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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40
요르크 슈타이너 글, 요르크 뮐러 그림, 고영아 옮김 / 비룡소 / 1997년 3월
평점 :
이 동화는 회의론, 현상과 실재, 자아의 정체성 등에 대한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다. 물론 이 동화가 철학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문맥은 철학도에게 낯익은 인식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주제의 하나로 다가온다. 동화 전체의 맥락은 물론이고 각 부분의 에피소드조차 철학적인 질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이 동화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 모두가 그들의 눈앞에 서있는 대상은 곰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신에 그 대상은 '면도도 안 한 더러운 게으름뱅이'로만 인식되고, 단지 그 공장에서 일하기만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동화가 진행되가면서 곰은 스스로 자신이 곰이라는 것에 대해 자신감을 잃어가게 된다. 그가 예전에는 자신이 곰이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모르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그의 이전 지식은 아무 의미없이 무너졌으며, 그리고 그 지식의 기초는 의문투성이로 변해간다.
만약 그가 곰이었다고 생각할 정당한 근거를 결코 갖고 있지 않다면, 이제 그는 더 이상 곰이 아니게 된다. 이제 독자는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그가 곰이라는 것을 아는데 있어서 우리가 그 앎의 근거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 동화에 등장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주장이 옳다고 한다면, 즉 그들 앞에 서 있는 대상이 곰이 아니라면, 그 곰은 환상이며, 그래서 동화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그런 곰은 실제로는 없다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서커스단에서 만난 다른 곰의 비웃음, '보기에는 곰처럼 생겼네요. 하지만 그는 곰이 아닙니다. 정말 곰이라면 관중석에 앉아 있을 리가 있나요? 진짜 곰은 춤을 출 수 있지요.'라는 말은 지식의 정당성에 대하여 우리가 어느 정도 인습에 근거하여 판단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결국, 이 동화는 나비가 된 꿈을 꾸고 나서 혼란스러웠다는 장자의 철학적 고뇌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자아와 주체가 대상과 어떻게 관계하는지를 사색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