켜진 창문을 통해 들여다보는 가족 수족관이다. 때때로 나는 음악없이 추는 느린 춤 같은 싸움을 구경하는 침묵의 목격자가 된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양상은 참으로 놀랍다. 엉망인 상태로 지내는 모습, 거리로 솔솔 흘러나오는 맛있는 요리 냄새, 어느새 일상의 장식을 은근슬쩍 치고 들어온 명절의 장식. 나는 1월내내 어느 집 벽난로 선반에 놓여 있던 크리스마스 장미 꽃다발이 서서히 쇠락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꽃은 시들어 쪼글쪼글해졌고, 물은 녹색 구정물로 변했다. 그 폐허 속에서 막대에 붙은 커다란 산타만은 여전히 환한 웃음을 지은 채 즐거워 보였다. 창문이하나 또하나 다가오고, 그 속에서 텔레비전의 빛이 만드는 푸른 안개나 저녁식사인 피자 위로 몸을 숙인 부부가 정지화면으로 잡힌다. 화면은 내가 지나갈 때까지 그 모습을 보여주다가 슬며시 망각 속으로 사라진다. 나는 물이 어떻게 모이는지 상상한다. 물은고드름 길이로 흘러내려, 영롱한 한 방울이 될 때까지 잠시 멈추었다가, 너무 굵어져 더 매달려 있지 못하게 됐을 때 낙하한다. - P14