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벤저스도, 마블도, 아니 어떤 우주복 입은 사람 나오는 장르물도 잘 안보는 내가 읽고 많이 좋아한 첫 SF 소설은 김초엽 작가님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었다. 일단은 추천을 정말 압도적으로 많이 받아서 용기내어 읽었지만, 7편의 단편이 묶인 그 소설집을 다 읽고 그 이야기들을 사랑하는데는 큰 힘이 필요하지 않았다. 왜냐면 다양한 분야의 과학기술과 우주적 상상력이 그저 전시가 된 장식품이 아니었다. 대신에 그러한 소재들은 이야기 속 사람들의 보편적 감정과 인류애에 집중하게 해주게 해주는 매개였다. 왜 이과와 문과의 적절한 콜라보 라고 지인들이 얘기했는지 알만큼.

김초엽 작가님에 대한 내 신뢰는 사실 두번째로 읽은 작가님의 논픽션 책이자 김원영 작가님과 공저한 <사이보그가 되다> 를 읽은뒤였다. 각각 청각 장애와 지체장애를 가진 저자들은 자신들이 장애를 진단받으면서 자신과 함께하게 된 보조기구들 (보청기, 휠체어 등) 과 살아가며 자신들이 어떤 의미에서의 ˝사이보그˝ 임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들 주위와 국내외에서 개발되고 퍼지는 장애인을 ‘위한‘ 기술들이 사실은 비장애인의 기준과 시각에서 디자인 된것이 많다는 점을 지적하며, 정말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인격적으로 공존하기 위한 최적의 기술은 과연 무엇일까 에 대한 고민에 대한 나름의 답을 매우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해나간게 안상깊었다. 그래서 아이언맨 영화를 보다 재미도 없고 옴팡지게 지말만하는 토니스타크를 버리고 극장을 뛰쳐나가고 싶었던 내게 400쪽이 가까운 과학소재 책을 일주일 안에 읽게하는 마법을 부린 작가다.

이토록 긴 서론에서 내가 <지구 끝의 온실> 에 품은 큰 기대가 느껴지는가? 김초엽 작가의 첫 장편소설 이라는 점도 호기심과 기대를 품게하는데 한몫했다.

짧게 얘기하자면, <지구 끝의 온실> 은 앞에서 내가 언급한 저자의 장점들이 매우 잘 드러난 소설이다. 글울 쓰기전에 선행되는 탄탄한 자료조사와 그 조사에 기반해 소설 속 이야기들의 개연성을 세워나간다는 점, 그리고 그 소재들을 통해 하고싶은 이야기가 결국은 절망적인 것 같은 상황속에서도 인간은 서로 협력하고 정을주고 살고싶은 작은 선의에 대한 것이라는 점도.

하지만 장편이다 보니 이전 단편에선 짧게 압축된 주요 등장인물들이 인류멸망직전 상황에서 어렵게 생존하고 끊임없이 이기적인 인간들에게 배신당하거나 고통받는 부분이 초반에 너무 길게 펼쳐져서 이야기 과몰입이 심한 내겐 좀 힘들었다. 나오미와 아마라가 프림빌리지 입성 전까지가 좀 괴로웠던 것 같다. 사람에게 가장 잔인할 수 있는게 인간이란걸 너무 자세히 마주하니 이 책 앞뒤에 쓰인 ˝인류애˝ 부분은 대체 언제나올까만 기다렸다.

인류애 부분은 당연히 사람냄새 나는 SF 를 쓰는 저자의 전작같이 곳곳에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게 시간이 한참지나 더스트 시대가 옛날이 되버린 시점에 아영이라는 식물연구원과 세계 식물학회의 협동이란 걸로 주로 나타나다 보니
나름 긴 챕터동안 정들은 프림빌리지의 몇몇 등장인물들의 뒷이야기는 알 수 없게되어 역시 그들에게도 과몰입했던 내겐 약간 회수되지않은 떡밥(?) 같은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하지만 이 아쉬움들은 부수적인 것일 뿐. 저자가 항상 한 작품을 위해 과학 내에서도 다양한 분야를 바닥부터 공부해서 견고한 소설적 세계관을 다지는 것엔 언제나 경외감이 든다. (이번엔 식물, 원예학이 주 분야였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이야기에서 좋아하는 점은 사람과 사람간의 정과 호감, 사랑을 얘기할 때 거기에 성별이나 나이, 종 등을 크게 부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점은 전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에서도 언뜻 비추었지만 <지구 끝의 온실> 에서 더 명확해진 것 같다. 난 점점 이런 보편적 정과 사랑, 인간이 다른 인간 (혹은 타 종) 을 마음에 품고 위하는 이야기를 더 많이 보고싶다. 언제나 그 감정이 ‘연애감정‘, ‘이성/동성애‘, ‘모성애‘ 라는 라벨을 붙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한국 드라마나 영화가 그 라벨링을 집요하게 붙이는데 지친 나는 그게 없는 저자의 이 작품이 좋았다.

김초엽 작가님의 다음 공부는 어떤 분야일까. 그리고 거기선 어떤 이야기가 구축될까. 또 기다리고 있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