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수정 작가가 그려내는 감정은 마치 잘 벼린 칼날 같다.각기 다른 열 편의 이야기지만 줄곧 하나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고 느꼈다.소설 속의 인물들은 무언가를 욕망하며, 욕망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고통의 끝에서는 그것을 모방하고자 한다.그 시도는 성공하기도 실패하기도 하고 때로는 정체되어 있기도 하지만 그들이 무언가를 선택할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그러나 단일한 선택지를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작가는 그 의문을 ’불평등‘이라는 키워드로 제기한다.누군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다소 광적일 만큼 그의 배우자와 가정을 부러워하는 희진이나 자연의 순리인 나이 듦에 대해 고통스러워하는 원희, ’꺄흐띠에‘를 좇는 한나 등 그들의 감정에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시기나 질투심, 열등감 등 많은 표현이 존재하지만 위수정 작가가 그려내는 감정을 표현하기에는 그 무엇도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특히 「오후만 있던 일요일」이 좋았는데! 화자가 고주완에게 느낀 것이 말 그대로 끌림이었다는 것, 다른 것이 아니라 연주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매료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인간적이었다. 사실 그런 유의 끌림은 물리적인 거리든 비유적인 거리를(이를테면 나이처럼) 초월해 이루어지지 않나. 60대의 나이를 가졌더라도, 남부럽지 않을 평화로운 일상을 가졌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조명하는 ’나이 듦‘은 욕망을 거세시킨, 즉 욕망의 부재로 꾸며낸 모습이었는데 원희는 젊은 무리를 보며 그들이 무지하기를 바라기까지 한다. 이게 얼마나 인간적인지.스치듯 읽은 소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다. 우연히 읽었던 위수정 작가의 단편 몇 편이 그렇게 기억되고 있었다. 이렇게나 첨예한 문장을 소설집으로 다시 만날 수 있어 기쁘다. 작가가 이야기로 보여주는 죽여야 하는 마음, 있지만 볼 수 없는 것들을 계속해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