곳곳에서 행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책을 통해 봤다. 작은 희망을 시사하는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조해진 작가의 책을 처음 읽었던 날 독서란 내가 아닌 누군가의 삶의 족적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기록했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러우나 아름다워서 마다할 도리를 찾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