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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평점 :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올해초 <시의 문장들> 에서 이 문장을 보고 느낀 강렬함을 기억한다. 최승자 시인님의 [삼십세] 라는 시 시작부분이다. 난 80년대 한국문학을 잘 알지 못하지만, 강렬하고 직설적인 언어로 시를 써 스타 시인이었다는 말만 보도자료들을 통해 보았다. 이유는 몰랐지만 정신분열증을 오래 앓으셨다는 정도까지만 알았다.
그 최승자 시인님의 증보개정판 산문집이라니. 게다가 저 강렬한 담배피는 시인의 모습의 표지라니! 책을 안 읽을 도리가 없었다.
20대때부터 써내려간 시인님의 산문들엔 보통 그 나이때가 생각할 만큼보다 더 깊은, 삶의 실체와 죽음, 허무에 관한 고민과 성찰이 가득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가까운이들의 죽음을 겪고 죽음을 더 생각할 수록, 시인은 이악물고 살아 쓸 이유를 찾아갔고 자신만의 정신적 투쟁을 했다. 그 내면의 몸부림이 한알한알 옹골진 언어들로 맺혀 글 한편한편이 매우 진한 향과 색을 지닌 (왠지 먹으면 독이 있을것같이 겁은나지만 막상 먹으면 쓰기만 하고 우리면 양약이 될것같은) 열매맺는 나무같았다.
난 에세이를 누구보다 좋아하고 많이읽지만 그러기에 역설적으로 가끔은 문인들이 말놀이하는것같은 책을 피하고 싶어 문인의 산문집은 일부러 피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게도 한번 일독을 권하고 싶다. 내 깊은 곳 정리되지 않은 어떤 생각을 해보도록, 마주보도록 하는 마력이 있는 책이었다.
그리고 80년, 90년대에 이미 현재 한국 페미니즘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계셨던 시인님의 글을 읽으며 계속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시대에 시인이 청춘이었다면 조금 더 건강하실 수 있었을까 라고. 아무리 시인님은 개인적 선택(신비주의 공부) 으로 인해 자초한 병이라 하시지만 과연 그것만이었을까 싶었다. 왜냐면 너무 속상해서. 이런 날이선 언어로 본질을 꿰뚫는 감각이 발달된, 예민하고 세심한 사람이 건강히 살기 힘든 사회적 환경이 안타깝다.
그래도 이제 이 시대에 새 옷을 입고 다음세대에게도 시인님의 글이 닿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시인님이 살아계실동안에.
개정판 작가의 말 에서 이 개인적 고통의 시간을 다시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라 한부분도 여운이 길게 남았다. 끝. 하고 맺는데서 불어오는 쿨워터향도 좋고.
나의 언니 계보엔 여태까지 가수 이소라님, 배우 김서형 님이 있었는데, 오래오래 보고싶은 언니가 한명 더 생겼다. 시인 최승자님.
부디 오래 건강히 지내셔요.
새 시, 새 산문도 기다릴게요.
계속 살아, 우리와 계시며 이름처럼 승자 (winner) 님이 되어주시길
개정증보판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난다출판사 편집자님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